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2년 미국과 한국

작성일 : 2022-10-08 22:22조회 : 768

1972년 미국과 한국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이 내건 공약은 이른바 진보 정책을 집대성한 것으로 기본소득 도입, 국방비 절반 삭감 등을 내걸었는데, 결과는 민주당의 역대급 참패와 닉슨 대통령의 대승(大勝)이었다. 하지만 그 해 6월에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과 케네디 의원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은 반격에 나서게 되고 결국 닉슨은 사임하게 된다.

50년 전인 1972년, 나는 대학 3학년이었다. 그 해 여름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고, 그해 가을에 ‘10월 유신’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1971년~72년 동안 안보 위기론이 팽배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71년 봄, 주한 미군 7사단이 본국으로 철수하자 닉슨 독트린과 결부해서 그것이 미군 전면 철수의 전주곡(前奏曲)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통일 원칙이라면서 북한이 상투적으로 내세웠던 자주니 뭐니 하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서 의구심이 증폭됐다. 물론 그런 구상이 실현될 수는 없었고, 가을에는 ‘10월 유신’이 도둑 같이 찾아왔다.

11월 초 미국 대선을 앞두고 키신저가 “평화가 손에 잡혀 있다”(“peace is at hand.")면서 파리 평화협정이 곧 맺어 질듯이 발표했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베트남에 나가 있는 국군 장병들의 가족은 그 메시지가 얼마나 기다려졌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슨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에 키신저는 “평화가 가까울 수 있지만”("peace can be near but..")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대공습이 다시 시작됐고, 결국 북베트남은 파리 협정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고 나면 남베트남의 공산화가 시간 문제일 것임은 누구나 짐작한 바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 것인가, 또 주한 미군이 언제까지 있을 것인가 하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주은래(周恩來) 4원칙 때문에 도요타가 우리나라가 철수한 것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신진자동차는 도요타의 코로나와 크라운을 조립해서 생산했다.) 한편, 그 즈음 신축이 끝나서 새로 문을 연 조선호텔은 미국이 한국을 떠나지 않을 증거라고 했다. 투자자가 미국 항공사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도요타가 떠난 빈자리는 포드와 손잡은 현대자동차가 채웠으니 현대로서는 기회였다.

한편, 1970년대 들어서 미국은 이민 문호를 넓혔다. 취업이민을 확대했고 가족·친척 초청 범위도 넓혔다. 그러자 미국 이민 붐이 일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미국 이민 대열에 가담했고 미국 대사관 앞은 장사진(長蛇陣)을 이루었다. 수련의(전공의)와 간호사는 물론이고 병아리 감별사 같은 3D 직종도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나갔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안간 안 보이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하는 경우가 늘었다.

당시 동숭동 서울 법대 건너편에 미대가 있었는데, 미대 입구에 ‘대학 다방’이 있어서 자주 들르곤 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사를 갈 무렵 그 다방은 문을 닫았는데, 독신이던 주인 아주머니(마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을지로 입구 쪽 명동에 ‘카이저호프’란 유명한 독일식 생맥주집이 있었는데, 그 주인도 문을 닫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72년 미국’을 글로 옮기다 보니 1970년대 초 격동의 세월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사진 (1) 1970년 조선호텔 신축 개관 사진
사진 (2) 어느 의사분이 자기 블로그에 1970년대 초 미국 이민에 대해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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