칼럼

1975년 11월 포드 행정부 개각

작성일 : 2021-07-07 15:22조회 : 1,739

1975년 11월 포드 행정부 개각

포드는 닉슨의 각료를 그대로 계승하다보니 정부 내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또 이것이 과연 포드 행정부냐는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었다. 1975년 11월 4일, 온 국민이 할로윈 축제 무드에 있을 때 포드 대통령은 중요 각료를 경질하는 개각을 발표해서 워싱턴 정가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첫째,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겸임하고 있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안보보좌관 자리를 내어 놓도록 하고 부보좌관이던 브렌트 스코크로프(Brent Scowcroft 1925~2020) 장군을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했다. 둘째, 군비(軍備)확장론자이며 대소(對蘇)강경론자인 제임스 슐레징거(James Schlesinger, Jr. 1929~2014)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도널드 럼스펠드를 지명했다. 셋째, CIA 국장 윌리엄 콜비(William Colby 1920~1996)를 경질하고 후임으로 주중 대사이던 조지 H. W. 부시를 지명했다. 넷째, 로저스 모튼(Rogers Morton 1914~1979) 상무장관을 경질하고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파면하라는 닉슨의 명령을 거부하고 법무장관을 사임해서 유명해진 엘리옷 리차드슨( Elliott Richardson 1920~1999)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다섯째,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이 됨에 따라 공석이 된 백악관 비서실장엔 부실장이던 딕 체니를 임명했다. 장관으로 지명된 럼스펠드, 부시, 리차드슨은 상원 인준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됐다.

포드 대통령이 경질한 사람들은 모두 거물급이었다. 헨리 키신저는 국무장관 자리를 지켰지만 사람들은 백악관 안보보좌관 자리를 내어 놓아서 그의 영향력은 반감(半減)했다고 평가됐다. 제임스 슐레징거 국방장관은 국방연구자 출신이지만 에고가 강해서 포드 대통령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슐레징거는 국방장관 시절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은 전술핵 무기를 동원해서 북한을 초토화시키겠다고 발언해서 안보위기에 시달리던 한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준 적이 있다. 윌리엄 콜비 CIA 국장은 CIA에서 잔뼈가 굵은 첩보 맨으로 감히 해임할 수 없다고 생각됐는데 하루아침에 경질되고 말았다. 로저스 모튼 상무장관은 닉슨 정부에서 내무장관도 맡는 등 장관이 본업이다시피 한 원로였는데 역시 하루아침에 경질되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핼로윈 학살'(Halloween Massacre)로 불렀다. 학살의 기획자는 럼스펠드였다.

조지 H. W. 부시는 CIA 국장 보다는 상무장관을 원했다. 부시는 원래 석유사업을 했기 때문에 기업 관련 각료를 희망했지만 이번에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외부인사가 CIA 국장을 해 보았자 기관이 장악되지도 않을뿐더러 CIA 국장은 언론 노출이 없어서 정치인에게는 무덤과 같았다. 럼스펠드가 부시를 엿 먹이기 위해 CIA 국장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엘리옷 리차드슨에게 각료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그를 CIA 국장으로 보내면 포드 대통령이 CIA를 지휘할 수가 없게 될 것이기에 별 볼일 없는 상무장관으로 보내고 포드의 말을 듣는 부시를 CIA 국장으로 보낸 것이라는 설명이 보다 설득력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43세의 럼스펠드는 국방장관이 되고 34세의 딕 체니는 백악관 비서실장이 됐다. 특히 6년 전만 해도 취직이 안 되서 하원의원 인턴을 하던 체니가 막강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것이다. 럼스펠드는 다른 사람이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오면 포드 대통령에 대한 자기의 영향력이 없어질까 봐 자기 사람인 체니를 비서실장으로 심어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럼스펠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국방장관이 됐다. 럼스펠드 덕분에 젊은 나이에 출세를 한 딕 체니는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이 되자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토록 해서 자기가 입은 은혜를 갚았다. 하지만 이들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미국 대외정책 역사상 최대의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조지 H. W. 부시는 CIA 국장이 됐다. 당시 상원은 CIA의 불법사찰 및 해외 불법작전을 다루는 청문회가 열리는 등 CIA의 월권에 대한 여론이 비등했고, 포드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인 부시가 CIA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부시를 라이벌로 생각한 럼스펠드는 CIA 국장은 언론에 나오지 않는 자리이고 부시가 CIA를 변화시키지도 못할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 부시는 외교 안보 정책에서 가장 준비가 잘 되었던 대통령으로 평가되는데, 그것은 부시가 유엔주재 대사, 주중 대사 그리고 CIA 국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는 상원의원 선거에 떨어져서 영문도 모르고 유엔주재 대사가 됐고, 럼스펠드한테 밀려서 주중 대사를 지냈고, 엘리옷 리차드슨에 밀려서 CIA 국장을 했던 것이니, 인생이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 사진은 2004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체니 부통령과 포드 전직 대통령, 그리고 럼스펠드 국방장관. 제럴드 포드는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 결코 못됐지만 그가 키워낸 럼스펠드와 체니가 미국을 이라크 수렁에 빠뜨린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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