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트남 디엠 정권 수립

작성일 : 2023-03-09 19:51조회 : 517

베트남 디엠 정권 수립

베트남에 디엠 정권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열린 포츠담 회담은 베트남 북쪽은 중국이, 남쪽은 영국군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항복을 하자 북쪽에서 중국군이 들어 왔으나 본국 사정이 급한 장제쓰는 중국군을 철수시켰다. 이후 북쪽에선 호지민이 이끄는 베트민과 프랑스 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된다.

사이공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일본이 항복하자 베트민은 임시정부를 선포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계속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주로 인도 네팔 출신 군인으로 구성된 영국군 1800명을 사이공에 보냈다. 사이공에 도착한 영국군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영국군은 일본군 치하에서 격리돼 있던 프랑스 외인부대 병력 1400명을 부대로 복귀시켰다. 이들은 시내로 쏟아져 나와서 상점을 약탈하고 건물에 프랑스 국기를 내걸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환호했다. 그러자 베트민이 총파업을 단행해서 도시가 마비됐다. 베트민의 공격을 우려한 2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주민들은 도심에 모여 바리케이드를 쌓고 대비했다.

그날 사이공 근교 주택가에 베트민 행동대원이 빈 추엔이라고 불리는 조직 범죄단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프랑스인 등 외국인 150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가 증원군을 급히 사이공에 파견하고 미국도 프랑스를 지지하고 나섰다. 프랑스는 사이공 등 베트남 남부를 다시 통치하게 됐고, 미국은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고문단을 파견했다.

베트남 북부에선 프랑스 군대가 호지민 군대와 힘들게 싸우고 있었다. 패전을 거듭한 프랑스 군은 라오스 국경 근처의 디엔비엔푸 기지에 병력을 모은 후 이 기지를 근거로 전투를 계속하려 했다. 디엔비엔푸가 살아날 유일한 가능성은 미 공군의 대대적인 지원 뿐인데, 미 합동참모본부는 공중지원을 거부했다. 디엔비엔푸는 프랑스 군의 무덤으로 전락했고 프랑스 군은 1954년 5월 7일 항복했다.

1954년 7월 제네바 협정은 베트남은 북위 17도로 남과 북으로 분리하고 그 후 선거로 정부를 수립하도록 했다. 인구가 많은 북쪽을 장악한 호지민이 유리하기 때문에 선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미국은 남베트남에 반공 정부를 독자적으로 수립할 계획이었다. 1954년 6월 사이공에 도착한 에드워드 랜스데일(Edward Lansdale 1908~1987) 대령이 이 일을 책임지게 됐다.

베트남 중부의 좋은 가톨릭 가정 출신으로 프랑스식 교육을 받은 응오 딘 디엠(Ngô Đình Diệm 1901~1963. 11. 2)은 프랑스 식민 지배하의 형식적 국왕이던 바오 다이에 의해 작은 도시의 지사를 지내고 내무장관에 임명됐으나 곧 사임했다. 디엠은 프랑스 식민통치 뿐 아니라 공산주의에도 반대했다. 호지민은 디엠을 회유하려 했으나 디엠은 거절하고 식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주장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디엠은 1950년에 출국해서 로마에 도착했다. 바티칸을 방문하고 파리를 거쳐 미국에 도착한 디엠은 스펠먼 추기경과 몇몇 정치인을 만났다. 입지가 취약한 바오 다이 황제는 디엠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아 드린 디엠은 1954년 6월 사이공으로 귀국해서 총리로 취임했다.

디엠은 미국이 선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쪽 베트남에서 디엠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이었다. 남쪽 베트남은 밀림 지대로 크메르 부족이 살았던 곳인데, 프랑스는 이곳을 개발해서 사이공이란 도시를 건설했다. 사이공 도심은 파리의 거리를 연상하도록 건설해서 ‘동남아의 보석’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프랑스의 식민 통치는 가혹했다. 남쪽 바다 고도(孤島)에 영화 ‘빠삐용’을 연상시키는 감옥을 건설해서 정치범을 가두고 죽였다. 사이공 시내에서 길로틴으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프랑스 식민당국은 아편 생산과 소비를 독려해서 원래 중국인이 하던 아편 담배가 급속히 번져 나갔다. 사이공에선 너나없이 아편을 피웠다. 예산이 부족한 프랑스 주둔군은 마약 거래를 하고 아편을 가공하는 공장을 직접 운영했다. 군 수송선 편으로 마약을 마르세이유로 보내서 유럽에 마약이 퍼지도록 했다. 프랑스 군이 마지막으로 패배한 디엔비엔푸는 라오스 국경 가까이 있는데, 그런 외진 곳에 기지를 만든 이유는 그곳이 라오스 영토에서 생산된 아편을 베트남으로 들여오는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사이공과 메콩 델타 지역에는 빈 쑤엔(Binh Xuyen)이라고 불리는 조직범죄단이 활동을 했다. 일본군이 철수하자 이들은 베레모를 쓰고 공공연하게 거리를 누볐다. 이들은 호텔, 도박장 등 유흥업소에서 돈을 뜯고 매춘업과 아편 장사를 했다. 디엠이 총리가 됐더라도 사이공은 사실상 빈 쑤엔이 장악한 상태였다. 미국을 경계한 프랑스 관리들은 빈 쑤엔의 활동을 방조했다. 당시 빈 쑤엔의 리더는 반 비엔(Lê Văn Viễn 1904~1972)이었다. 디엠을 총리로 임명한 바오 다이는 반 비엔을 베트남 육군 소장으로 임명하고 그의 사병조직을 베트남 정규군으로 편입시켰다. 디엠 총리를 견제하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프랑스 정보장교 사비니 대위의 술수였다. 이처럼 사이공에선 미국이 지지하는 디엠과 이권을 지키려는 프랑스 세력이 충돌했다.

1955년 4월 디엠은 반 비엔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통첩을 보냈으나 반 비엔은 응하지 않았다. 4월 27일 디엠에 충성하는 육군 부대가 빈 쑤엔을 공격했다. 1주일 동안 지속된 시가지 전투에서 디엠 측 군대는 보병과 포병, 그리고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공격했다. 빈 쑤엔이 장악했던 카지노와 매춘업소가 있는 지역 등 시가지가 많이 파괴됐다. 반 비엔의 사병과 민간인 약 1,000명이 사망했고 베트남 군도 다수의 전사자를 냈다. 반 비엔은 파리로 도망가 버렸고, 프랑스 군부는 사이공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디엠은 바오 다이를 퇴위시킨 후 형식적인 선거를 거쳐 베트남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빈 쑤엔 세력을 소탕한 ‘사이공 전투’가 끝날 무렵인 5월 3일, 쯔린 민 테(Trình Minh Thế (1920~1955. 5. 3) 장군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 프랑스 식민주의에 반대하고 베트민도 반대한 반공주의자였던 테는 민병대 세력을 이끌고 프랑스 식민당국을 상대로 몇 차례 테러를 감행했다. 랜스데일 대령은 테 장군에게 베트남 정규군으로 편입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디엠을 지지하던 장군들은 카리스마 있는 테 장군을 라이벌로 보았다. 테 장군을 저격한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디엠 정부는 그것이 베트민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디엠에 충성하는 장군들이 그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측됐다. 테가 사망함으로써 남베트남은 디엠 체제로 안정됐고, 미국은 디엠 체제를 지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 사진 (1) 랜스데일 대령과 디엠
- 사진 (2), (3) 빈 쑤엔을 공격하는 베트남 정부군. ‘1955년 사이공 전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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