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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너 체놀트
작성일 : 2022-12-29 09:28조회 : 614
애너 체놀트
키신저를 통해서 존슨 대통령이 선거 직전에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하고 평화 회담 개시를 발표할 것이라는 정보를 들은 닉슨은 남베트남 티우 대통령에게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보다 좋은 입장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사람은 애너 체놀트(Anna Chenault 1923~2018)였다.
중국 이름은 첸시양메(陣香梅)인 애너 체놀트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홍콩에서 공부하고 기자를 하다가 2차 대전 중 남중국과 미안마르에서 민간 전투항공대(Flying Tigers)를 조직해서 일본군과 싸운 전설적인 클레어 체놀트(Claire Chenault 1893~1958) 장군과 결혼을 했다. 트루먼 행정부가 장제스 정부에 대한 원조를 삭감해서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었다고 주장한 체놀트는 부인과 함께 장제스 정부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애너 체놀트는 워싱턴 정계와 사교계에서 차이나 로비스트이고 열성적인 공화당 지지자로 이름을 날렸다.
체놀트는 남베트남을 지지하고 또 베트남 전쟁을 지지해서 워싱턴 주재 남베트남 대사와 긴밀한 관계였다. 원래 잘 아는 닉슨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체놀트는 워싱턴 주재 남베트남 대사 부이 디엠에게 닉슨의 뜻을 전달했고 디엠 대사는 티우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존슨의 4자 회담 제안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던 티우는 존슨의 발표가 있은 후 이틀도 안돼서 공개적으로 거부를 해서 존슨과 험프리에게 낭패를 안겼다.
하지만, 닉슨이 몰랐던 일이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에드가 후버 FBI 국장에게 워싱턴 주재 남베트남 대사관과 공화당 지지자인 애너 체놀트의 전화를 도청하도록 지시해 놓았던 것이다. 에너 체놀트가 남베트남 대사에게 “우리가 이긴다. 버티라고 보고하라”고 통화한 내용을 보고 받은 존슨은 분노했다. 11월 2일, 존슨은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이지만 자신과 가까운 에버렛 덕슨(Everett Dirksen 1896~1969)과 통화하던 중 닉슨이 평화협상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반역(treason)”이라고 화를 냈다. 놀란 덕슨 의원은 닉슨에게 전화를 했다. 닉슨은 참모들과 의논한 후 그 다음날 존슨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는 “남베트남 티우 대통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존슨은 별 다른 말이 없이 덕담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존슨과의 통화가 끝난 후 닉슨과 참모들은 축배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틀 후 대선에서 닉슨은 승리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존슨의 안보보좌관이던 월트 로스토우는 선거 전날 닉슨이 평화협상을 방해했다고 공표해서 닉슨을 파멸시켜야 한다고 존슨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존슨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FBI가 민간인과 우방국 대사를 도청했음을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노회한 정치인인 존슨 대통령은 그렇게 하다가는 누가 당선되고 누가 낙선하든 간에 모두가 파멸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존슨은 닉슨의 전화를 받고 덕담이나 했으며, 또 그럴 것으로 알았던 닉슨은 축배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슨은 키신저가 닉슨 측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키신저는 도청을 우려해서 닉슨 측에 전화할 때는 거리의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키신저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그 때 키신저를 닉슨의 핵심 참모에게 연결시킨 리차드 앨런(Richard Allen 1936~)이 1983년에 뉴욕타임스의 시무어 허시 기자에게 폭로해서 알려졌다. 닉슨 캠프에서 외교 분야를 맡았던 앨런은 키신저를 비밀리에 닉슨과 연결시켰다. 닉슨은 대통령 취임 후 앨런을 키신저 아래에서 부보좌관으로 일하도록 했다. 하지만 키신저는 앨런을 박대하고 소외시켜서 반년 만에 앨런은 백악관을 나와서 원래 있었던 연구소로 돌아갔다.
앨런은 그 후 대선을 준비하던 로널드 레이건의 참모가 돼서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안보보좌관이 됐다. 하지만 앨런은 일본 NHK 방송이 낸시 여사와 인터뷰하도록 해준 일과 관련해서 1년 만에 사임했다. NHK 방송이 감사의 뜻으로 달러가 든 봉투를 전달하자 앨런은 급한 대로 캐비넷에 넣고서 잊어 버렸는데 한참 후에 다른 일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자 앨런은 사임을 하고 말았다. 야인이 된 앨런이 1968년 대선 당시에 있었던 일을 증언해서 키신저의 양다리 걸치기가 알려지게 됐다. 조지 H. W. 부시, 그리고 부시의 친구로 레이건 행정부에서 비서실장과 재무장관을 지내고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도 키신저한테 홀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레이건-부시 공화당 정부 12년 전성기 동안 키신저는 뒷전으로 밀려 나고 말았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키신저와 대선 전에 간접적으로 교류했음을 인정했으나, 티우 대통령과 ‘모의’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잡아뗐다. 키신저도 자기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애나 체놀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닉슨의 비서실장을 지낸 밥 홀드먼이 대선 직전에 닉슨의 지시를 받아 적은 메모(‘Keep Anna Chenault working on SVN')가 나중에 나와서 흔히 ‘체놀트 사건’(The Chenault Affair)이라고 부르는 이 일은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 : 백악관을 방문해서 닉슨과 키신저를 만난 애너 체놀트 (1971년 4월). 체놀트는 자신 만만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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