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작성일 : 2023-03-04 10:13조회 : 583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의회 발언에 대해 외부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발언·표결 면책과 불체포 특권은 의회를 전제적 왕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으니, 이제는 그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렵다. 몇몇 의원과 논객이라는 사람이 이재명을 비난하면서 그럼에도 불체포 특권은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불체포 특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재명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제일 꼴불견이라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은 제1조 6항에서 의원의 표결과 발언에 대한 면책과 불체포 특권을 규정한다. 그런데, 불체포 특권은 반역, 중죄, 그리고 평화 파괴(treason, felony, breach of peace)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뇌물, 주식 사기 등 웬만한 범죄는 중죄이며 개념 자체가 모호한 평화 파괴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선 의원들의 불체포 특권이 없다고 보면 된다. 미국은 사법제도가 피의자/피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때문에 불체포 특권 자체가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점은 미국에선 의원이나 선출직 공직자가 어떤 불미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나면 사임하라는 여론이 강해서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그것을 버티어 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1년 8월 뉴욕 주지사이던 앤드류 쿠오모는 직원 성추행 의혹이 커지자 여론에 밀려서 임기 중 사임했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쿠오모 지사의 사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서유럽이나 일본도 사정은 비슷해서 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헌법을 처음 만들 때 참여했던 유진오, 조소앙, 신익희 등은 자유중국 헌법을 많이 참조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감사원이 독립기관으로 들어가 있는 것도 자유중국 헌법의 5권 분립(입법, 행정, 사법, 고시, 감찰) 영향이다. 자유중국 헌법 제73조와 제74조에 우리나라 헌법에 있는 의원의 발언 표결 면책권과 불체포 특권 조항과 똑 같은 조항이 있다. 그런데, 자유중국, 즉 대만은 헌법을 여러 차례 개정하면서 불체포 특권에서 ‘중대한 범죄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니까 의원이 살인과 강간은 물론이고 뇌물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불체포 특권을 주장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야말로 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살아 있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보면 된다. 그야말로 헌법 조문 속에서 살아있는 화석(化石)인 셈이다. 개헌을 할 기회가 있으면 이 조항은 없애야 하고, 더불어서 현직 대통령의 형사 특권도 함께 삭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웬만한 나라는 구속 적부심만 있는데 우리는 영장실질심사라는 구속전 심리 제도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인신보호 장치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의원들에게 불체포 특권을 부여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영장실질심사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판사 출신인 안우만이 법무장관을 지낼 때 검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된 제도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의미는 있지만 이로 인해 전관 변호사를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한 부유한 피의자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 기각을 받아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유한 피의자는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서 불구속 상태로 법정 투쟁을 하고 그렇지 못한 가난한 피의자는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모든 제도는 이처럼 양면성이 있다.

불체포 특권 폐지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것을 폐지하기 전이라도 체포 동의안 처리를 기명 투표로 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일리는 있으나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를 없애 버리고 공천제도도 없애 버리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든 정치 개혁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 그리고 중앙당을 없애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부’자를 지우는 듯 쓴 투표용지를 보고 한글도 못 쓰는 의원이냐고 비웃는데, 도무지 한글을 못 쓰는 의원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기표소에 들어가서도 ‘부’라고 할 지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무효표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소신이 없는 의원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흔들렸던 의원들이 만들어 냈음을 알아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장 인준 부결을 이끌어낸 의원들은 어떤 의원들이었는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 역시 무기명 투표 할 때 기표소에서 마지막까지 망설인 적이 있었다.

이전글엔테베 작전

다음글트루먼과 이스라엘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