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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녀 동권(同權) 헌법수정안 (ERA)
작성일 : 2021-08-08 13:57조회 : 1,522
남녀 동권(同權) 헌법수정안 (ERA)
미국에서 순항하던 여성운동, 즉 페미니즘 운동이 벽에 부딪친 계기는 남녀 동권 헌법수정안(The Equal Rights Amendment : ERA)이었다. 헌법에 남녀 동등조항을 추가하자는 운동은 1920년대부터 있어왔으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하원에 셜리 치솜(Shirley Chisholm 1924~2005), 벨라 압주그(Bella Abzug 1920~1998) 같은 페미니스트 여성의원들이 진입을 했고, 그에 힘입어 성(性)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수정안을 발의하게 됐다.
1971년 10월, 하원은 354대 24, 기권 51표로 다음과 같은 ERA를 통과시켰다. “법 앞의 평등이 성(性)을 근거로 연방정부나 주(州)에 의해 부인되거나 침해될 수 없다. 의회는 이 조항을 적절한 입법을 통해 집행할 권한을 갖는다”("Equality of rights under the law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sex. The Congress shall have the power to enforce, by appropriate legislation, the provisions of this article.")
상원도 이듬해 3월, 84대 8로 이를 통과시켰다. 샘 어빈(Sam Ervin 1896~1985) 상원의원은 여성은 병역에서 면제된다는 조항을 추가하려 했으나 버치 바이(Birch Bayh 1928~2019) 상원의원은 그것을 삭제한 조항을 제안해서 최종적으로 바이 의원의 안이 통과됐다.
미국 헌법은 상하 양원을 각기 2/3 이상으로 통과한 헌법수정안은 50개 주의 3/4,즉 38개의 주(州)의 인준을 받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ERA는 주의 인준 절차에 회부되었고, 각 주는 주 의회의 동의를 얻어 인준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1973년 초까지 30개 주가 인준을 했다. 하지만 1974년부터는 ERA에 대한 반대여론이 비등해서 그 후 1979년 3월 인준시한까지 단지 5개 주만 ERA를 인준했다. 게다가 테네시 켄터키 등 5개 주가 인준을 철회해 버려서 시한까지 38개주가 인준할 가능성이 없어져 버렸다. 이에 의회는 상하원 합동결의로 인준시한을 1982년 6월까지 연장했다.
그럼에도 추가로 인준을 하는 주는 나오지 않았고, 인준시한을 연장한 의회의 결의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제기됐고, 1심 법원은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등 ERA는 절차적 문제를 두고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ERA는 실패하고 말았다.
ERA가 실패한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첫째는 필리스 슐라플라이(Phyllis Schlafly 1924~2016)가 이끄는 반대운동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원으로 1964년 대선 때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지지한 슐라플라이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뉴스레터를 통해서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여성들을 동원해서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슐라플라이는 ERA가 통과되면 국방부는 여성을 징집할 것이며, 여성이 가정에 충실하면서 미국적 가치를 지켜온 전통이 파괴될 것이며, 동성애와 낙태를 조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3년에 나온 미국 대법원의 낙태 자유화 판결 Roe v. Wade도 ERA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미국 대법원은 임신 3개월 이내의 낙태는 여성의 프라이버시에 속한다고 판시해서 낙태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으나 이 판결은 기독교 보수교단이 궐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렇게 해서 페미니스트는 낙태를 지지하는 반(反)생명적 집단이라는 주장이 퍼지게 되었다. 그 후 'Pro Life, Pro Family'가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낙태 찬성 여부가 리트머스 테스트처럼 후보자들을 괴롭히게 됐다.
1980년 선거에서 낙태에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됐고, 상원에서 ERA를 추진했던 버치 바이 의원은 낙선했다. 1980년대 ‘보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필리스 슐라플라이는 로널드 레이건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사진 (1)은 ERA 지지 집회. 가운데가 벨라 압주그 하원의원, 사진(2)는 ERA 반대집회, 가운데가 필리스 슐라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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