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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안, 애담스, 그리고 후안

작성일 : 2023-02-12 19:29조회 : 519

로안, 애담스, 그리고 후안

1968년 1월 31일 구정(舊正)을 기해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에 총공세를 가했다. 북부의 고도(古都) 후에가 함락되는 등 상황은 심각했다. 사이공에 침투한 베트콩은 미 대사관에 침입했다가 미 해병대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베트콩들은 사이공 시내를 누비면서 학살을 자행하다가 정부군에게 쫓겨 슬럼지역으로 숨어 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 경찰국장인 응웬응옥 로안(Nguyễn Ngọc Loan 1930~1998) 장군은 사로잡힌 베이 롭으로 불리던 베트콩 장교 응구엔 반렘(Nguyễn Văn Lém)을 즉결 처형했다. 이 순간을 AP 통신의 에디 애덤스(Eddie Adams 1933~2004) 기자가 카메라에 담아서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됐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남베트남군 장교가 된 응웬응옥 로안은 프랑스 공군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1965년 쿠데타를 일으킨 응웬까오 끼(Nguyễn Cao Kỳ 1930~2011) 장군도 로안과 함께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공군 조종사로 명성을 떨친 로안은 친구인 끼 장군이 총리가 되자 보안사령관이 됐다. 정부에 불만을 가진 장군들을 진압해서 정권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그는 경찰국장이 돼서 수도 사이공의 치안을 책임졌다.

응웬응옥 로안에 의해 처형된 베트콩 장교 베이 롭은 암살조를 이끌고 있었다. 베트콩은 남베트남 정부 인사와 이들의 가족, 그리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인과 민간인 지도층을 마구 암살했다. 베트콩 암살조에 의해 1967년 한 해 동안에 남베트남 군경(軍警)과 공무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 3,706명이 암살됐고, 5,369명이 납치됐다.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자 응웬응옥 로안은 경찰병력을 이끌고 베트콩 본거지를 공격하던 중 정부군 장병이 체포해서 데리고 온 베이 롭을 보자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부하 장병이 머뭇거리자 로안은 권총을 꺼내서 베이 롭의 머리를 쏴 버렸다. 로안은 베이 롭이 남베트남 군경(軍警) 가족 수십 명을 직접 학살한 암살조장임을 알고 있었다.

응웬응옥 로안 장군은 구정 대공세의 막판에 작전을 지휘하던 중 중상을 입고 경찰국장을 그만두었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북베트남군에 함락되기 직전에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군 수송기편으로 탈출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정착해서 피자 가게를 열었지만 그의 신분이 드러나서 ‘처형자’라는 비난에 시달리자 문을 닫고 말았다. 그가 베트콩을 처형하는 장면을 찍은 애덤스 기자는 퓰리처상(償)을 받았지만 자신의 사진이 ‘잔학한 처형’으로 인식되는 데 깊은 부담을 느껴야만 했다.

1998년 초 애덤스는 응웬응옥 로안이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그를 찾았다. 애덤스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자신은 평생토록 그것을 잊으려고 괴로워했다”고 털어 놓았다. 병석(病席)의 로안은 “운명이다”고 답했다. 로안은 그해 7월 사망했다. 에디 애담스는 자신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준 그 사진은 로안과 그의 가족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자신의 인생도 영원토록 바꾸어 놓았다고 술회했다. 애담스는 그 사진이 나온 후 한시도 자신이 찍은 사진이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면서, 응웬응옥 로안은 “영웅, 정말 빌어먹을 영웅”(“hero, a goddamned hero")이라고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응웬응옥 로안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애담스는 장례식장에 꽃을 보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에디 애담스는 2004년에 사망했다.

응웬응옥 로안에 의해 처형된 베이 롭이 이끈 베트콩 암살조는 구정 대공세 첫날 남베트남군 응구엔 투안(Nguyen Tuan) 중령 일가를 살해했다. 응구엔 중령은 부인과 여섯 아이 그리고 팔순 노모와 살고 있었는데, 베트콩 암살단이 들이닥쳐 마구 총을 쏴서 모두 사망하고 당시 아홉 살이던 아들 응구엔 후안(Nguyen Huan)만 팔과 다리 등에 부상을 입고 간신히 살아났다. 후안은 피를 흘리면서 죽어 가는 어머니를 숨을 죽이고 보아야만 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안은 그 후 남베트남 공군 대령인 큰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공산군에 함락되자 후안은 큰 아버지 가족과 함께 미 해병대의 도움으로 사이공을 탈출할 수 있었다. 다른 많은 남베트남 탈출민들과 함께 후안과 그의 큰 아버지 가족은 미 해군 함정에 실려 괌 기지에 도착했다. 16살이던 후안은 자신들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미 해병대원과 해군 수병들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이 나중에 후안이 미 해군 장교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였다.

후안의 큰 아버지가 괌에 있다는 소식을 들고 베트남에서 같이 근무했던 미 공군 대령 에드 베일러바가 이민 보증을 해서 후안과 큰 아버지 일가는 미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공군기지 부근 작은 도시에 정착했다. 응구엔 후안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퍼듀 등 3개 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3개 받았다. 그는 해군 예비공학사관으로 1993년에 임관한 후 시스템 등 기술 분야에서 근무했다. 2019년 응구엔 후안은 해군 준장(Rear Admiral Jr.)으로 승진해서 베트남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해군 장성이 됐다. 그는 2022년에 전역했다. 베트콩 암살조의 총에 온 가족을 잃고 자신도 죽을 뻔 했던 아홉 살 소년의 위대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 사진 (1) 1968년 2월 1일, 구정 대공세 기간 중 베트콩 장교 베이 롭을 처형하는 응웬을옥 로안 경찰국장. AP의 사진 에디 애담스 기자가 찍어서 퓰리처상(償)을 탄 사진으로,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 운동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 사진 (2)는 베이 롭이 정부군에 의해 체포돼 끌려오는 모습. 남베트남 정부군 병사들이야말로 잊혀진 전사(forgotten warrier)들이다. 1975년에 사이공을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처형됐다.
- 사진 (3) 2019년 제독(Rear Admiral) 임명장을 받는 후안 응구엔 대령(왼쪽). 오른 쪽은 해군 시스템 사령부(Naval Sea Systems Command) 토머스 무어 제독(Vice Admiral).
- 사진 (4) 장성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응구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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