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의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

작성일 : 2023-02-08 21:23조회 : 716

미국의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만든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20대는 2003년에 퇴역해서 이제는 항공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은 이런 여객기 구상이 아예 없었는가? 아니다. 미국은 케네디 행정부부터 연방 자금을 투입해서 초음속 여객기(SST : Supersonic Transport)를 개발해 왔는데, 1971년에 환경 문제를 들어서 의회가 자금을 차단해 버려서 사업이 죽어 버렸다. 미국의 SST는 환경 문제를 이유로 의회가 프로젝트를 도중에 중단시킨(kill) 최초 사례라고 할 만하다.

영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는 1962년에 초음속 여객기를 같이 개발하기로 협정을 맺었으며 1969년에 콩코드 시제품이 나왔다. 주요 항공사들로부터 사전 주문이 100여 대가 들어오는 등 사업 전망도 괜찮았다. 콩코드는 1976년부터 영국항공과 에어프랑스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콩코드를 보는 미국 여론은 싸늘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미국은 1950년대부터 군사 목적으로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해 왔고 항공사들은 1970년대에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할 가능성을 기대했다. ‘뉴 프런티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1963년 6월 5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초음속 여객기(SST)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케네디는 그 해 11월 암살됐지만 SST를 추진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는 활동을 이어갔고 보잉과 록히드가 동체를, GE와 PW가 엔진 개발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 여러 사람들은 SST의 기술성과 경제성에 회의감을 피력했다. 여하튼 1966년 12월, 보잉이 주사업자로 선정됐고 의회는 개발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보잉은 SST를 240인승으로 추진했으며, 항공사들로부터 120대를 사전에 주문받았다.

1969년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공화당 정부는 SST 재검토 위원회를 구성해서 그간의 사업을 심사했다. 이 위원회를 이끈 사람은 저명한 환경보전론자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내무차관으로 발탁된 러셀 트레인(Russell Train 1920~2012)이었다. 러셀 트레인이 이끈 위원회는 환경 패널의 의견에 입각해서 SST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환경 패널은 SST가 소닉 붐(sonic boom) 등 소음이 심하고 상부 대기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사업을 계속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닉슨은 SST가 미국 내륙 상공에서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1970년 봄 미국에선 ‘지구의 날’(Earth Day)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리는 등 환경 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했다. 1969년 의회는 환경정책법(NEPA)을 통과시켰고 닉슨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NEPA는 환경영향평가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속으로 환경위원회(CEQ : Council on Environmental Quality)를 두도록 했다. 닉슨 대통령은 초대 CEQ 위원장으로 러셀 트레인을 임명했다. 러셀 트레인은 공화당원으로 월가(街)와 교류가 있으면서도 자연운동단체인 WWF-US와 환경정책 연구기관인 컨저베이션 재단을 설립한 환경론자였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SST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늘어났다. 1969년 하원은 SST 사업 지속 여부에 관한 안건을 176 대 172로 간신히 통과시켰다. 1970년 들어서 상원이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상원에서는 ‘지구의 날’ 행사를 주도한 게일로드 넬슨(Gaylord Nelson 1916~2005) 의원, 예산 낭비를 질타해서 유명해 진 윌리엄 프록스마이어(William Proxmire 1915~2005) 의원 등이 앞장서서 SST에 반대했다. 보잉의 본사와 공장이 위치한 워싱턴 주 출신인 워렌 매그누순( Warren Magnuson 1905~1989) 의원과 헨리 잭슨(Henry M. Jackson 1912~1983) 의원이 찬성을 이끌었다. 1970년 상원은 52 대 41로 SST를 중단시키기로 의결했다.

상원에서 SST 중단 쪽으로 힘이 쏠리게 된 계기는 청문회였다. 상원 청문회에서 SST를 중단해야 한다고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사람은 CEQ 위원장인 러셀 트레인이었다. 러셀 트레인은 SST 500대가 하늘을 누비고 다니면 소음 문제 뿐 아니라 대기 성층권에 수증기가 50~100% 증가하며 이로 인해 성층권의 오존층이 엷어진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오존층 파괴’라는 새로운 환경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상원이 이렇게 결정하자 SST 문제는 상·하원 합동회의에 회부됐고 최종적으로 부결됐다. 미국 의회는 그 때까지 들어간 10억 달러 개발비를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고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환경론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환호했고, 보잉과 보잉 공장이 있는 시애틀-타코마 지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문제는 상업적 운항을 시작한 영불 합작 콩코드기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미국 항공국(FAA)은 미국 내륙 상공에서 민간항공기의 초음속 비행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콩코드는 뉴욕 같은 동부 해안 도시 외에는 운항을 하기가 곤란해졌다. 콩코드는 런던-뉴욕, 파리-뉴욕을 운항해야 하는데, 뉴욕에서는 콩코드 착륙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그래서 워싱턴 근교에 있는, 당시에는 한산했던 덜레스 공항에 간신히 착륙할 수 있었으나 콩코드를 타고 워싱턴을 가려는 승객이 적어서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뉴욕의 JFK 공항은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서 콩코드의 착륙을 허용했다. 콩코드는 따가운 미국 여론 때문에 미국에의 운항도 변변하게 못하고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소련은 콩코드를 적당히 베껴서 Tu-144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했으나, 1973년 파리 에어쇼에서 관람객들이 보는 가운데 추락해 버렸다. 적자에 시달리던 콩코드는 2000년 7월 파리 공항 사고 후 3년 만에 퇴역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 (1) 1971년 12월 14일 프랑스 대통령 조르쥬 뽕피두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포르투갈 영토인 대서양 아조레스 군도에 도착한 닉슨 대통령이 퐁삐두가 타고 온 콩코드를 둘러보고 나오는 장면이다. 옆은 포르투갈 총리 마르셀로 기타나. 닉슨은 “나는 우리도 저것을 만들기를 원했어”("I wish we had built it.")라고 말했다. 닉슨이 타고 간 Air Force One은 Boeing-707이라서 퐁삐두가 타고 온 콩코드에 비하면 초라해 보였다.
-사진 (2) The Clean Air Act에 서명하는 닉슨. (1971년 12월 31일). 왼쪽은 초대 환경보호처장 윌리엄 러클샤우스, 오른쪽은 러셀 트레인 CEQ 위원장. 러셀 트레인은 1973년에 2대 환경보호처장이 되어 카터 행정부가 들어선 1977년 1월까지 재임하면서 미국 환경정책의 토대를 세웠다. 환경 문제를 이유로 SST를 좌절시킨 장본인이지만 닉슨은 그를 환경보호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온 법률가였다.

이전글팬암 759편과 델타 191편

다음글Delta L-1011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