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당대회 논란

작성일 : 2023-01-20 21:15조회 : 585

전당대회 논란

우리나라 정치 과정 중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것이 당 대표 선거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여당 대표는 총리이고 야당 대표는 새도우 내각의 총리이다. 야당 대표는 선거에서 실패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임 대표의 후임을 선출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야당 대표는 의미가 있지만 여당은 대통령이 실질적인 리더라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

미국은 중앙당 자체가 없고 당 대표도 없다. 대신에 전국위원회(Natinal Committee)가 있고 전국위 의장이 이를 이끈다. 전국위는 평소에 조직을 유지하고 기부금을 모으고 홍보와 교육을 관장한다. 여당의 전국위 의장은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지명한다. 다양한 사람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국위 의장을 지냈는데, 제일 유명한 경우는 닉슨 대통령에 의해 1973년 초에 공화당 전국위 의장이 된 조지 H. W. 부시다.

1972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재선에 성공한 닉슨은 개각을 단행했다. 당시 공화당 전국위 의장은 밥 돌 상원의원이었는데, 사무실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닉슨은 공화당에는 풀 타임 전국위 의장이 필요하다고 보아서 유엔 주재 대사이던 부시에게 맡으라고 했다. 부시는 탐탁치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부시는 아버지(프레스콧 부시)가 상원의원을 지낸 전통적 공화당 집안 출신일뿐더러 무엇보다 닉슨의 말을 잘 들을 사람이었다. 닉슨은 자기의 서재 사무실이 있는 대통령실 빌딩(Executive Building) 같은 층에 전국위 의장실을 만들어서 사용하도록 했다. 전국위 의장으로서 부시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화당의 조직을 강화하고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워터게이트 때문에 부시의 그런 노력은 벽에 부딪쳤으나 전국위 의장으로서 경험은 나중에 부시가 대통령에 도전할 때 큰 도움이 됐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지 당권은 대통령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대체로 본다면 지금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이 전당대회를 할 때면 그런 논리가 진보 매체를 중심으로 번져나갔다. 반대로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할 때 보수 매체는 대체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10년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예상을 뒤엎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고 5월 15일에 전당대회를 열어서 대표에는 황우여 의원, 최고위원에는 이혜훈, 유기준, 정우택, 심재철을 선출했다. 황우여 대표 체제는 경선을 주관했고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황우여 대표는 있는지 없는지 하는 식이어서 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원래 여당 대표는 그러는 게 맞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선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의원이 격돌해서 김무성 의원이 대표가 되고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의원이 최고위원이 됐다. 최고위도 삐걱 거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엇박자를 내더니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그리고 나서 이정현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이정현 대표 체제는 누가 보아도 취약했고, 새누리당은 무너져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과정을 가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지금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이를 둘러싼 비판과 비아냥은 국민의힘을 좋아하지 않는 계층에서 더욱 심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무지 여당 대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시끄럽나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 대해 쓴 소리를 해서 정권의 성공을 돕는다는 말은 웃기는 이야기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의 책임이다. 내가 보기에 여당 대표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나 만들지 않으면 성공이다.

여당 대표를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이 맡는다면 의미가 있겠으나 언제부터인지 당권과 대권은 분리돼야 한다는 이론이 성행해서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당권과 대권의 분리라는 말도 사실 웃기는 이야기이다. 대선에 패배하면 당권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야당이 되고 심하면 검찰을 들락날락할 텐데 당권 분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근본부터 생각하자면, 내가 이미 몇 차례 강조했듯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없애고 정당 정치는 원내에서 주도하고 중앙당은 대폭 축소해서 미국의 전국위원회처럼 당을 홍보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정도의 일이나 하면 된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이끄는 거대한 중앙당은 공화당과 민정당에서 비롯된 권위주의 구태정치의 잔재(殘滓)일 뿐이다. 단돈 만원만 내면 당원이 되어 한 표를 행사하는 식으로 저질적 조직선거가 판을 치고 선거 비용도 만만치 않은 당 대표 선거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사진 : 2012년 5월 15일 새누리당 전당대회. 나는 그날이 새누리당 비대위원 마지막 날로 대의원으로서 두 표를 행사했다. 그때는 대의원 투표에 가중치가 있어서 대의원 투표가 중요했다. 지금 여당으로선 올드 스타일로 조용하고 축제 분위기에서 치러진 마지막 전당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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