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책임한 선거제도 논의

작성일 : 2023-01-31 21:24조회 : 510

무책임한 선거제도 논의

나는 지난 1월 9일자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서 중대선거구제가 오히려 단점이 많고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할당하자는 이른바 비례민주주의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어차피 의사 결정은 다수결에 의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비례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정당 정치가 어떠한지, 그리고 나치가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례대표제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인구도 우리나라의 10% 밖에 안 되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분열이 적은 북유럽 나라에서 운영하는 정치제도를 모범으로 삼자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중대선거구에 대해서 정치학 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부작용이 더 많다고 국회 회의에서 말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먼저 우리 헌법 조항을 들여다보자. 현행 헌법 제41조는 “②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③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5공화국 헌법 제77조를 그대로 둔 것이다. 유신헌법에선 국회의원 숫자는 법률이 정한다고만 규정했었다. 3공화국 헌법은 국회의원 숫자는 150인 이상 200인 이하로 한다고 규정했었다.

헌법이 국회의원 숫자를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했으니까 400명으로 해도 되고 500명으로 해도 된다고 임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87년 개헌 때에 이 조항을 그대로 둔 것은 국회의원 숫자는 법률로 정하되 200명대로 한다는 일종의 합의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국회의원 숫자를 300명 이상으로 하는 데는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지금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좌석은 300명 의원으로 거의 만석이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와 경제력은 정점(頂点)에 달해서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유럽의 의원내각제 국가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숫자는 인구 대비로 볼 때 적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라서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하지 그가 속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지는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국회의원 숫자가 증가한다고 좋은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난다고 볼 수도 없다.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뇌수술이나 심장수술을 하는 의사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몇몇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 숫자가 적어서 자기들이 그 모양 그 꼴이 됐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다. 자기들의 자질에 대한 반성은 없이 소선구제 때문에, 그리고 의원 숫자가 적어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고 있으니 우습지 않는가? 300명을 상한선으로 두고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주장도 신문 칼럼에 나오곤 하는데, 지역구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서 지역구 의원을 200명으로 하고 비례대표 의원을 100명으로 하면 인구가 적은 지방은 7~8개, 심지어 9~10개 시·군이 지역구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게 된다. 지금 같은 지역구 의원 숫자를 유지해도 지방소멸 현상이 가속화해서 6~7개 시·군이 한 개 지역구가 될 판국인데 지역구 의원을 어떻게 더 줄일 수 있겠는가 ?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듣기는 그럴싸해도 시행하기도 어렵고 비례대표제 본질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제3당과 제4당은 이들이 얻는 정당투표를 전국적으로 합산해야 유리하다. 권역별 비례로 하게 되면 각 권역에선 제1당과 제2당이 유리하고 3당과 4당이 얻은 득표는 사표(死票)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당투표로 비례대표 의원을 배정하도록 한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위반된다.

비례대표 의원을 늘여야 한다고 하는데, 비례대표 의원이 의정활동을 더 잘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비례대표 선정 과정은 여전히 정답이 없는 상태다. 근래에 자질론이 불거진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잘 보여서 지역구를 배정받기 위해 장외투쟁이나 몸싸움도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선거를 통해서 국회에 진입하기 어려운 직역(職域)을 대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직역을 대표하는 비례의원은 국회의원 보다는 로비스트 같은 모습을 보인다. 과학자 출신 비례의원이 교수와 연구원에 대한 연구비를 늘리려고 맹활약 하는 식이다.

나는 개헌을 해서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현행 선거제도(패스트트랙으로 제멋대로 바꾸기 전의 원래 제도) 보다 나은 것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국회가 아니라 정당이라고 본다. 정당에 평소에도 국민세금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선거를 하고 나면 선거하느냐고 수고했다고 또 국민세금으로 보조금을 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에 대한 보조금이야말로 기존 1당과 2당이 이 모양 이 꼴을 해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정당 개혁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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