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보좌관을 꿈 꾼 키신저


키신저를 하버드 교수로 이끌어 준 사람이 윌리엄 엘리엇이라면 키신저를 정치 무대로 데뷔 시킨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다. 거대  석유회사 창업자의 손자인 록펠러는 공직에 관심이 있어서 트루먼 행정부에서 잠시 일했고,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선 보건교육복지부 차관을 1년 남짓 지냈다. 록펠러는 자기의 재력을 바탕으로 브레인을 모으던 중 헨리 키신저를 만나게 됐다. 록펠러는 1958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돼서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리더로 부상했다.

록펠러는 1960년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리차드 닉슨한테 밀려서 곧 포기했다. 그 해 키신저는 <선택의 필요성>이란 책을 내서 제한적 전쟁에서도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록펠러의 사람인 키신저는 공화당 후보 닉슨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선에서 케네디를 찍었다. 키신저는 소련과의 미사일 경쟁에서 미국이 지고 있다면서 공화당을 비난했던 케네디를 지지했고, 케네디는 근소한 차이로 닉슨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케네디는 하버드 대학원장이던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1919~1996)를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고 하버드의 역사학 교수 아서 슐레신저(Arthur M. Schlesinger Jr. 1917~ 2007)를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키신저는 케네디 백악관에서 일을 하기를 원했으나 적절한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맥조지 번디는 하버드 정치학 교수가 두 사람이나 백악관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번디는 키신저에게 파트타임으로 자문을 하도록 했고, 키신저는 그 자격으로 유럽을 방문하기도 했다. 키신저가 언론에 한 이야기가 케네디 정부 입장인 것처럼 보도가 되자 번디는 키신저에게 짜증을 냈다. 한해 만에 키신저는 백악관 일을 그만두고 하버드에서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면서 록펠러 재단의 일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키신저는 케네디 대통령이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키신저는 상대방에 대한 대응이 미온적이면 상대방이 또 다시 도발하게 된다는 생각을 그 후에도 견지하게 된다.

그 즈음 키신저는 대학 시절에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둔 부인 앤과 별거를 하고 1964년에 네바다 주에 가서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키신저가 자기 일에만 몰두해서 부인과 두 아이와 멀어진 면도 있지만 키신저는 케네디, 록펠러 등 명문 가문과 교류하면서 소박한 자기 부인이 상류 사회에 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 키신저는 혼자 살면서 언론의 눈을 개의치 않고 많은 여성을 만났다. 키신저는 록펠러 재단에서 일하던 낸시 매기니스(Nancy Maginnes  1934~)와 오래 사귀었고 두 사람은 1974년에 결혼했다.

1964년 대선이 다가오자 록펠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케네디는 1964년 대선에서 록펠러가 공화당 후보가 돼서 자기와 겨룰 것으로 생각했지만 1963년 11월에 암살되고 말았다.  1964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존슨 대통령의 출마가 기정사실이었고 공화당 후보로는 록펠러가 유력하게 보였다. 하지만 록펠러가 부인과 이혼하고 불륜관계였던 기혼녀와 재혼을 하자 공화당 내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록펠러는 후보 경선에서 3위로 밀렸고,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록펠러가 연설을 하자 여기저기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이 모습을 본 키신저는 공화당내 우파는 자기와 거리가 먼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1964년 대선에서 키신저는 존슨 대통령을 찍었다. 연임에 성공한 존슨은 베트남 전쟁을 확대해 갔고, 그런 전쟁 정책을 이끌고 간 맥조지 번디와 월트 로스토우는 키신저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시아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키신저도 베트남 정책에 간여하게 된다.

사진 (1) 케네디 대통령과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키신저는 대통령이 누구이든 간에 자기도 맥조지 번디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사진 (2) 키신저는 결국 닉슨의 안보보좌관이 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