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보스턴 글로브의 '케리 검증' (동아일보 2007년 7월 20일)
2008-02-20 22:20 1,008 관리자

보스턴 글로브의 ‘케리 검증’
(동아일보 2007년 7월 20일)

한나라당 대선 주자 두 사람 사이의 ‘검증’을 둘러 싼 다툼은 ‘논쟁’을 넘어 ‘전쟁’의 단계에 다다른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이 상대방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한 덕분에 당내 경선에 검찰 수사가 큰 변수로 등장했다. 와중에 한나라당은 후보 검증위원회를 만들어서 청문을 실시했다. 청문이 통과의례 밖에 안 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었지만, 청문 자체는 두 사람에게 대단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청문을 했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라서, 후보들의 과거사에 대한 검증은 검찰 수사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자기와 관련된 문제를 검찰이 조사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부터가 기이한 현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명예훼손이 형사사건이 아니라서 고소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면 특히 그러하다. 공인(公人)이라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불리한 말만 나오면 고소부터 하는 세태는 분명히 잘못됐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는 언론의 역할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가 잘 보여 주듯이,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이 대통령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 법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언론이 여야 대권 후보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탐사(探査)보도를 했더라면 우리나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김대업 씨 사건만 해도 언론은 그의 주장을 실어 나르는데 그쳤지, 그것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파헤치지 못했다. 일부 언론은 그의 황당한 주장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지만 언론의 능력과 각오는 별반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언론의 탐사보도 기능은 전보다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툭하면 비판 언론을 상대로 정정 보도를 요청하고 반론(反論)을 요구함으로써 기자들의 취재 의욕을 위축시키는데 성공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한 오보(誤報)가 아닌 한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는 미국과 달리, 단순 과실에 의한 오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하는 우리나라 기자들의 취재활동의 반경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온 존 케리 상원의원을 발가벗긴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2002년 말 보스턴 글로브는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매사추세츠 출신의 존 케리 상원의원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계획을 편집국 차원에서 세웠다.
이미 상원의원 4선에 성공한 케리에 대해 더 이상 검증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편집국장은 유권자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으며, 케리 의원을 가장 잘 아는 보스턴 글로브가 그를 검증하는데 적격(適格)이라고 생각했다. 케리 의원을 26년째 취재해 온 기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담 취재팀은 케리 의원의 조상부터 그의 출생과 성장, 군 복무,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 상원의원으로서의 활동 등 모든 것을 샅샅이 훑었다.
케리 의원은 2003년 한해 동안 보스턴 글로브에 연재된 자신에 대한 기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케리 의원은 자신의 부계(父系)가 유대인이며, 할아버지가 보스턴 시내 중심가 건물에서 권총 자살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케리 의원을 취재한 기자들은 그가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무공훈장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상원의원으로서 케리가 일관성이 없음을 소상하게 밝혀냈다. 1년 동안 계속된 기사는 2004년 봄에 단행본으로 출판돼서 케리를 악몽처럼 괴롭혔다. 베트남 전쟁에 초급 해군장교로 참전한 케리가 취했던 석연치 못한 행동은 대선에서 악재(惡材)로 작용했다.
보스턴 글로브는 진보성향의 친(親)민주당 신문이다. 그럼에도 보스턴 글로브는 민주당 후보로 나설 케리를 검증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며, 자신들이 그 역할을 가장 잘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언론은 여야 대선 주자들에 대한 검증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4대강 '토론'을 하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