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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수 키신저와 베트남 전쟁
작성일 : 2022-12-26 08:26조회 : 590
교수 키신저와 베트남 전쟁
핵무기 전략과 유럽 정치를 연구한 키신저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고문단이란 이름으로 그린베레 등 병력 16,000명을 남베트남에 파견했다. 키신저는 중요한 대외정책으로 떠오른 베트남 전쟁에 간여하고 싶었다. 키신저는 자기가 잘 아는 맥조지 번디와 월트 로스토우를 통해 자신도 케네디 정부의 베트남 전쟁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자신이 베트남 전쟁 정책에 간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섰다.
연임에 성공한 존슨 대통령은 1965년 들어서 정규군을 대규모로 파병하는 등 베트남 전쟁을 확대시켰다. 키신저는 헨리 캐봇 롯지(Henry Cabot Lodge Jr. 1902~1985) 남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의 초청을 받아서 사이공을 2주일 동안 방문했다. 키신저는 티우 대통령 등 남베트남 정부 요인을 만나고 미군 사령부의 브리핑을 들었다. 사이공에서의 비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키신저가 남베트남 정부가 무능력하다고 한 발언이 기사화돼서 키신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66년 여름, 키신저는 사이공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현지 지휘관과 외교관들과는 달리 키신저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룩(Look)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베트남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되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성급하게 철수하면 미국 정부의 신뢰가 상실될 것이라고 주장해서 주목을 받았다. 1967년 7월, 키신저는 호지민이 파리에서 유학을 할 때 알았던 프랑스 사람을 거쳐서 북베트남에 연락을 취해서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키신저는 월트 로스토우를 통해서 이 가능성을 존슨 대통령에게 알렸다.
사이공과 채널이 없었던 존슨과 그 참모들은 키신저의 중개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키신저는 파리에 들러서 호지민 측과 연락을 했으나 호지민 측은 미국이 조건 없이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존슨의 참모들은 북베트남 측의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보아서 키신저의 비밀 외교는 성과 없이 끝났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키신저는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 정책에 계속 간여할 수 있게 됐다.
키신저가 록펠러 뉴욕 주지사의 사람임은 존슨 행정부 사람들도 잘 알았다. 록펠러는 공화당원이었지만 민권과 복지 정책에서 존슨 행정부와 보조를 같이 했기 때문에 존슨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다. 1968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에선 닉슨 외에도 조지 롬니 미시건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이 대선 후보 물망에 올랐다. 1964년 대선 경선에서 참패한 록펠러는 1968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얼마 후 마음을 바꾸어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키신저는 록펠러 팀에 가담해서 베트남 정책 등 외교 분야에 대한 록펠러의 입장을 만들었다.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 규칙은 지금과는 달리 프라이머리 보다 각 주(州)의 대의원 회의가 비중이 컸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부터 닉슨은 록펠러 등 다른 후보들을 누르고 1위를 이어 갔고 그 해 8월 마이애미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닉슨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레이건은 예상보다 선전했으나 록펠러는 초라한 결과를 얻는데 그쳤다.
록펠러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사라지자 키신저는 실망이 컸다. 록펠러 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키신저가 닉슨을 경멸했다고 나중에 증언했다. 키신저는 닉슨이 깊이가 없고 외교에 아는 것이 없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혹평했다고 전해진다. 공화당 후보가 닉슨으로 정해지자 키신저는 자기는 공화당원이 아니라고 공언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키신저는 자신이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 정책에 간여해 온 인연을 이용해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휴버트 험프리 상원의원 쪽에 가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닉슨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키신저의 위험한 양다리 걸치기가 시작된 것이다.
- 맥조지 번디(McGeorge "Mac" Bundy (1919~1996)는 하버드 대학원장을 하다가 케네디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 됐다. 베트남 전쟁이 뜻대로 되지 않자 회의를 느낀 번디는 1966년 초 안보보좌관직을 내려놓았다. 그 후 포드 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뉴욕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베트남 전쟁이 실패하게 된 경위에 대해 번민했다. 그의 형 윌리엄 번디(William Bundy 1917~2000)는 CIA에서 일하다가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을,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차관보를 지냈다. 윌리엄 번디는 한국전쟁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Dean Acheson 1893~1971)의 사위이다. 윌리엄 번디는 장인인 애치슨이 다닌 그로턴 고교, 예일대, 하버드 로스쿨이라는 동부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윌리엄 번디는 키신저 외교를 비판한 책 <A Tangled Web>을 일생의 역작으로 남겼다.
- 월트 로스토우(Walt Rostow 1916~2003)는 예일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하고 MIT에서 교수를 지내던 중 케네디에 의해 국무장관 보좌관 겸 정책국장으로 발탁됐고 번디의 후임으로 존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월트 로스토는 후진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관한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 실패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MIT로 돌아가지 못하고 텍사스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의 형 유진 로스토우(Eugene Rostow 1913~2002)는 예일 로스쿨을 나오고 예일 로스쿨 학장을 지낸 후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지냈다.
사진 (1) 백악관에서 존슨 대통령을 만난 키신저. 왼쪽은 월트 로스토우 안보보좌관. 1967년 가을. 키신저가 얼마나 권력 지향적이고 기회를 추구하는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비록 하버드를 나왔지만 독일계 유태인인 키신저는 번디 형제 같은 개신교 백인 ‘동부 엘리트’가 아니어서 그런 성격이 형성됐을 것이다.
사진 (2) 백악관 상황실에서 베트남 지도를 펴놓고 폭격할 지점을 살피는 존슨 대통령과 로스토우 안보보좌관. 존슨 시절에는 백악관이 군사 목표를 정했다. 합참 수뇌부에서 직접 폭격에 나서는 해·공군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이런 전쟁 방식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반면에 닉슨은 폭격 결정을 하면 합참으로 하여금 타깃을 선정토록 했다. 월트 로스토우는 후진국 경제개발을 연구한 경제학자였는데,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군사적 결정에 깊이 간여했다. 로스토우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어서 로스토우를 ‘존슨 정부의 라스푸틴(요승 妖僧)’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로스토우의 경제개발 단계론이 들어맞은 유일한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백악관을 나온 후 로스토우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로스토우가 백악관을 나와서 환영 받은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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