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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멜빈 레어드 : 닉슨의 국방장관
작성일 : 2022-04-18 11:49조회 : 1,183
멜빈 레어드 : 닉슨의 국방장관
베트남 전쟁을 시작해서 재앙을 불러온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나 이라크 전쟁을 무리하게 시작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멜빈 레어드(Melvin R. Laird Jr. 1922~2016)라는 미국 국방장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국방 전문가들은 오늘날 미국의 국방태세를 정립한 국방장관으로 닉슨 행정부에서 4년 동안 국방장관을 지낸 멜빈 레어드를 손꼽는다. 레어드는 격동의 시기에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베트남 전쟁을 매듭짓고, 징병제를 폐지하고 미군을 모병제 군대로 변화시켰으며, 낙후된 군사력을 감축하고 새 시대에 부응하는 무기 체계를 도입해서 오늘날 미군의 토대를 세웠다고 평가된다.
1968년 대선에서 승리한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은 민주당 소속 헨리 잭슨(Henry M. Jackson 1912~1983) 상원의원에게 국방장관을 제의했으나 대선 출마 계획을 갖고 있던 잭슨 의원은 예상했던 대로 거부했다. 그러자 닉슨은 하원의원이던 멜빈 레어드에게 국방장관을 제안했다. 레어드는 하원의원으로 머물겠다고 사양했으나 닉슨의 간곡한 부탁을 못 이겨서 수락을 했다. 그러면서 레어드는 자기는 절대로 장관을 4년 이상 하지 않을 것이며 국방부 인사를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닉슨은 이를 수락했다. 이로써 레어드는 미국 최초로 의원 출신 국방장관이 됐다. 닉슨이 의원 출신 국방장관을 선호한 것은 국방예산 등으로 의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멜빈 레어드는 1922년에 네브라스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위스콘신의 작은 도시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이면서 사업가였고 위스콘신 주 의회 상원의원을 지냈다. 레어드는 미네소타에 있는 칼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입대해서 2차 대전 막바지에 구축함 매독스함(USS Maddox)을 타고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다. 일본 전투기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기도 한 그는 1946년에 전역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매독스함은 1964년 3월 통킹만(灣) 공해상에서 북베트남 경비정의 공격을 받아서 의회가 통킹만 결의를 통과시켜서 존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에 대한 군사행동을 승인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레어드가 제대를 하고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주 의회 상원의원이던 부친이 사망했다. 레어드는 부친의 지역구에서 출마해서 주 의회 상원의원이 됐고, 1952년에는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 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고 1968년 선거에도 무난하게 당선됐으나 닉슨의 권고를 못 이겨서 하원의원직을 사퇴하고 국방장관이 됐다. 하원의원으로서 레어드는 국방과 보건의료를 다루었고 민권법과 투표권법을 지지했으나 한편으로는 1964년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그는 자신 보다 4년 앞서 하원에 들어온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Jr. 1913~2006) 의원과 교분이 깊었다. 레어드는 의사당을 좋아해서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도 의사당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면서 만나는 의원들과 담소를 했다고 전해진다.
레어드는 휼렛 패커드(HP) 컴퓨터 창업자인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1912~1996) 회장을 설득해서 국방차관으로 영입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닉슨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닉슨은 패커드를 각료급 자리에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패커드와 레어드는 의회 일로 만났을 뿐 깊은 교류는 없었는데, 패커드는 자신의 주식을 신탁하는 등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국방차관직을 맡았다.
차관인 패커드가 국방부 운영을 책임졌기 때문에 레어드 장관은 의회, 합참, 그리고 백악관과의 관계 등 정치적 활동과 전략적이고 거시적인 사안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패커드는 2년 동안 국방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맥나마라 장관이 도입한 관리예산(PPBS) 제도를 개선해서 합참이 예산 과정에 초기부터 참여하도록 했고, 자산 구매 시스템을 개선해서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보다 많은 권한을 갖도록 했다. 패커드는 국방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놓고 2년 만에 자기 회사로 돌아갔다.
레어드는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국방부 개혁을 위한 블루리본 패널을 구성했고, 이 패널은 100개 제안을 제출했으며 국방부는 그 중 많은 것을 채택했다. 정치인 출신 장관답게 레어드는 국방부의 문화를 바꾸어서 하위 실무진의 의견이 상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했고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스스로 의견을 내도록 하는 등 상명하복 방식이던 국방부 조직 문화를 변화시켰다. 레어드 장관과 패커드 차관은 탄도 미사일 방어 미사일(ABM) 개발을 지지해서 이에 반대하는 국무부와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닉슨은 ABM 개발을 추진했으나 소련과 협상이 이루어져서 ABM 배치를 제한하는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하원의원으로서 레어드는 처음에는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으나 1966년부터는 존슨 대통령이 전쟁을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어드는 미국이 명예롭게 베트남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닉슨의 견해에 동조했다. 국방장관이 된 레어드는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군대가 치러야한다면서 그것을 '베트남화'(Vietnamization)라고 불렀는데, 닉슨은 이 명칭을 자신의 공식적 입장으로 천명했다. 남베트남군을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면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정책은 레어드의 발상이었다. 레어드는 닉슨이 캄보디아에 대한 비밀 폭격을 하려 할 때에는 반대했다. 의회의 반응을 걱정해서였다. 레어드는 백악관이 합참과 연락을 할 때는 항상 국방부를 경유하도록 요구하는 등 백악관에 대해서도 할 말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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