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스라엘, 혼돈에 빠지다

작성일 : 2023-03-28 19:59조회 : 537

이스라엘, 혼돈에 빠지다

이스라엘 정국이 혼란 속에 빠졌다. 대법원 판결을 의회가 법률로서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부 개혁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확대일로에 있더니 이를 비판한 국방장관을 네타냐후 총리가 해임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이제 이스라엘 군(軍)마저 등을 돌렸기 때문에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1949~ ) 총리는 궁지에 몰렸지만 사태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날 이스라엘 정치가 이 모양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소련과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많아서 이스라엘 국민의 구성이 변했으며, 21세기 들어서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세력이 정당을 만들어서 원내에 진입해서 정치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비례대표제가 이러한 혼란을 촉진하는데 기여했다. 건국 초에 인구 100만 명으로 시작한 이스라엘은 국회의원 전원을 폐쇄형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해 왔다. 건국 초에 비해 인구가 10배가 됐지만 선거 제도는 그대로이다.

이스라엘 의회는 지역구 선거가 없이 전국적 정당 명부 비례대표로 120명을 선출한다. 득표율 3.25%만 넘으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받는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다당제는 불가피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근래에는 정부를 이끌어 가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2022년 11월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32석을 차지해서 1당이 됐고 네타냐후는 근본주의 성향의 작은 정당 5개를 끌어 모아서 64석 규모의 집권 여당을 구성했다. 야당은 미래당(Yesh Atid)이 24석을 얻었고 나머지 5개 정당은 4~12석을 각각 얻었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축이던 노동당은 4석을 얻어서 5석을 얻은 아랍연맹당에도 뒤지는 초라한 꼴이 됐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벤구리언이 세운 마파이당은 그 후 노동당으로 발전해서 1977년 총선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킹 다비드 호텔 폭파 같은 강경한 무장독립 투쟁을 전개했던 이르군(lrgun)을 이끈 메나쳄 베긴(Menachem Begin 1913~1992)이 만든 헤루트당은 제2당이 됐다. 헤루트당은 1973년 선거를 앞두고 리쿠드(Likud)당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파이/노동당은 군소정당과 연립해서 1949년부터 1977년까지 장기간 집권했다. 마파이/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서 역시 사회당이 주도했던 프랑스 4공화국 정부와 사이가 좋았으나 사우디 등 산유국을 중시했던 아이젠하워 행정부와는 소원(疏遠)했다.

노동당 정부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승승장구했다. 리쿠드당은 2당으로 명목을 유지했으나 의석수는 노동당의 절반도 못됐다. 그런데 1973년 가을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고전(苦戰)했다. 무적(無敵)의 이스라엘 군(軍) 신화가 깨져버린 것이다. 그 책임은 노동당 지도부, 특히 국방장관 모세 다얀(Moshe Dayan 1915~1981)과 그가 임명한 군 지휘부로 돌아갔다. 모세 다얀과 불화(不和)로 군복을 벗은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1928~2014) 장군은 베긴이 이끄는 리쿠드당에 입당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예비군 사단을 이끌고 시나이 전선(戰線)을 돌파해서 이집트 3군 전체를 포위함으로써 전세(戰勢)를 반전(反轉)시켰다.

노동당은 4차 중동전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 아리엘 샤론이 리쿠드당을 선택하자 이스라엘 정치에 지각 변동이 발생했다. 1973년 12월 총선에서 노동당 연합은 51석을 얻어서 1당을 유지했으나 리쿠드당은 39석을 얻어서 노동당을 바싹 따라 붙었다. 그리고 1977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43석을 얻고 노동당 연합은 32석을 얻는데 그쳐서 메나쳄 베긴이 총리가 됐다.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집권당 교체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 후 이스라엘은 리쿠드당과 노동당이 1당과 2당을 번갈아서 했다. 하지만 1996년 총선부터는 어느 당도 40석을 하지 못해서 군소정당과의 합종연횡(合綜連橫)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1996년에 국민직선으로 네타냐후가 총리로 선출됐으나 총리 직선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2003년 총선에선 리쿠드당을 이끈 아리엘 샤론이 승리해서 총리가 됐으나 리쿠드 당내에서 분열이 생겨서 샤론 등 온건파가 탈당해서 카디마당(Kadima)을 새로 만들었다.

2009년 총선에선 모사드 특수부대 출신 여성 정치인 치피 리브니(Tzipi Livni 1958~)가 이끄는 카디마당이 28석을 얻어 1당이 됐으나 27석을 얻은 리쿠드당이 연정 구성에 성공해서 리브니는 야당 지도자로 만족해야만 했다. 2013년 총선에선 카디마당은 겨우 2석을 얻어서 몰락했고, 31석을 얻은 리쿠드가 1당이 되어 집권을 계속했다. 2013년 총선에선 웨스트뱅크 등 정착지에 사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이스라엘은 우리집'당이 12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켜서 제4당으로 부상했다. 또한 랍비 등 근본주의 유대교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세운 정당 여럿이 의회에 진출해서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2015년 총선부터 노동당은 군소정당으로 몰락했고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리쿠드당은 자기들 보다 더 보수적이며 더 강경한 군소정당을 끌어 모아 연정 내각을 구성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해 중도를 내세운 청백당/국민통합당, 그리고 또한 근본주의 유대교인에 대한 병역면제를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미래당(Yesh Atid)이 야권을 형성했다.

1976년 엔테베 작전에서 전사한 형 요나단 네타냐후 중령의 후광(後光)에 힘 입어 정치를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는 총리를 직선으로 선출한 1996년에 처음으로 총리가 됐고, 그 후 리쿠드당을 이끌고 2009년부터 총리를 맡아 오고 있다. 네타냐후는 2021년에 연정 세력 일부가 이탈해서 미래당과 연합함에 따라 물러났으나 2022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은 1당을 차지했고 네타냐후는 5개 군소정당과 연정 내각을 구성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집권 연정에 참여한 6개 정당 중에 리쿠드당이 가장 진보적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고 있다. 6개 야당 중 세속주의(Secularism)를 주창하는 실용적 성향의 정당은 미래당(Yesh Atid)과 국민통합당(National Unity)인데, 두 정당은 의석이 각각 24석과 12석 밖에 안 되고 있어 문제다.

과학기술과 교육, 그리고 군사적 능력에서는 1등 국가인 이스라엘이지만 의회 정치는 이처럼 한심한 지경에 처해 있다. 철저한 비례대표 정당투표로 의회를 구성하는 이스라엘의 선거제도가 이런 혼란을 야기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완전한 비례성으로 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어느 정당도 40석을 넘지 못하며, 10개 이상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하기 때문에 여러 정당을 모아서 간신히 내각을 구성하는 형편이다. 전에 없는 정치적 위기가 닥친 이스라엘이 과연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치는 정당 득표에 따라 의석이 배분돼야 하며 다당제가 희망이라고 외치는 진보주의자/비례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게 해준다. 세상은 복잡한 것이고 민주주의 역시 간단하지 않으며,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 사진 :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시민들. 텔아비브.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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