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高)금리, 그리고 플라자 합의

작성일 : 2022-10-29 18:51조회 : 661

고(高)금리, 그리고 플라자 합의

요즘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를 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선을 넘보는 모양이다. 저금리 세상에서만 살아 온 세대에는 이것이 큰 쇼크이겠으나 고금리 시대에 성장한 우리 세대에겐 지금 비로소 정상을 찾아가는 듯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재산형성저축이라는 적금이 있어서 봉급생활자는 누구나 그것을 들었다. 재형저축 금리는 15%에서 20%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80년대에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 청약을 해서 내 집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사게 된 것은 1997년 경제위기가 끝나고 저금리 시대가 열린 후가 아닌가 한다.

1979~80년대 초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시절에는 미국 금리는 두 자리였고 인플레이션도 두 자리였다. 1970년대 미국 경제가 그렇게 된 주된 원인은 케네디/존슨 행정부가 시작한 베트남 전쟁과 존슨 행정부가 시작한 ‘위대한 사회’ 복지 정책으로 인해 재정적자가 누적돼 왔고, 1973년 중동전쟁으로 석유류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9년에는 이란 사태로 2차 석유 파동이 일어서 휘발유 가격이 다시 폭등했으니 인프레는 피할 수 없었다.

그 시절 포드와 GM은 자동차를 사면 15%~16%로 할인된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고 광고를 했다. 그런 금리를 부담하고 새 차를 사기는 어려워서 당시 미국 사람들은 낡은 자동차를 바꾸지 않고 탔다. 이란 사태로 휘발유가 1갤런에 1 달러를 훌쩍 넘어서 1.30 달러 수준이 되자 휘발유를 많이 먹는 낡은 큰 차를 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15% 금리를 내고 연비가 좋은 새 차를 사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를 사지 않고 주택을 사지 않으면 경기침체가 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또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 같다. 지미 카터가 현직 대통령으로선 1980년 대선에서 역대급 기록으로 참패한 것도 대외정책에서 실패하고 이런 경제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 취한 첫 조치는 휘발유 가격 통제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자 갤런 당 1.30 달러 수준이던 휘발유가 갤런 당 1.45 수준으로 약 10%가 당장 올랐다. 그러더니 몇 달 후부터 갤런 당 1.20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석유회사들이 증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이저 소속이 아닌 독립 브랜드 휘발유는 조금 더 싸서 그런 주유소를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장이 금리를 인상해서 금리는 역사적으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아래 도표 참조) 그러한 고(高)금리는 달러화 고(高)평가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일본, 홍콩,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었다. 1980년 전후 격변기 미국을 보면서 나는 규제를 풀어 경쟁을 하고 또 자유무역을 해야 물가가 잡힌다고 피부로 느꼈다.

내가 중앙대에 직장을 잡은 시점에 중앙대는 뒤늦게 시작한 의대와 부속병원에 투자를 많이 했다. 그때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제공한 경협자금(차관) 중 교육 분야로 제공한 저금리 자금을 엔화 표시로 사립대학에 빌려 주었는데, 의대와 부속병원 때문에 중앙대가 그런 자금을 제법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일본 정부는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후 차관을 중단했다가 1982년 말 DJ가 도쿄를 거쳐 미국으로 가게 됨에 따라 주권침해-한국 기관원들이 도쿄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을 의미-가 해소됐다고 보고 차관 공여를 재개했고, 그것이 전두환 정권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장기 저(低)이자로 일본 자금을 쓸 때는 좋았는데, 몇 년 후 큰 문제가 발생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엔화를 절상하자 별안간 엔고(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학이 빌린 엔화 표시 채무가 원화로 폭증한 것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중앙대는 안성 캠퍼스를 빚으로 건설해서 학교 부채가 많을 때였다. 그래서 학교는 별의별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어수선했다. 그러다가 1987년 가을에 재일교포 부동산 사업가인 김희수 씨가 중앙대를 인수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김희수 이사장은 엔화를 들고 와서 대학이 갖고 있던 빚을 일거에 해소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수’ 조건이었다. 나는 ‘플라자 합의’가 내 직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때 세상 모든 일은 기복(起伏)이 있음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 플라자 합의 (The Plaza Accord) :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서 달러화에 대한 자국 화폐를 절상하기로 한 합의, 이로서 일본 엔화 가치가 높아졌고 이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또는 20년)’을 촉발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이전글전기, 자서전, 회고록

다음글로널드 레이건 일기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