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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작성일 : 2023-01-26 14:19조회 : 552

테헤란로

교수 시절에 학회나 회의 등으로 서울을 찾은 미국 교수나 변호사를 만나곤 했다. 이들과 강남에서 만나는 경우에 흔히 이런 질문을 당했다. 도대체 한국이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서울 강남을 가로 지르는 대로가 테헤란로이냐고 말이다. 나는 이란이 친(親)서방 국가일 시절에 우리가 이란과 경제 교류가 많아서 친선 차원에서 도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알려 주었다. 1977년 서울시와 테헤란시가 서로 거리 이름을 짓기로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강남이 발전함에 따라 테헤란로는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화려한 대로(大路)이면서 어울리지 않는 도로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사실 한 해만 늦었더라도 ‘테헤란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1977년만 해도 카터 대통령 초청으로 이란의 팔레비 국왕(샤)(Mohammad Reza Pahlavi ‘Shah’ 1919~1980. 7. 27)이 11월에 백악관을 방문했고, 그해 연말 유럽과 중동 순방 중이던 카터는 테헤란을 방문해서 이란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샤 국왕의 오랜 집권으로 이란에선 반정부 시위가 거세어지고 있었고, 샤는 암에 걸려 있었다.

미국이 더 이상 자기를 지지하지 않음을 알게 된 샤 국왕은 1979년 1월 가족과 측근을 대동하고 테헤란 공항을 떠났다. 2월에는 파리에 머물던 호메이니가 귀국해서 이란은 반(反)서방 이슬람 국가가 됐다. 그해 10월, 카터가 암 치료를 위해 샤에게 미국 방문을 허용하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 후 미국은 이란과 외교관계가 끊어지고 적대적 관계가 된다.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프랑스 대혁명 직후를 연상케 하는 숙청이 있었다.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온건 실용파마저 줄줄이 처형당했다. 샤 정권에 반대했던 야당 지도자로 샤가 이란을 떠난 후 잠시 임시 정부를 맡았던 샤푸르 박티아르(Shapour Bakhtiar 1914~1991)는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그는 10년이나 지난 1991년 8월 파리 근교 자택에서 살해됐다. 인권 외교를 들먹이면서 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카터 외교의 초라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1980년대 후에도 이란과 교역을 계속했지만 이란이 테러 국가로 지정되는 등 서방의 제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후였더라면 우리도 강남의 큰 거리를 ‘테헤란로’라고 명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 배경을 모르는 외국인이 테헤란로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9.11 테러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 Axis of Evil 으로 지칭한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런 후 강남구 의회에서 테헤란로 명칭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서울 주재 이란 대사관이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테헤란로 명칭을 바꾸려면 이란과 단교를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1) 테헤란 공항을 떠나는 샤 국왕 부부. 1979년 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 윌리엄 설리번으로부터 이란을 뜨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샤는 출국을 결심했다. 당시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과 설리번 대사는 호메이니 정권과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은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샤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인권 외교에 집착한 카터는 밴스 장관 편을 들었다.
사진 (2) 백악관을 방문한 샤 국왕 부부. 1977년 11월. 샤는 1년 후에 자기가 카터 정부에게 버림 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진 (3) 테헤란의 영어 표기는 ‘Tehran’이다. 이란 현지 표기는 <تهران Tehrân>이라고 한다. Teheran-ro 는 독특한 표기라고 할까... 여하튼 어울리지 않는 거리 이름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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