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릴리해머

작성일 : 2023-02-13 20:39조회 : 545

릴리해머

우리 주변에는 뜬금없이 북유럽 국가로부터 모든 것을 배워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유럽 국가의 복지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거나, 우리도 권역별 비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유럽 3개 국가 중 인구 천만이 넘는 나라는 스웨덴 뿐이고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인구는 각각 500만 명을 조금 넘는다. 이 나라들은 백인 국가, 특히 노르딕 백인 국가다.

나는 오래 전에 헬싱키를 가 보았고 국회에 있을 때 오슬로를 잠시 들렀던 적이 있다. 미국 도시 중에 헬싱키와 오슬로처럼 온통 백인인 도시로 내가 가 본 곳은 오대호에 면해 있는 미네소타 북부의 덜루스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덜루스에선 흑인을 보기가 어려웠다. 미네소타 자체가 전통적으로 ‘white state'이고, 덜루스는 오래 전에 그곳에 정착한 북유럽계 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다.

작년 연말에 우연히 넷플리스에서 <릴리해머>라는 시리즈를 보았는데, 오래 전에 나온 시리즈였다. 넷플릭스는 총질하는 폭력물이 태반이라 식상할 정도인데, 시트콤 코미디인 <릴리해머>를 보면서 많이 웃었다. 2012년 초에 시작한 <릴리해머>는 넷플릭스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첫 시리즈로, 원래는 작년 말에 스트림을 끝내려고 했다가 금년 상반기까지 연장키로 했다.

릴리해머(Lilyhammer :릴리함메르)는 1994년 동계 올림픽을 해서 알려진 곳으로 2022년 기준으로 인구는 28,000명이다. <릴리해머>는 뉴욕 마피아 언더보스인 프랭크 태글리아노가 FBI를 위해 법정에서 증언을 한 후 살해 위협에 시달리자 FBI가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주고 해외로 나가 살라고 해서 주인공(스티븐 밴 잔트)이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릴리해머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르웨이의 무료하고 추운 작은 마을에 맨해튼에서 한 자락했던 마피아 언더보스 출신이 쟈니 헨릭슨이라는 새 신분으로 도착했으니 흥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릴리해머>가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문화가 극명하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모든 것을 정부 기관이 친절하게, 정말 친절하게 보살펴 주는 나라다. 외국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담당 공무원이 치밀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돌보아 준다.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이 발생하면 공무원들을 찾아 다녀야 하니까 모든 것이 느리기만 하고 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뉴욕 마피아 언더보스였다. 마피아는 원래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한다. 어떤 일이 닥치면 자기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마피아다.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치면 상대방을 죽이는 등 스스로 대처하고, 갚아야 할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는 얼음판으로 끌고 가서 겨울 호수에 집어넣는 식이다.

릴리해머는 조용하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이곳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시끄러운 밴드의 음악에 맞추어 미친듯이 춤을 추는 클럽이다. 주인공은 릴리해머에 클럽을 열어서 장사를 잘 한다. 세계 어디서나 클럽에선 온갖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노르웨이 방식으로 공무원에 의존하면서 클럽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자기 스스로 힘으로, 즉 마피아 방식으로 클럽을 운영해서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북유럽의 관료적인 'Nanny State‘(‘보모 국가’, 즉 정부가 국민의 삶을 간섭하면서 보살펴 주는 나라를 의미한다.) 방식과,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을 보는 것 같은 주인공이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 대조를 이룬다. 나는 ‘Nanny State'를 비웃는 주인공의 코믹한 연기를 보면서 혼자 많이 웃었다.

<릴리해머> 시리즈를 노르웨이 사람들이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노르웨이 뿐 아니라 북유럽 3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북유럽 국가의 사회와 문화를 풍자한 측면이 많은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주인공의 마피아 방식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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