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칠레 산티아고 9-11 대로

작성일 : 2023-01-28 19:12조회 : 530

칠레 산티아고 9-11 대로

2000년대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방문한 사람은 대통령궁이 있는 시내 중심가 앞을 지나는 큰 길이 ‘9-11 대로(大路)“(Avenida 11 de Septiembre)인 것을 보고 ”칠레 사람들이 9.11 테러로 죽은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하는구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칠레 사람들이 9.11 테러를 그렇게 애도하다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칠레의 9.11은 1973년 9월 11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9.11 대로’는 1973년 9월 11일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날 역사적인 쿠데타가 일어났음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1973년 9월 11일, 아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Ramón Pinochet 1915~2006)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 군이 산티아고 시내의 대통령궁(宮)을 폭격하고 포위한 후에 살바도르 아엔데(Salvador Guillermo Allende 1908~1973. 9. 11) 대통령에게 투항을 요구했다. 아엔데는 항복을 거부하고 경호원들과 함께 총을 들고 싸우다가 마지막에 총으로 자신을 쏴서 사망했다. 그의 경호원들은 쿠데타 군에 의해 사살됐다. 쿠데타 군이라고 하지만 칠레의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한 군부 전체의 거사(擧事)였다.

이렇게 해서 공산주의자로서 1970년 대선으로 대통령이 된 아엔데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아엔데는 미국계 구리회사(Kennecott Copper)와 통신회사(ITT)를 국유화하는 등 미국과 마찰을 빚어서 그 쿠데타의 배후에 미국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실제로 1975년 상원 조사위원회 청문에 증인으로 나온 윌리엄 콜비 CIA 국장은 CIA가 칠레 쿠데타를 조종했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CIA는 쿠데타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 후 비밀에서 해제된 CIA 문서는 CIA 칠레 지부가 쿠데타를 인지하는 수준 보다 더욱 깊숙이 개입했으며 당시 국무장관이며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간여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피노체트 장군은 군사평의회를 구성해서 정부를 운영했고 1980년 개헌으로 8년 임기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88년 대선에 단독후보로 찬반투표 선거에 나섰으나 과반수를 얻지 못해 재선에 실패하고 1990년 3월에 퇴임했다. 하지만 그는 육군 사령관과 종신 상원의원으로 있다가 2002년에 드디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피노체트는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을 등용해서 다른 남미 국가와는 달리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개혁을 하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군을 도와서 영국과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 밀튼 프리드먼 등 시카고 학파는 피노체트 시절 칠레의 경제 성적표를 들어서 그들의 학설이 옳았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피노체트는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 궁 앞을 지나는 대로를 ‘9월 11일 대로(大路)’로 개명했다. 피노체트가 물러난 후에도 그대로 ‘9-11 대로’로 남아 있자 시민들은 원래 명칭인 ‘Avenida Nueva Providencia’ 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리의 표지판에 원래 명칭으로 덮어 씌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73년 쿠데타 40년이 되는 2013년 9월, 칠레 정부는 이 도로를 ‘Avenida Providencia’로 개명했다. 개명은 물론 피노체트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완전히 씻어 냈음을 확인하는 의미였다.

사진 (1) 한 시민이 ‘9-11 대로’ 표지판 위에 원래 명칭을 붙이고 있다.
사진 (2) Avenida Providencia 모습.
사진 (3)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 정문 앞에 선 아엔데와 그의 경호원들.
사진 (4) 대통령궁 오늘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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