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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솔한 개헌 논의
작성일 : 2023-01-14 19:06조회 : 610
경솔한 개헌 논의
어울리지 않게 개헌을 입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어 웃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이 당 대표를 할 때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자격시험을 보았다고 해서 웃었는데, 개헌을 떠드는 사람들 상대로 헌법 시험을 보든지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헌을 이야기해도 이야기 할 시점과 상황이 있는 데 자다가 일어나서 봉창 뜯는 식으로 개헌을 이야기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금년 안에 개헌을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정국이 개헌을 논의할 상황으로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대 국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개헌안’ 촌극(寸劇)이 있었다. 2018년 2월 청와대가 뜬금없이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개헌안 초안을 만들더니 그것을 국무회의에 회부해서 가결시킨 후 개헌안으로 발의했다. 그러자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문 대통령은 아랍 에머레이트 출장 중에 전자 결재를 했다.
개헌안의 내용은 대통령을 4년 중임제로 하고 국민발안제와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모양인데, 나는 물론 꼴 같지 않아서 국회로 회부된 그 개헌안을 읽어 보지도 않았다. 헌법 개정을 위해선 국회 재적 2/3 가결이 필요하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개헌을 그렇게 가볍게 제멋대로 생각하는 경우는 보다보다 그 때 처음 보았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이 이것을 추진했고 성공회대학 정해구 교수가 자문위원장을 했고, 이를 열심히 설명한 대변인이 지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김의겸이다.
그렇게 제멋대로 개헌안을 만들어서 국회에 던져 놓으면 국회가 동의할 것으로 알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도무지 무슨 의도로 그런 황당한 일을 벌였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제128조)고 규정해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할 수 있게 돼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 현행 헌법 조항은 1972년 유신 헌법 때 들어간 것으로 5공 헌법에 그대로 유지가 되어 오다가 1987년 개헌 때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오늘날의 헌법 규정이 되었다. 1987년 개헌 작업을 할 때 그렇게 두어도 대통령이 국회의 뜻과 관계없이 개헌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아서 그대로 두었는데, 그것은 사실 잘못으로 삭제해야 했었다. 왜냐하면 개헌은 국민의 1차적 대의기관인 국회가 주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헌 헌법 이래 5.16 후 제정된 제3공화국까지 개헌안 발의는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또는 국회의원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찬성”으로 하게 돼 있었는데, 선거권자 50만 명 발의는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유신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시켰는데, 그 일환으로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안 제출권을 부여했다.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유신 잔재(殘滓) 조항에 근거해서 국회가 읽어 보지도 않고 내다 버릴 개헌안을 만들어서 ‘국민을 위한 개헌안’이라고 내세웠던 것이다.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이런 이상한(insane) 멘털리티가 결국 정권의 몰락을 가져와서 오늘날 윤석열 시대를 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로,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개헌(헌법 수정 : Constitutional Amendment)을 위해선 상하 양원이 개헌안을 각각 2/3로 가결하고 50개 주(州)의 3/4의 인준(ratification)을 받아야 한다. 주지사는 주 의회 상하원의 동의를 거쳐서 인준서를 기탁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개헌에 관해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대통령이 개헌의 뜻이 있다면 여당 의원들을 통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법률안 제출권도 갖고 있지 않다.)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도 필요한 만큼의 주(州)의 인준을 얻지 못해 폐기된 경우가 바로 남녀동권 헌법수정안(The Equal Right Amendment : ERA)이다. 주가 헌법 수정을 주도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3/4 이상의 주(州)가 헌법회의 소집을 요구해서 헌법 수정을 하는 방안도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돼 버렸다.
- 사진 : 문재인 개헌안에 반대하는 당시 야당 자유한국장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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