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헨리 키신저와 2차 대전

작성일 : 2022-12-21 10:50조회 : 644

헨리 키신저와 2차 대전

2차 대전은 여러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계기가 됐다. 유럽 전쟁을 지휘했던 아이젠하워는 그 명성에 힘입어서 대통령이 됐다.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케네디, 닉슨, 포드, 그리고 부시는 모두 전쟁 체험이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결국 대통령으로 가는 계기가 됐다. 2차 대전은 헨리 키신저에게도 그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계기였다.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1923~)의 원래 이름은 Heinz Alfred Kissinger였다. 키신저는 1923년 5월, 독일 바바리아 주의 퓨르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유태인으로 종교적이었고, 아버지는 집에 많은 책을 갖고 있던 지적인 사람이었다. 키신저와 그 동생은 유태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자랐다.

1920년대 독일에는 반(反)유태주의가 성행했고, 1933년 초 나치가 집권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키신저의 아버지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교직을 잃어버렸다. 유태인을 공식적으로 차별하는 뉘른버르그 법률이 통과되자 키신저의 어머니는 미국에 사는 사촌의 도움으로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된다. 1938년 8월, 키신저의 부모는 두 아이를 데리고 키신저의 외조부모와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고 영국으로 출국했다. 키신저 가족은 영국을 거쳐 뉴욕시에 도착했다. 독일에 남은 키신저의 외조부모 등 친척들은 유태인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938년 9월 뉴욕시 워싱턴하이츠라는 유태인 지역에 도착한 키신저 가족은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키신저는 이름을 미국식으로 헨리로 바꾸었다. 키신저 가족은 살기 위해 아무 일이든 해야만 했다. 키신저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키신저는 학비가 무료인 뉴욕시립대학(CUNY) 야간반에 들어가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키신저는 회계사가 될 꿈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했고 대학 1년을 마친 키신저는 징집이 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기초 훈련을 받은 키신저는 특기병 프로그램에 선발돼서 반년동안 공학 교육을 받았고, 루이지애나에 주둔하고 있던 84사단에서 특기병 교육을 받았다. 입대를 통해 미국 시민이 된 키신저는 84사단에서 독일 출신 정치학자 프리츠 크래머(Fritz Kraemer 1908~2003)를 만나게 된다. 1944년 11월, 육군 84사단은 독일로 향했다. 84사단은 독일군의 마지막 공세로 벌어진 벌지 전투에 참가했다. 84사단에서 키신저는 독일어 능력을 인정받아서 사단 본부에 배속돼서 독일인을 심문하고 독일어 문서와 정보를 분석해서 보고하는 일을 했다. 84사단이 하노버로 진격하자 부사관으로 승진한 키신저는 독일군 포로를 심문하는 등 정보반에서 일했다.

독일어에 능통한 유태인이라는 장점에 힘입어 키신저는 방첩대(CIC) 요원으로 포로로 잡힌 게슈타포와 나치 당원을 심문해서 정보를 빼내는데 능력을 발휘했다. 키신저는 게슈타포 한명을 회유해서 게슈타포 45명을 체포하는 수훈을 세워서 동성무공훈장을 탔다. 1945년 4월, 84사단은 아렘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를 접수했다. 키신저는 처참한 수용소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 때 살아남은 한 유태인이 수용소를 접수하러 온 키신저를 기억해서 나중에 당시의 키신저를 증언한 바 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은 항복했고, 84사단은 하이델베르그 인근에 주둔했다. 독일어에 능통한 키신저는 부사관 신분으로 부근에 있는 벤샤임이란 작은 마을을 직접 통치하게 됐다. 22살인 키신저는 누구든 체포 구금할 수 있는 권력자로서 마을을 관리했다. 키신저는 15살 때 떠나온 고향을 찾아 갔으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사망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46년 4월 키신저는 미군 사령부가 독일 현지 사정을 장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만든 기관에서 교관으로 독일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이 교육기관은 프리츠 크래머가 관장하고 있어서 키신저는 크래머를 다시 만났다.

전역을 한 키신저는 미국에 돌아가서 대학을 마칠 생각을 했는데, 그 때 크래머가 하버드를 지원하라고 강력히 권했다. 하버드에 지원해서 장학생으로 선발된 키신저는 1947년 7월 뉴욕시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부모를 만났다. 키신저는 더 이상 회계사를 꿈꾸던 젊은이가 아니었다. 넓은 세상을 구경한 키신저는 힘(power)이 없었던 유태인이 어떻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작은 마을을 통치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다. 키신저의 정치학은 항상 힘(power)을 토대로 한 것이라서, 2차 대전 중 군 경험이 그 후 우리가 아는 헨리 키신저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겠다.

* 프리츠 크래머(Fritz Kraemer 1908~2003) 독일 태생의 유태인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 런던경제대학 등에서 공부를 하고 국제연맹에서 일한 정치학자로, 나치 통치를 피해서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전쟁 발발로 미군에 입대한 그는 84 사단 소속으로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돼서 종전 후 독일에 주둔할 장교들을 교육하는 기관을 운영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1978년에 은퇴할 때까지 펜타곤 자문역을 지내면서 많은 장교들을 가르쳤다.

사진 : 독일 주둔 시절의 키신저와 프리츠 크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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