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트남 전쟁과 간첩

작성일 : 2023-03-06 20:01조회 : 703

베트남 전쟁과 간첩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파리 협정이 맺어지고 50년 세월이흘렀다. 2025년이면 남베트남이 몰락해서 베트남이 통일된 지 50년이 된다. 베트남 전쟁은 당사자인 남·북 베트남 뿐 아니라 미국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남베트남이 무너진 데는 남베트남 곳곳에 북베트남이 심어놓은 간첩이 큰 역할을 했음은 잘 알 것이다. 남베트남 군대와 정부에 간첩이 너무 많아서 미군은 작전 정보를 남베트남 군과 공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은 간첩은 타임지 사이공 주재 기자를 오래 지낸 팜 쑤안 안(Pham Xuan An 1927~2006)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신분이 폭로되지 않았을 뿐더러 사이공에서 그와 교류하면서 그에 의존해서 기사를 썼던 데이비드 핼버스탬, 닐 쉬핸, 에벌리 디프 등이 퓰리처상을 타는 등 유명해 졌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기자들이 팜 추안 안의 심리전에 놀아 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인 것이다. 2007년과 2009년에 팜 쑤안 안에 대한 책이 나왔는데, 뒤늦게 읽게 돼서 책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954년 3~5월에 있었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 군이 호지민이 이끄는 공산 민족주의 세력(베트민)에게 패배하자 가톨릭 신자 등 100만 명에 달하는 반공 주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 같은 대탈출은 CIA가 미 해군 함정을 동원해서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은 그 때 남하한 가톨릭을 대표하는 응오 딘 디엠(Ngô Đình Diệm 1901~1963. 11. 2)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사이공에 반공 정부를 수립했다. 토속 불교 신앙이 강한 남부 베트남에 가톨릭 엘리트 계층이 별안간 지배세력으로 군림했으니 갈등은 불을 보듯 뻔했다. 디엠 정부는 일가족이 권력을 사유화해서 미국에게도 큰 부담이 됐고, 케네디 대통령은 디엠 암살을 승인하게 된다. 디엠이 암살된 후 3주 후에 케네디도 암살됨에 따라 린든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이란 골칫덩이를 인수하게 된다.

프랑스를 대신해서 미국이 남쪽에 들어 올 것을 예상한 호지민 세력은 자신들의 첩자들을 사이공 정부의 곳곳에 침투시켰다. 그 중 거물 간첩으로 팜 응곡 타오, 부 응곡 나, 그리고 팜 쑤안 안을 뽑는데 이론이 없다. 세 사람은 군인, 신부, 그리고 기자 신분을 갖고 사이공에서 2중 생활을 했다.

팜 응옥 타오(Pham Ngoc Thao 1922~1965)는 프랑스식 교육을 받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으나 고등학교 시절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베트민 소속으로 남쪽에서 활동했다. 디엠 정권이 들어서자 가톨릭 신자라는 신분을 내세워서 디엠 정부의 군대에 들어갔고 디엠 대통령의 형인 응오 딘 툭 대주교의 신임을 얻어서 워싱턴 주재 대사관 연락장교를 지내면서 미국 정보당국과 교류했다. 대령이 된 그는 사이공 부근의 벤 트리 지방에서 지사를 지내면서 전략 마을(strategic hamlet)을 운용했는데, 그가 지사를 지내는 동안 그 지역에는 베트콩의 공격이 없자 속사정을 모르는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방문했고 데이비드 핼버스탬 등 미국 기자들이 미담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전략 마을이란 베트콩이 나오는 마을의 주민을 소개해서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기존 마을을 베트콩에게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을 버리고 강제로 이사를 온 농민들도 반감을 갖아서 실패로 끝났다. 이 아이디어 자체가 베트콩의 심리전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디엠 대통령이 죽자 쿠데타가 연이어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팜 응곡 타오는 1965년 5월 체포된 후 사망했다. 정권을 장악해서 총리가 되는 응구엔 카오 끼(Nguyễn Cao Kỳ 1930~2011) 공군사령관 측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추측됐다. 1981년 베트남 정부는 그의 시신을 애국 묘역에 안장하고 국가 영웅으로 추대함에 따라 그가 북베트남의 간첩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 응구엔 카오 끼 전 총리는 나중에 나온 회고록에서 타오가 쿠데타 정국을 이용해서 남베트남 정부를 와해시키려고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 응옥 냐(Vu Ngoc Nha 1918~2002)는 하노이 부근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서 고교시절에 공산주의자가 돼서 베트민에 가담했다. 북베트남에서 남쪽으로 주민들이 대거 탈출할 때 남하했다. 호지민은 그에게 가톨릭 신부로 위장해서 사이공 정부에 침투하도록 했다. 사이공에서 신부로 활동하다가 디엠 대통령 일가에 의해 발탁돼서 대통령 궁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등 디엠 대통령과 가까이 지냈다. 1963년 쿠데타로 그의 신분이 위태로워지는 듯 했으나 집권에 성공한 응구엔 반 티우(Nguyễn Văn Thiệu 1923~2001) 대통령도 가톨릭 신자여서 대통령실 신부로서 신분을 유지하면서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부 응옥 냐는 간첩 네트워크를 조직했으며, 1968년 초 구정 대공세 때 티우 대통령 등 요인을 암살하고 정부를 전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이공 외곽에 주둔 중이던 미 육군 25사단이 베트콩 침략군을 섬멸함에 따라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1969년 CIA는 냐 등 42명을 간첩으로 파악해서 남베트남 경찰로 하여금 체포하도록 했다. 그가 티우 대통령과 가까웠던 신부여서 이들은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감금되는 데 그쳤다. 1973년 파리 협정에 따라 양측은 포로를 교환하게 됐는데, 북베트남은 미군 조종사 포로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이들의 송환을 요구해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 하노이로 귀환했다. 그는 다시 남쪽에 침투해서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 군대가 사이공을 점령할 때 자기가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대통령궁에 앞장서서 들어갔다.

사진 (1) : 남베트남 군 대령 시절의 팜 응곡 타오.
사진 (2) : 베트남 통일(공산화) 후 하노이에서 전쟁 영웅으로 만난 부 응옥 냐 소장(왼쪽)과 팜 추안 안 준장(오른쪽).
사진 (3) : 사이공 주재 타임지 사무실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팜 추안 안. (1970년 전후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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