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드가 후버

작성일 : 2023-04-04 08:46조회 : 540

에드가 후버

미국 의회가 FBI 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정한 것은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 5. 2)가 반세기 동안 FBI 국장으로 있어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FBI 국장은 임기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은 후버를 경질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후버가 자신들의 부패와 비리, 여자 관계 등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다고 지레 겁을 먹어서 후버를 통제하기는커녕 상대하기도 두려워했다.

에드가 후버는 24살 때 연방수사국(FBI)의 전신인 수사국(BI)에 취직해서 2년 후에 부국장이 되고 1924년에 캘빈 쿨리지 대통령에 의해 국장이 됐다. 전임 국장이 당시 시끄러웠던 티포트 돔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어서 청렴한 대통령인 쿨리지가 젊고 일 밖에 모르는 후버를 국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1935년에 BI는 FBI로 명칭을 바뀜에 따라 후버는 그대로 FBI 국장이 됐다. 그리고 1972년 5월 2일에 사망할 때까지 국장을 했으니 BI 시절부터 계산하면 무려 50년 동안 국장을 한 셈이다.

후버는 국장이 되고 나서 몇 년 전부터 채용하기 시작한 여성 요원(agent)를 모두 해고했다. FBI 요원은 양복을 입은 남성이어야 했다. 밀주업자와 갱단들을 상대로 기관총을 휘두르는 FBI 요원(G-Man)들이 말쑥한 정장 차림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후버가 국장을 지낼 때 FBI 직원 중 흑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후버의 옷과 구두를 관리하는 집사와 요리사뿐이었다. 후버가 1972년에 사망하자 FBI는 비로소 여성 요원과 흑인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트루먼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은 후버를 경질할 생각도 했으나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후버는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싫어했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암살당했을 때 후버가 보여준 태도는 의혹을 일으킬 만하다. 당시 법무장관이던 로버트 케네디는 후버 국장으로부터 형이 피격 당했음을 알게 됐다. 후버는 케네디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The President was shot."이라고 퉁명스럽게 알려주고 끊었다. 얼마 후 후버는 다시 전화를 걸어서 ”The President is dead."라고 한 후 끊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다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부 관계자는 FBI 국장임에도 후버에게 그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케네디 암살에 대해 FBI가 얼마나 진지한 수사를 했는지를 두고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다. 케네디가 사망한 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은 후버와 사이가 좋았다. 당시 연방 공직자 정년이 70세였기 때문에 후버는 1965년 초에 퇴임하게 돼 있었는데, 존슨 대통령은 후버에 대해서 그 요건을 면제해서 계속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후버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의원과 반전 운동가, 흑인 민권운동을 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맬컴 X 등 ‘불온인사’들의 전화를 도청했다. 존슨은 후버가 불법적으로 도청을 해서 만든 자료를 읽기를 좋아 했다. 후버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혼외정사 녹음을 존슨에게 전달했고 존슨은 그것을 듣고 재미있어 했다고 전해진다. 후버는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도청해서 존슨에게 알려 주었음이 나중에 확인됐다.

존슨 대통령과 후버는 사이가 좋았으나 닉슨 대통령은 원래부터 후버와의 관계가 별로였다. 닉슨은 후버가 노망(老妄)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경질하려고 했으나 밥 홀드먼 비서실장이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또 후버가 곧 죽을 것 같으니까 기다리자고 해서 생각을 바꾸었다.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에 시달리게 된 닉슨은 자기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후버와 존슨이 저지른 행위에 비하면 워터게이트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음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후버였다. 닉슨이 취임한 후에는 후버는 불법도청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이 비밀리에 명령한 캄보디아 폭격이 얼마 후에 뉴욕타임스에 보도가 되자 후버에게 어디서 그런 군사 비밀이 새어 나갔는지를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후버는 FBI는 도청을 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닉슨은 백악관 참모들에게 지시해서 국가안보실(NSC) 멤버와 헨리 키신저의 스태프의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으나 비밀 누설자를 찾지는 못했다. 1971년 들어서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특종으로 보도하자 닉슨은 측근 참모들에게 지시해서 백악관에 정부 기밀을 지키기 위한 특별 팀을 두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CIA와 FBI에서 일 했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팀이 이른바 배관공(The Plumbers)으로, 이들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침입해서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달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에드가 후버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인 1972년 5월 2일에 사망했다. 후버가 사망하자 닉슨은 드디어 자기 사람을 FBI 국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 당시 FBI에는 2인자 격인 사람이 세 명 있었는데, 그 중 두 명인 서로 싸우다가 모양이 우습게 돼버려서 FBI 내부에서 국장을 임명하려면 마크 펠트(Mark Felt 1913~2008)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닉슨은 잠수함 장교 출신으로 법무부 민사담당 차관보를 지내던 패트릭 그레이(L. Patrick Gray III 1916~2005)를 국장으로 지명했다.

그레이는 수사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져서 상원의 인준을 제 때에 받지 못하고 서리로서 FBI를 이끌어 갔다. FBI 내부 사정을 모르는 그레이는 지부의 보고를 받는다고 전국을 순회해서 내부에서도 비웃음을 샀다. 이런 와중에 마크 펠트는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워터게이트 수사 상황을 비밀리에 알려주어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켜지고 만다. 마크 펠트가 과연 진실과 정의를 위해 우드워드 기자에게 수사 상황을 알려주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FBI 국장이 되지 못한데 대한 앙갚음으로 그랬는지는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

- 사진 (1) 후버 국장과 존슨 대통령.
- 사진 (2) 닉슨 대통령과 후버 국장. 닉슨은 듀크 로스쿨을 졸업하고 FBI에 지원서를 냈으나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해서 실망하고 고향 휘티어로 돌아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러다가 당시 민주당 현역 하원의원과 상대할 만한 인물을 찾던 그 지역 공화당과 재계 인사들 눈에 띠여서 닉슨은 하원의원 출마를 해서 당선된다. 닉슨이 FBI에 취직을 했더라면 대통령이 될 일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닉슨이 FBI에 지원서를 냈을 때에도 FBI 국장은 물론 후버였다.

(1971~72년 간 FBI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래를 클릭..)
http://www.leesangdon.com/bbs/board.php?bo_table=column&wr_id=179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F%A1%B5%E5%B0%A1+%C8%C4%B9%F6&sop=and&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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