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신저, 하버드 시절

작성일 : 2022-12-21 10:59조회 : 636

키신저, 하버드 시절

2차 대전이 끝나고 참전용사 200만 명이 G.I.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코네티컷이 고향이고 부친이 예일대를 다닌 조지 H. W. 부시(1924~2018)는 예일대를 다녔고, 헨리 키신저는 프리츠 크래머의 추천으로 하버드를 다녔다. 1947년에 2학년으로 하버드에 입학한 키신저는 학교와 기숙사를 왕복하면서 공부와 책에 빠져 살았다. 2년차에 키신저는 사귀어 오던 앤 플라이셔와 결혼을 했다. 키신저는 정치철학을 가르치던 윌리엄 엘리엇(William Y. Elliott 1896~1979) 교수의 지도로 졸업논문을 쓰고 최우등 졸업을 했다.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한 엘리엇 교수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이 있었다.

엘리엇 교수는 키신저에게 칸트에 대해 연구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키신저는 ‘The Meaning of History : Reflection on Spengler, Toynbee and Kant'라는 거의 400쪽이 되는 졸업논문을 완성했다. (내년 초에 같은 이름으로 나올 책은 이 논문을 보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논문을 읽어 본 학자들은 키신저는 역사를 ’비극의 스토리'(‘the story of tragedy')로 파악하고 있어서 낙관론을 기조로 하는 미국적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1차 대전에 참전해서 전쟁을 겪고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공부한 엘리엇 교수와 독일 태생 유태인으로 2차 대전을 경험한 키신저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키신저가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곧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키신저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엘리엇 교수는 한국 전쟁을 “서구 문명의 생존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試金石)”으로 보았다. 이런 입장은 한국 전쟁을 계기로 공산권과 전면 대결 태세를 준비하던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키신저는 1년 만에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 무렵 엘리엇 교수는 서유럽의 유망한 젊은이들을 초청해서 여름에 6주 동안 세미나를 개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 실무를 키신저에게 맡겼다.

키신저는 미국의 저명인사를 초청해서 서유럽, 일본, 동남아 등 전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제도를 중심으로 한 이 세미나는 1951년에 시작해서 그 후 18년 동안 계속됐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 나라에서 대통령, 총리, 장관, 유력한 경영자, 언론인이 된 경우가 많아서 키신저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 세미나를 시작할 때 키신저는 이 세미나가 자신을 나중에 국무장관으로 만드는 토대가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엘리엇 교수는 국무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키신저가 정부 컨설팅 일을 하도록 했고, 그 일환으로 키신저는 1951년에 한국에 와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엘리엇 교수와 키신저는 대외정책을 다루는 잡지를 함께 발행하기도 했는데, 그 자금 출처가 CIA였다는 주장이 나중에 제기되기도 했다. 1954년 6월, 키신저는 비엔나 조약 체제를 다룬 ‘Peace, Legitimacy, and Equilibrium'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외교는 군사력과 분리할 수 없으며, 진정한 평화는 세력균형에서 온다는 주제를 담은 이 논문은 그 후 키신저의 외교 노선을 예고한 것이었다. 15세에 맨몸으로 미국 땅에 도착한 독일 태생의 유태인 키신저가 나중에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데는 프리츠 크래머와 윌리엄 엘리엇의 힘이 컸다.

- William Yandell Elliott (1896–1979) 테네시 출신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하고 밴더빌트 대학을 졸업한 후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 유학해서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해서 192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버클리 교수를 잠시 한 후 하버드 교수가 되어 1963년 은퇴할 때까지 38년 동안 정치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해서 맥조지 번디, 피에르 트뤼도 등을 가르쳤고 특히 키신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클레어몬트 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미국 대법원의 선거 관련 판결을 비판한 <The Rise of Guardian Democracy>를 펴낸 정치학자 Ward E. Y. Elliott는 그의 아들이다.

- 사진 (1) 윌리엄 엘리엇 교수 (2) 하버드 학부 시절의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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