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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밀라이 사건과 지미 카터
작성일 : 2023-02-11 14:50조회 : 581
밀라이 사건과 지미 카터
나중에 뉴욕타임스 기자가 되는 시무어 허시(Seymour Hersh 1937~)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중 베트남에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베트남을 찾았다. 그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확보해서 기사를 작성했고, 그 해 11월 12일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됐다. 이것이 밀라이 학살 사건이다. (베트남에선 ‘송미 마을’로 부른다.)
밀라이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1968년 초 북베트남군의 구정 대공세로 북부의 꽝뜨리와 후에가 함락되자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 7함대 전함은 해안가의 북베트남 점령지를 대대적으로 포격했다. 3월 들어 미 해병대와 남베트남군은 큰 희생을 치르고 후에를 탈환했다. 같은 시기에 중서부 케산 고지에서는 미 해병대가 북베트남군에 포위돼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 즈음 미 육군 27사단 소속 중대병력은 후에 남쪽의 밀라이 마을이 ‘핑크 타운’, 즉 북베트남에 우호적인 마을이라면서 이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메디나 대위가 이끄는 중대는 베트남에 온 후 병력의 1/4을 지뢰와 부비트랩 등에 상실하는 큰 피해를 입어서 복수심에 불타있었다. 3월 16일, 윌리엄 켈리(William Calley 1943~) 중위가 이끄는 소대는 적성(敵性)으로 분류된 밀라이 마을에 도착했다. 상부에서는 모두 없애라고 했으나 부녀자와 아이들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켈리 중위가 모두 없애라고 지시하자 소대원들은 마을 사람들을 사살했다. 정찰 헬기를 타고 하늘에 이 장면을 지켜 본 조종사 톰슨 준위가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켈리 소대원들을 격리시켜서 그나마 살상을 줄였다. 약 3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됐다. 톰슨 준위는 자신이 목격한 바를 상부에 보고했으나 미군 사령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소문이 있었음에도 사이공에 있는 미국 기자들은 취재를 하지 않았다. 당시는 사이공이 함락될 위기를 넘기고 미군이 힘들게 후에를 탈환하기 위해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전투를 하고 있었다. 미군의 함포 사격으로 인한 해안 지역의 피해도 컸기 때문에 기자들은 민간인 피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언론에 의해 사건이 폭로되자 미 국방부는 조사에 들어갔다. 1970년 11월 사단장에서 소대장인 켈리 중위에 이르는 장교 14명을 기소키로 했으나 나중에는 메디나 대위와 켈리 중위만 기소했다. 조지아 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켈리는 메디나 대위의 지시를 따랐다고 진술했다. 1971년 3월, 군사법원은 켈리 중위에 대해서만 22명에 대한 살인죄로 유죄를 인정하고 종신 징역을 선고했다.
이 재판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포트 베닝 앞에서는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집회가 크게 열렸다. 24시간 안에 백악관에는 재판에 항의하는 전보가 50만 통이 들어왔고 항의전화가 30만 통이 걸려 와서 공보실이 마비돼 버렸다. 갤럽 여론조사는 미국민의 79%가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생각함을 보여 주었다. 닉슨 대통령은 켈리가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자택 연금으로 지내도록 조치했다. 여론은 닉슨의 이 조치를 지지했다. 켈리 중위를 지지하는 대중가요가 나와서 빌보드 차트의 상위를 차지했고, 켈리 중위를 석방하라는 슬로건이 미국 전역에서 나돌았다. 켈리는 항소심에서 징역 22년으로 감형됐고, 육군장관은 형기를 10년으로 감축했다. 켈리는 포트 베닝 근처 콜럼버스에 있는 집에서 3년 반 지내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켈리의 고향이며 군사재판이 열린 조지아 주의 정치인들은 ‘조지아의 아들’인 켈리 중위를 적극적으로 두둔했다. 조지아 출신 민주당 소속 허만 탈마지 상원의원과 벤 블랙번 하원의원은 켈리 중위가 속죄양(scapegoat)라고 주장했다. 조지아 부지사 레스터 매독스는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와 함께 포트 베닝 근처의 콜럼버스 시에서 열린 켈리 중위 지지 집회에 참가해서 연설을 했다. 조지아 주 징집위원회(draft board) 위원들은 켈리를 석방하지 않으면 징집 업무를 그만두고 사직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집단으로 사표를 내버렸다.
당시 조지아 주지사는 지미 카터였다. 카터는 한술 더 떴다. 카터는 기자 회견을 열고 켈리는 속죄양이며 켈리에 대한 유죄판결은 미군 사기에 일대 타격이라고 주장했다. 카터는 또한 켈리 중위를 지지하는 조지아 주민들의 단결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터는 유죄판결이 나온 다음 월요일을 ‘조지아의 미군들의 날’(‘American Fighting Men's Day in Georgia’)로 선포하고 켈리 중위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위해 조지아 주민들은 성조기를 달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키고 다닐 것을 촉구했다. 조지아 주민들은 한 주일 동안 대낮에도 헤드라이트를 키고 운전을 함으로써 켈리와 카터를 성원했다. (조지아 주의 가장 큰 신문인 The Atlanta Constitution에 나와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주지사로서 카터는 베트남 전쟁을 열렬히 지지했다. 켈리 중위에 대한 유죄판결에 대해 당시 인디애나 주지사는 반기(半旗)를 게양토록 했고, 아칸소 주 의회는 켈리에 대한 사면을 촉구하는 결의를 통과시키고 캔자스, 텍사스 등 몇몇 주 의회도 같은 취지의 결의를 통과시켰다. 주지사로서 카터는 어느 누구보다도 열렬히 켈리 중위를 지지하고 밀라이 학살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7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온 카터는 1971년에 주지사로서 한 이 같은 말에 대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1976년 대선에서 카터는 조지아 등 남부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으나 대통령이 된 후 남부를 버리고 동부 리버랄(Eastern Liberal)의 길을 가더니 1980년 대선에서 참패했다.
밀라이 학살 사건은 베트남 전쟁의 어두운 장(章)이었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 사건을 내세운다. 이 사건은 당시 북베트남군이 유서 깊은 고도(古都) 후에를 점령하자 미 해병대와 남베트남군이 치열한 시가전 끝에 후에를 탈환한 직 후에 발생했다. 후에를 탈환한 미군은 공산군이 신부와 수녀, 공무원은 물론이고 민간인들을 학살해서 암매장했음을 알게 됐다. 발굴된 시신만 2,880구에 달했고, 2,00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후에 대학살은 베트남 전쟁 중에 공산군이 저지른 가장 참혹한 민간인 대학살이었다. 만일에 미군이 후에를 탈환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넘어 갔을 끔찍한 학살이었다.
켈리 중위는 애당초 장교가 돼서는 안 되는, 장교가 될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밀라이 학살을 명령했음은 현장을 목격한 헬기 조종사에 의해서도 확인됐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 수천 명을 학살한 사건은 북베트남군 현장 지휘관이 저지른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하노이 정부의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 정책이었을 것이다. 사면으로 풀려난 켈리는 고향 조지아 콜럼버스에서 조용하게 살았다.
- 사진 (1) 군사법정에 출두하는 켈리 중위 (가운데)
- 사진 (2) 후에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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