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레이건의 러닝메이트, 조지 H. W. 부시

작성일 : 2021-07-14 15:37조회 : 1,927

레이건의 러닝메이트, 조지 H. W. 부시

1980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 예비선거는 레이건이 선두를 달렸다. 하워드 베이커, 밥 돌 등 많은 후보가 나섰지만 조지 H. W. 부시만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레이건을 추격했다. 텍사스에서도 레이건에게 패배했음에도 부시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미시건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경선을 포기했다. 부시의 선거를 지휘했던 제임스 베이커는 부시가 레이건의 승리를 일찍 인정해야 부통령 자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부시는 승산이 없는 경선을 한 달간 더 지속했다.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1980년 7월 14~17일간 디트로이트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누가 레이건의 러닝메이트가 되는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레이건은 ‘보수’를 내걸고 출마했기 때문에 부통령 후보로는 실용주의자인 부시가 적합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부시가 과연 레이건이 지향하는 가치와 어울리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됐다. 레이건 캠프는 여론 조사를 해보는 등 대상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워드 베이커, 도널드 럼스펠드 등도 거론됐으나 부시와 포드 전 대통령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레이건의 선거참모들은 부시가 승리할 가망이 없는 경선 레이스를 한 달이나 끌었다는데 반감을 가졌다. 부시는 레이건이 너무 나이가 많다고 말하고 레이건의 감세(減稅 tax cut) 공약을 ‘주술(呪術)경제학(voodoo economy)’이라고 폄하해서 레이건 자신이 큰 상처를 입었다. 공화당 보수파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부시와 타협하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레이건의 참모들은 레이건의 의중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직 대통령인 포드가 러닝메이트가 되면 레이건-포드 팀은 현직 대통령-부통령인 카터-먼데일을 가볍게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포드가 러닝메이트로 유력하게 떠올랐다. 포드는 처음에는 이런 논의를 일축했지만 부통령에게 국정 운영의 상당부분을 맡기면 가능하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자 헨리 키신저 등 포드 행정부 멤버들이 모여들었고 국무 재무 등 각료 임명권을 인정하면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며, 이 경우 국무장관은 헨리 키신저, 재무장관은 앨런 그린스펀, 그리고 국방장관은 럼스펠드가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런 아이디어에 반대한 사람은 낸시 레이건 여사와 레이건의 안보보좌관으로 지정된 리차드 앨런이었다. 낸시 여사는 그런 발상은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던 중 포드 전 대통령이 사실상 ‘공동대통령(co-president)’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할 생각이 없었던 레이건은 포드를 러닝메이트로 하는 방안을 살려보려 했지만 전당대회 전날까지도 마음을 결정하기 못하고 있었다.

전당대회 전날 저녁, 레이건이 곧 포드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월터 크롱카이트가 진행하는 CBS 뉴스에 제럴드 포드가 출연했다. 크롱카이트는 포드에게 "당신이 공동대통령이 되느냐?”고 묻자 포드는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마침 이 방송을 본 레이건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레이건은 포드에게 러닝메이트 건이 무산됐다고 통보하고, 윌리엄 케이시, 에드윈 미즈, 마이클 디버, 리차드 앨런 등 참모진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리차드 앨런은 대안으로 부시를 제안했고 레이건은 즉시 받아들였다.

조지 H. W. 부시는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III 1930~ )와 함께 다른 호텔에 묵고 있었다. 부시는 자신의 정치적 행로가 중대한 기로에 서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부시는 자기가 레이건의 러닝메이트가 되지 못하면 다시 선출직에 도전하기가 어려움을 알고 있었으나 운명의 여신은 그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밤 11시 37분, 베이커는 레이건의 전화를 받았다. 레이건은 “부시가 옆에 있느냐”고 물었고 베이커는 부시에게 전화를 건넸다, 레이건은 부시에게 “내가 당신을 부통령 후보로 발표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나?”면서 두 가지를 추가로 물었다. 하나는 자신의 정책에 동의하느냐 이고, 또 하나는 낙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따르겠냐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닌 부시가 그렇다고 하자 레이건은 만족했고, 부시는 레이건에게 “영광입니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레이건-부시 팀이 탄생했다. 제임스 베이커도 레이건-부시 선거 팀에 합류했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레이건은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를 역대급 기록으로 패배시켜서 1980년대 ‘보수 전성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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