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네디의 여자들

작성일 : 2023-04-08 22:26조회 : 827

케네디의 여자들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중 여자 인턴과의 섹스 스캔들로 고생이 많았다. 그 사건으로 시끌시끌할 때 백악관에서 각료 회의가 열렸다. 도나 샬랄라(Donna Shalala 1941~) 보건휴먼서비스장관이 “당신은 부끄러워야 한다”고 쓴소리를 하자 클린턴은 얼굴을 붉히면서 케네디 대통령에 비하면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도나 샬랄라는 클린턴 임기 끝까지 장관직을 지켰고 그 후 마이애미 대학 총장을 오래 지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자에게 입막음 돈을 주었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한 도널드 트럼프도 케네디에 비하면 자기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단지 돈을 준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의 입을 막기 위해 케네디 형제가 그녀의 죽음에 개입했다고 생각한다면 트럼프가 한 일은 그 근처에 오지도 못한다.

존 F. 케네디의 여성 편력에 대해선 말이 무성했지만 로버트 댈릭이나 에드워드 클라인 같은 전기 작가의 책에 그 문제가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1962년 여름, 케네디 백악관의 공보실에는 고등학교를 금방 졸업한 키가 큰 여자 인턴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이 여자 인턴은 백악관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갔다.

2000년대 초, 케네디 백악관 공보실에서 일했던 여직원이 타이핑도 할 줄 모르고 아무 능력이 없었던 젊은 여자인턴이 1년 반 동안 있었던 것은 수시로 케네디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그러자 그 여성의 신분이 확인되고 말았다. 2012년, 미미 알포드(Mimi Alford 1943~ )는 40년 동안 자신만 알고 있었던 비밀을 <Once Upon A Secret>이란 책으로 펴냈다. 두 번 결혼한 그녀는 손자 손녀를 여럿 둔 70세를 바라보는 노년이었다.

케네디 백악관의 경호실은 ‘Fiddle'과 ’Faddle'이란 암호 명으로 부르는 두 젊은 여성을 백악관 풀장에 배치시키고 관리했다. 허리 통증이 심해서 수영을 좋아했던 케네디가 무엇을 했을지는 짐작할 만하다. 닉슨 대통령은 그 수영장이 불쾌했는지 갈아엎고 거기에 기자회견장을 만들었다.

1964년 10월 12일 오후, 워싱턴의 부촌인 조지타운에서 물길 산책로를 걷던 44세의 이혼녀 매리 핀초 마이어(Mary Pinchot Meyer 1920~1964)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검시관은 정조준 근접 사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근을 걸어가던 한 흑인이 용의자로 체포됐으나 경찰은 권총 등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 흑인은 증거 부족으로 공소가 기각돼서 풀려났다. 미제 살인 사건으로 남아 있던 그녀의 죽음은 1976년에 한 잡지가 그녀가 케네디 대통령의 정부(情婦)였다고 밝혀서 다시 조명을 받게 됐다.

피터 재니(Peter Janney 1947~)는 매리를 잘 알았다. 피터의 아버지는 해군 조종사 출신으로 CIA 간부를 지냈다. 피터의 부모와 매리 부부가 알링턴 부촌에 살면서 가까이 지냈고 교통사고로 어린 나이에 사망한 매리의 아들은 피터의 친구였다. 매리가 케네디 대통령의 정부였음을 알게 된 피터는 미궁에 빠진 매리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파고들었다.

매리의 부모는 케네디 가문과도 잘 알았던 상류층이었다. 매리는 명문 여대인 바싸(Vassar)를 졸업한 화가였다. 그녀는 예일대를 나온 CIA 요원 코드 마이어(Cord Meyer 1920~2001)와 결혼했으나 1958년에 이혼했다. 코드 마이어는 예일대 선배인 제임스 앵글턴(James Angleton 1917~1987)과 가까웠다. 앵글턴은 CIA의 방첩단장(Counter-intelligence Chief)을 지낸 신비로운 인물이다. ‘CIA 내의 CIA'였던 방첩단을 이끈 앵글턴은 에드가 후버 FBI 국장과 협력했고 또 경쟁을 했다.

피터 재니는 자기가 어릴 적에 본 적이 있는 매리가 케네디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2013년에 나온 책이 <Mary's Mosaic>인데, ‘The CIA Conspiracy to Murder John F. Kennedy, Mary Pinchot Meyer, and Their Vision for World Peace’란 긴 부제를 달고 있다. 그의 결론은 CIA가 케네디와 매리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CIA가 케네디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이유는 넘치게 많았다. 매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죽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매리는 케네디와 마리화나를 피면서 잠자리를 같이 했고, 케네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것을 일기장에 남겼다고 전해진다. 피터는 매리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코넬대를 나온 당시 육군 중위 윌리엄 미첼이라고 밝히고 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답변서를 받아내서 그것을 2016년 판에 수록했다.

매리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당시 뉴스위크 워싱턴 지국장이던 벤 브래들리(Ben Bradlee 1921~2014)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나중에 워싱턴포스트 편집장이 되어 유명해지는 브래들리도 처형(妻兄)인 매리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 많을 텐데 침묵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라져 버린 매리의 일기장의 행방을 둘러싼 의문, 매리의 전 남편 코드 마이어가 케네디 암살에 연루됐다는 등 많은 이야기가 그 후에 나왔다. 피터 재니가 펴낸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을 뿐더러 케네디 암살을 단순한 음모설 차원을 넘어서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 사진 : 케네디 대통령 46세 생일파티에 참석한 매리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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