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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을 승계한 부통령
작성일 : 2021-07-14 15:28조회 : 1,777
대통령을 승계한 부통령
미국은 대통령 후보가 부통령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해서 본선에 함께 진출한다. 러닝메이트 제도가 도입된 것은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덕분이다. 제퍼슨은 자신의 정적(政敵)인 존 애담스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을 했고, 자기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신의 정적(政敵)인 에런 버(Aaron Burr)가 부통령이 되어서 고생이 많았기 때문에 선거인단 투표 1위와 2위를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하는 헌법 규정을 고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기 선출하는 러닝메이트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후보는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데, 본선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선정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소속 정당 내부의 파워 게임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부통령은 상원 본회의 사회를 보는 것 외에는 고유 업무가 없어서 대통령을 대신해서 장례식 참석하는 게 주된 임무라는 농담이 있지만, 대통령이 임기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기 때문에 누가 부통령이 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20세기에 부통령으로 있다가 대통령이 사망해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경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캘빈 쿨리지, 해리 트루먼, 그리고 린든 존슨이 있다. 그중에도 원래는 장식용 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와 쿨리지는 대통령직을 승계해서 미국을 보다 건실하게 이끌어갔다고 평가된다. 1944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현직 부통령 헨리 월레스(Henry Wallace 1888~1965) 대신에 경량급 인사였던 해리 트루먼을 부통령 후보로 선출한 일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할 만하다. 헨리 월레스는 친소(親蘇)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월레스가 부통령으로 있다가 루스벨트가 사망한 후에 대통령이 되어서 6.25 전란(戰亂)을 맞았다면 해리 트루먼처럼 6.25 남침 직후에 미군을 한국에 파병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한국은 적화(赤化)되었을 것이다.
개혁성향의 공화당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1919)가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 1843~1901)의 러닝메이트가 된 이유는 독특했다. 루스벨트가 뉴욕 주지사로서 대기업의 횡포를 규제하는 등 개혁적 행태를 보이자 이를 보다 못한 공화당내 보수파들이 언론을 부추겨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전당대회에서 그를 부통령 후보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상원 본회의 사회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부통령으로 만들어 놓아야 노동자를 편들고 대기업을 옥죄는 일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취임 후 6개월 만에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독점금지법을 동원해서 재벌들에 철퇴를 가하게 된다. 루스벨트를 부통령이란 한직(閑職)으로 내보냈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호랑이를 불러드렸다고 낙담했을 것이다.
1920년 대선에 워렌 하딩(Warren Harding 1865~1923)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캘린 쿨리지(Calvin Coolidge 1872~1933)는 하딩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대통령이 됐다. 공화당의 파워브로커들은 성실하고 인상이 좋은 쿨리지를 부통령으로 선출해서 이미지 간판으로 내세우려 했는데, 하딩이 2년 만에 사망해서 쿨리지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딩 행정부는 부정부패 스캔들로 시끄러웠고, 하딩 대통령 자신은 여자관계 스캔들에 시달렸다, 영부인이 남편의 사망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영부인이 대통령을 독살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쿨리지는 천성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답게 정부를 조용하게 이끌었다. 쿨리지는 기업인 출신 앤드루 멜런 재무장관에게 경제정책을 전적으로 위임해서 1920년대의 번영을 이룩했다. 하딩의 심장마비는 미국과 공화당을 구한 ‘역사적인 심장마비’였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후보는 본선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러닝메이트로 선정한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운 경쟁자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상호간에 감정이 상해서 같이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60년 선거에서 존 F. 케네디가 텍사스 출신의 린든 존슨을 러닝메이트로 선정하고, 1964년 선거에서 린든 존슨이 미네소타 출신인 휴버트 험프리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한 것은 지역 안배를 의식해서였다. 1952년 선거와 1956년 선거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리차드 닉슨을 러닝메이트로 선정한 이유는 대통령 후보가 나이가 많아서 젊은 부통령 후보로 보완하고자 함이었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조지 H. W.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한 일은 여러 면에서 특이한 경우였다. 조지 H. W. 부시는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낸 경험이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잘 알았지만 정작 자신은 댄 케일이란 별로 알려지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또 그런 부통령을 거의 방치하다 시피 했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했기 때문에 부시는 과연 누구를 후계자로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
- 사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캘빈 쿨리지. 맥킨리와 하딩이 임기 도중 빨리 사망하고 그들보다 훌륭한 루스벨트와 쿨리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 미국은 '행운의 여신'이 돌보는 나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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