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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F-111, B-1, F-14
작성일 : 2023-01-08 20:18조회 : 736
F-111, B-1, F-14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은 F-4 팬텀기 외에도 아이다호 주 기지에 있던 F-111 초음속 폭격기 20대를 오산 기지에 파견했다. F-4 팬텀은 1960년대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우리 공군이 운용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F-111 폭격기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은 F-111 5개 편대가 오산에 도착하고 괌에도 F-111과 B-52가 출격 대기 중임을 알고 오금이 지려서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사과의 서신을 보냈을 것이다.
1960년대 들어서 미군은 대공 미사일을 피해서 저공으로 고속 침투해서 폭격을 할 수 있는 전폭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중거리/단거리 폭격기들이 미사일에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존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지시하자 미군은 기존 자원으로 폭격 임무에 나서게 됐다. 미군은 북베트남의 대공 방어망과 북베트남 공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음이 곧 드러났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공군의 주력 폭격기는 F-105 선더치프였다. F-105는 아이젠하워 시대의 대량보복 전략에 입각해서 핵 폭탄 투하용으로 개발된 중거리 폭격기로 공중전에 취약했다. F-105가 북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하자 구식 미그기에 의해 격추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해서 공군 지휘부는 경악했다. 그래서 F-4 팬텀으로 하여금 F-105 편대를 호위하도록 했다. F-4 팬텀 초기 모델은 기관포가 없었는데, 당시는 미사일이 고장이 많아서 팬텀도 미그기와 교전에서 고전(苦戰)했다.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해군 항모에서 발진하는 A-4 스카이호크는 성능이 떨어지는 지상공격기였고 1960년대 들어서 보급된 A-6 인트루더는 전천후 폭격이 가능했으나 미사일과 대공포화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상원의원이 되는 존 매케인 대위도 A-4를 몰고 나갔다가 격추돼서 오랫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A-6는 영화 ‘Flight of the Intruder’에 나온다.) 베트남 전쟁에선 오직 F-4 팬텀만이 기대한 만큼의 역할을 했다.
F-111은 명칭이 ‘아드바크(Aardvark)’인데 발음이 이상해서 잘 쓰지 않는다. 아드바크는 아프리카 야생 돼지를 의미하는데 지상 요원들은 F-111을 그냥 돼지(Pig)로 불렀다고 한다. 두 명의 파일롯이 나란히 앉아서 조종하는 F-111은 가변익(可變翼) 초음속 중거리 폭격기였다. 지상 구조물을 레이더로 읽어서 고속으로 저공침투가 가능하고 팬텀기 보다 4~5배 많은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다. 최신기술이 동원된 만큼 가격이 비싸고 기술적 난점이 많아서 1968년에 베트남에 잠시 투입했다가 철수하고 기능을 보완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명령하자 이 작전에 투입돼서 좋은 성능을 과시했다.
F-111은 항모에서 운영하기에는 너무 커서 해군은 독자적으로 차세대 전폭기를 개발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나온 전폭기가 영화 <Top Gun>에 나온 F-14 톰캣이다. F-14는 F-111의 기술을 응용한 가변익 초음속 전폭기로 1974년 말부터 해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F-14는 베트남 전쟁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F-14은 1981년 8월 19일 리비아 해안 시드라 만(灣)에서 처음으로 실전을 겪었다. 초계 비행을 하던 F-14 두 대에 대해 리비아 공군의 수호이 전폭기 2대가 미사일을 발사하자 F-14는 이를 회피하고 각각 1발로 수호이 두 대를 격추시킨 것이다. 이 뉴스가 전해지자 술집에선 환호성이 터지는 등 미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미국인들은 베트남에서의 실패를 씻어내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이 사건을 참조해서 만든 영화가 <Top Gun>(1986년)이다.
F-14는 1991년 걸프 전쟁, 1990년대 말 유고 공습에 참가했고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도 참가했다. F-14는 2008년에 퇴역하고 F/A-18 호넷에 바톤을 넘겨주었다. F-14는 기체가 커서 연료를 많이 먹고 가변익 항공기라서 정비가 복잡한 것이 단점이지만 아직도 F-14를 최고의 전투기로 생각하는 조종사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은 이란이 친서방국가일 때 이란에 F-14를 판매해서 적성 국가인 이란은 아직도 F-14를 운용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이란이 이라크와 전쟁을 할 때 이란의 F-14는 이라크 공군의 미라지와 미그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지상전에서 이라크에 밀린 이란이 F-14 덕분에 제공권만은 장악했던 것이다.
F-111이 실전에 참가한 가장 유명한 경우는 리비아 공습이다. 1986년 4월 5일, 서베르린의 나이트클럽에서 폭탄이 터져서 미군 장병 등 3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한 사건의 배후가 리비아임이 밝혀지자 레이건 대통령은 리비아에 대한 보복 공격을 지시했다. 4월 14일 영국 기지에서 발진한 F-111 24대와 EF-111 5대가 중간 급유를 받아가면서 리비아의 전쟁지휘소와 공군 기지 등을 전격적으로 공습해서 파괴했다. 당시 가다피와 그 가족은 황급하게 피해서 목숨을 건졌다. 이 작전에서 F-111 1대가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다피는 1988년 12월 팬암 103편을 영국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시켜서 270명을 사망케 했다. 가다피는 2011년 11월 리비아 내란 중 도피하다가 소재를 파악한 나토군 공습으로 도망 중 사망했다.
미 공군은 F-111의 가변익 기술을 응용한 신형 폭격기 B-1 랜서를 개발해서 1986년에 실전 배치했다. 닉슨/포드 행정부 시절에 개발을 추진하다가 카터 대통령이 개발을 중단시켰는데, 레이건 대통령이 부활시켜서 100여대가 생산됐고 현재 40여대가 운영되고 있다. B-1은 우리나라 상공을 이따금 다녀가는데 우리 언론은 B-1을 ‘죽음의 백조’라고 지칭한다. B-1 랜서의 모습은 F-111을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사진 1, 2) F-111은 1991년 걸프 전쟁 때 F-15, F-16 전폭기를 선도해서 폭격 작전을 수행했다. 폭탄 적재량이 많은 F-111은 이라크 탱크와 장갑차를 초토화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사진 3) F-111은 1990년대 말에 퇴역했다. “항공 전력(air power)은 그 나라의 국력이다.”
사진 (1) F-111 (2) B-1 랜서 (3) 1991년 걸프 전쟁 중 고속으로 저공 침투하는 F-111과 전자정보기 EF-111 (4) 1991년 걸프 전쟁 중 F-14 톰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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