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신저, 하버드 교수

작성일 : 2022-12-23 17:11조회 : 586

키신저, 하버드 교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존 F. 케네디나 조지 H. W. 부시와 달리 헨리 키신저는 투쟁을 해야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 보다 잘 알았다. 1954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키신저는 하버드 정부학부(Department of Government)에서 조교수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엘리엇 교수의 힘으로만 조교수가 될 수는 없었다. 엘리엇 교수와 키신저가 정부를 기웃거리고 학자 같지 않다고 생각한 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하버드는 키신저에게 강사(instructor) 자리를 주고 강의를 하도록 했다. 이때 시카고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이 키신저에게 조교수를 제안했으나 키신저는 하버드에 머물면서 기회를 보기로 했다.

강의를 하면서 하계 세미나를 주관하고 있던 키신저에게 당시 대학원장이던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1919~1996, 케네디 백악관에서 안보보좌관을 지내면서 베트남 전쟁 개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외교협의회(CFR)의 스터디 그룹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었다. 키신저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자문역을 맡고 있던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 뉴욕 주지사를 지내고 2년 동안 포드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을 지냄)를 외교협의회에서 만나게 된다.

록펠러는 키신저에게 록펠러 재단 프로젝트 일을 부탁했고, 키신저는 막강한 재력을 갖고 있는 넬슨 록펠러를 버터 바르는 식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키신저가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 될 때까지 지속됐다. 록펠러는 키신저에게 상당한 보수를 매년 주었다. 말하자면, 키신저는 록펠러의 장학생이었다. (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키신저의 성품을 보여 준다. 록펠러로부터 받은 액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974년 가을에 포드 대통령이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후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알려지게 된다.)

그 즈음 키신저는 <핵무기와 대외 정책>을 출간했다.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핵무기를 통한 대량보복에 의존하는 아이젠하워의 정책을 비판하고 재래식 무기를 확충해서 제한적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키신저는 월가(街)의 변호사와 사업가들이 국무장관을 하는 등 미국 외교를 이끌어온 것을 비판했다. 이렇게 해서 키신저는 널리 알려졌지만 하버드 교수 자리는 그래도 만만치 않았다.

1957년 봄, 맥조지 번디 대학원장은 키신저에게 ‘Lecturer' 자리를 제안했고 키신저는 이를 받아 드렸다. 당시 하버드에서 정규 교수(tenured faculty)가 되기 위해서는 조교수(assistant professor)가 되어서 6~7년 동안 연구를 하고 테뉴어 심사를 받는 통상적인 테뉴어 트랙 외에도 조교수급인 ’Lecturer'가 되어서 2~3년 후에 테뉴어 심사를 받는 또 다른 길이 있었는데, 맥조지 번디는 이런 통로를 키신저에게 제안한 것이다. 맥조지 번디 자신이 이런 길로 정규 교수가 되고 34세 나이에 대학원장이 됐음을 아는 키신저는 이 제안을 받아 드렸다.

키신저는 록펠러 재단과 포드 재단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하계 세미나를 운영하고 외교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와 재계 인사들과 인맥을 구축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테뉴어 심사권을 갖고 있는 정교수들을 상대로 열심히 운동을 했다. 교수 회의에선 찬반 논쟁이 치열했지만 맥조지 번디의 노력에 힘입어 1959년 7월, 키신저와 스탠리 호프먼(Stanley Hoffmann 1928~2015)은 테뉴어 심사를 통과해서 부교수가 됐다. 키신저와 경쟁했던 츠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ński 1928~2017.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냄)는 탈락해서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겼다. 하버드 교수가 된 키신저는 이제 날개를 단 셈이었다. 그러나, 하버드 교수라는 타이틀은 키신저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음을 위한 발판이었다.

- 사진 하버드 교수 시절의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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