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루먼과 이스라엘

작성일 : 2023-02-28 23:32조회 : 704

트루먼과 이스라엘

20세기 들어 미국 유대인들은 선거 때마다 항상 민주당을 지지했다. 공화당은 동북부 자본가들이 이끌어가는 백인 개신교의 정당이었다.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계 등 가톨릭 신자, 그리고 유대인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들은 소수자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들어서 유대인 인구가 늘자 뉴욕 등에서 유대인 유권자가 변수로 등장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네번 대선에서 유대인 표의 80~90%를 획득했다. 치열했던 1948년 대선에서 해리 트루먼은 75%를 얻었다.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는 82%를, 1964년 대선에서 존슨은 90%를 획득해서 승리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유대인 표 중 기껏해야 15~20%를 얻는데 그쳤다. 지금까지 유대인 표를 가장 많이 얻은 공화당 후보는 로널드 레이건으로 두 차례 선거에서 35~40% 득표를 했다.

이스라엘의 초등학생에게 이스라엘을 가장 많이 도운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어 보면 해리 트루먼(1884~1972)이라고 답한다. 1948년 5월 14일 벤 구리언(David Ben-Gurion 1886~1973)이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자 불과 11분 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한다고 발표해서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당시 조지 마셜 국무장관 등 국무부 관료들은 팔레스타인을 유엔이 신탁통치를 하면서 종국적으로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하는 연방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국무부는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독립하면 전쟁이 발발할 것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이스라엘을 즉시 승인해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트루먼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팔레스타인이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나치가 저지른 수용소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트루먼은 영국 정부에 대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원하는 유럽의 유대인 10만 명을 받아드리도록 압력을 가해서 이들이 팔레스타인에 상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기를 그린 영화가 <Exodus>이다.) 이에 힘을 얻은 유대인 단체들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단독 건국을 도와달라고 여러 통로를 통해 호소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렇게 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면 트루먼은 왜 생각을 바꾸었나 ?

한적한 미주리 출신인 트루먼은 유대인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일반적 관념대로 유대인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부인 베스 여사는 유대인을 싫어해서 집에 유대인을 들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트루먼의 친구인 에디 제이콥슨(Eddie Jacobson 1891~1955)이 유대인이었다. 두 사람은 군대에 같이 입대해서 가까워졌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두 사람은 미주리 캔자스시티 시내에서 셔츠와 타이 등을 파는 상점을 열었다. 하지만 이 옷 가게는 실패해서 트루먼은 처갓집에 들어가 사는 무일푼 신세가 됐다. 제이콥슨은 세일즈맨으로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다시 옷 가게를 열었다.

트루먼은 천지개벽하듯이 운수(運數)가 대통(大通)해서 판사가 되고 상원의원이 되더니 부통령을 하다가 대통령이 됐다. 그럼에도 트루먼에게 제이콥슨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제이콥슨은 백악관을 아무 때나 들어가서 트루먼을 만날 수 있었다. 동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부모에서 태어난 제이콥슨은 트루먼을 만날 때마다 “네가 유대인을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이스라엘 건국을 추진하던 시오니즘 기구는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반대하는 한 트루먼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트루먼의 친구인 제이콥슨을 설득했다. 미주리에 살던 제이콥슨은 백악관에 도착해서 트루먼을 만났다. 그는 트루먼에게 시오니즘 조직을 이끄는 차임 와이즈먼(Chaim Azriel Weizmann 1874~1952)은 가장 훌륭한 유대인이라면서 만나주기를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1948년 3월 18일 트루먼은 채임 와이즈먼을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트루먼은 와이즈먼의 인품에 감탄했다. 와이즈먼은 트루먼에게 네게브 사막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해 달라고 부탁했고 트루먼은 이 청탁도 받아드렸다.

트루먼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게 된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백악관에는 클라크 클리포드(Clark Clifford 1906~1998)라는 유능한 변호사가 현역 장교로 해군 보좌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트루먼은 자기처럼 미주리 출신인 클리포드를 좋아해서 전역 후에도 백악관 보좌관으로 일하도록 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클리포드는 1948년 대선을 앞두고 트루먼에게 선거에 관한 조언을 했다.

당시 트루먼은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토머스 듀이(Thomas Dewey 1902~ 1971) 뉴욕 주지사에 뒤지고 있었다. 트루먼에 앞서 부통령을 지낸 사회주의자 헨리 월러스(Henry Wallace 1888~1965)가 진보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어서 백악관에는 선거는 이미 틀렸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클리포드는 트루먼에게 월러스로 가는 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루스벨트의 진보적 정책을 계승하고 뉴욕, 오하이오, 일리노이 같은 경합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유대인 표를 얻어야 한다면서 시오니즘을 지지해야 한다고 권했다. 루스벨트와 달리 트루먼 행정부에는 유대인 각료가 한 명도 없어서 유대인 표가 헨리 월러스로 이동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트루먼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조지 마셜 국무장관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독립을 신속하게 승인한 것이다.

그 해 대선에는 민주당 출신인 스토롬 서몬드 상원의원이 남부를 겨냥해서 단독으로 출마해서 민주당 쪽은 후보가 세 명이 되어 트루먼에게는 원천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클라크 클리포드가 지휘한 선거 운동 덕분에 트루먼은 막판 뒤집기로 토머스 듀이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 선거를 계기로 클리포드는 민주당의 전략가로 부상했고, 나중에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대통령에 자문을 했다. 클리포드는 존슨 대통령 임기 막판에 국방장관을 지냈다. 트루먼의 친구 에디 제이콥슨은 1949년에 이스라엘을 방문했는데, 차임 와이즈먼 대통령과 벤 구리언 총리가 그를 반갑게 영접하는 등 영웅 대접을 받았다.

- 사진 (1) 트루먼 대통령과 그의 친구 제이콥슨.
- 사진 (2) 트루먼 대통령과 차임 와이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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