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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팬암 759편과 델타 191편
작성일 : 2023-02-10 09:06조회 : 603
팬암 759편과 델타 191편
뉴올리언스에서 공부하고 있을 적인 1982년 7월, 그곳 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추락하는 큰 사건이 있었다. 7월 9일 오후 4시경 뉴올리언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던 팬앰 759편이 이륙 직후 공항 너머 주택가에 추락해서 탑승자 145명 전원이 사망하고 지상 주택에서 8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그날 뉴올리언스는 발칵 뒤집혔다. 우리로 치자면 김포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목동 주택가에 추락한 격이었다.
사고 비행기는 Boeing-727로, 보잉사가 707에 이어 내어 놓은 내로우 바디로 꼬리에 작은 엔진이 3개가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해당 항공기는 14년이 됐으나 기장과 부기장은 Boeing-727 기종만 오랫동안 운항한 베테란들이었다. 사고 이유는 윈드시어일 것이라는 보도가 금방 나왔다. 나는 그 때 ‘윈드시어’(wind shear)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하늘에서 별안간 돌풍이 내리 불어서 비행기를 아래로 밀어내리는 현상이었다. 이듬해 교통안전국(NTBS) 공식 보고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는 공항의 기상관측 장비로 그런 현상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팬앰 759편의 악몽이 사라지기도 전인 1985년 8월 2일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에서 출발한 델타 191편 록히드 L-1011이 오후 5시 경 텍사스 댈러스 공항에 착륙 중 활주로까지 가지 못하고 추락했다. 조종사 등 탑승자 128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당하고 간신히 살아났다. (비행기가 만석이었으면 더 많이 죽었을 것이다.) 사고를 조사한 NTBS는 뇌우가 시작됐는데도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와 착륙을 지시한 관제소에 잘못이 있다고 하면서도 당시 별안간 밀어 닥친 윈드시어가 직접적인 추락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록히드의 L-1011을 가장 많이 운항하는 델타 항공에서 사고가 나서 미국 언론이 크게 다루었다.
팬암 759편과 델타 191편의 추락은 미국 공항과 항공기가 윈드시어에 취약함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델타 191편 사고 후 항공국(FAA)는 여객기가 취항하는 공항은 윈드시어를 감지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항공기 자체도 윈드시어 감지 레이더를 10년 내에 장착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웬만한 공항은 TDWR이라고 부르는 라이더(Lidar) 장비를 설치했고, 큰 공항은 여러 개를 설치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나온 새 여객기는 자체적으로 라이다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미국 서유럽 일본 홍콩 도쿄 싱가포르 등 주요 공항에선 팬앰 759편이나 델타 191편 같은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팬앰 759편 사고는 뉴올리언스에서 보았고, 델타 191편 사고는 뉴스를 통해서 보았으나 그 후에 윈드시어 문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20대 국회 환노위에서 중요 현안을 살펴보니까 기상청 업무 중에 라이다 도입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천 공항은 개항 할 때부터 미쓰비시의 TDWR을 도입해서 기상청이 운영해 오고 있는데, 이명박 정권 시절에 김포 부산 제주 공항에 라이다 장비를 들여온다면서 장난감 같은 프랑스제 물건을 들여오도록 계약을 한 사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이 취소되고 업자와 기상청 간에 소송이 벌어져서 2017년까지 이 문제가 끌어왔다.
내가 보기엔 도입 계약은 물론이고 사후 은폐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였다. 실제로 경찰청 수사본부는 책임자들에 대해 기소 의견을 세 번이나 냈는데, 검찰이 그 때마다 불기소 처분을 했다. 2018년 국감 때 내가 이 문제를 따져서 기상청장이 “할 말이 없습니다”고 자백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정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루어야 한다고 인터뷰도 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이제 공소시효는 지나버렸다. 이런 비리 때문에 김포 부산 제주 공항에는 아직도 TDWR이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이런 전문 분야에 너무 무력하다. 그런 전문 분야에 관한 영어 문헌을 읽을 수 있는 의원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속으로 국회의원을 우습게 보는데, 사실 우습게 볼 만도 하다. 고위 공무원들은 공부 잘해서 공무원이 됐고 외국 대학에서 공부한 전문가도 많다. 반면에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의 학력과 경력은 상대적으로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20대 국회 4년 동안 기상청 공무원들이 나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했는데, 21대 국회에선 너무나 편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고학력화하고 있지만 거꾸로 가는 곳이 국회와 정당이다.
참혹한 항공 사고 현장을 수습한 사람들은 "지옥(hell)이 열린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1979년 5월 시카고 공항에서 이륙하던 중 엔진이 떨어져 나가서 추락한 아메리칸 항공은 191편이었다. 1985년 8월 댈러스 공항에 추락한 델타 항공도 191편이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지만, 여하튼 191편 두 대의 희생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구조 문제가 있었던 DC-10이 퇴역하고, 공항과 항공기에 라이다를 설치하는 계기가 됐으니까 말이다. 항공 안전의 역사는 사고와 이에 대한 대응의 연속이다. 항공기 사고로 생을 일찍 마감한 사람들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전보다 안전하게 항공 여행을 하는 것이다.
사진 (1) 1982년 7월 뉴올리언스 팬앰 759편 사고 현장.
사진 (2) 1985년 8월 댈러스 델타 191편 사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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