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피그스 만의 영웅

작성일 : 2023-04-21 00:34조회 : 499

피그스 만의 영웅

피그스 만 작전 실패 후 쿠바에 억류되어 있던 2506 부대원들은 20개월 만에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하지만 B-26 폭격기를 타고 마지막 날 출격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앨라배마 항공방위군 출신 미국인 조종사 4명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케네디 정부는 피그스 만 침공은 순전히 쿠바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보아서 미국인 전사자가 있어서는 안됐기 때문이었다. CIA는 이들에 대해 생명보험을 들어 놓아서 보험회사는 유가족들에게 보험금을 전달했지만 미국 정부나 앨라배마 주정부는 이들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카리브 해에 추락한 폭격기에 타고 있던 라일리 샴버그 소령과 다른 승조원은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쿠바 육지에 추락해서 폭격기에 타고 있던 토머스 레이 소령과 다른 승조원은 카스트로 군에 의해 처형됐다. 카스트로는 레이 소령의 시신을 냉동시켜서 전리품으로 보관토록 하고 다른 승조원의 시신은 공동묘지 구덩이에 넣어 버렸다.

토머스 레이(Thomas Ray 1931~1961) 소령에게는 아홉 살 난 딸 태닛이 있었다. 태닛은 그 후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국방부와 CIA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보공개법에 의해 자료 청구를 하는 등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아버지의 시신이 카스트로 정부의 수중에 있음을 알아냈다. 1978년 들어서 CIA는 드디어 4명의 조종사에 대해 CIA 최고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면서도 CIA는 유가족들에게 이런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1979년 12월, 태닛 레이의 탄원에 따라 카스트로 정부는 레이 소령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반환했다. 레이 소령의 시신은 고향 앨라배마의 군인묘지에 안장됐다. 1999년, CIA는 피그스 만 작전에서 4명의 미국 조종사가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11년, 피그스 만 전투에서 산화한 조종사 14명을 기리는 기념물(Bay of Pigs Air Memorial)이 마이애미 외곽 켄달 비행장에 세워졌다. 당시 이들이 몰았던 폭격기와 같은 B-26도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1941년에 태어난 펠릭스 로드리게스(Félix Rodríguez 1941~)도 피그스 만 침공에 가담했다. 그의 조부는 스페인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 가담해서 쿠바 공화국의 첫 번째 하바나 시장을 지냈고, 그의 부친은 하바나의 부유한 사업가였다. 큰 아버지가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카스트로 공산혁명이 일어나서 그의 부모와 가족은 마이애미로 건너왔다. 고등학교 졸업 1년을 앞둔 그는 마이애미에 와서 가족과 만나고 쿠바를 해방하기 위한 해방군단에 가담해서 쿠바에 상륙했으나 그 작전은 실패하고 그는 간신히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CIA가 모집하는 2506 부대에 가담해서 과테말라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로드리게스는 피그스 만 정찰 팀의 일원으로 2월에 쿠바에 잠입했다. 침공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하바나 주재 베네주엘라 대사관에 5개월 동안 숨어 있다가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그 후 CIA 현장 요원으로 체 게바라를 추적하는 팀을 이끌었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 특수부대를 이끌던 로드리게스는 게바라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볼리비아 사령부는 로드리게스에게 게바라를 사살하라고 지시하고 로드리게스는 볼리비아군 장교에게 게바라를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자신이 재판을 받고 생명을 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게바라는 처형된다는 통보를 듣고 순간 창백해 졌다고 로드리게스는 전했다. 자기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처형한 게바라였지만 자기만은 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 온 로드리게스는 미군에 자원해서 1970~72년 동안 베트남에서 CIA의 특수 작전에 참가했다.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는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트 공산정권에 대항하는 반공 콘트라 반군(叛軍)을 지원하는 CIA 작전을 수행했다. 그 후 그는 은퇴해서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타고난 반공(反共) 전사(戰士 warrior)였다.

2506 부대의 가족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론 1980~90년대에 라틴 리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1957~)을 들 수 있다. 바티스타 정권의 대통령 경호부대에 근무하던 호세 파자르도(Jose Fajardo 1980년 사망)는 카스트로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부인과 어린 딸 글로리아를 데리고 마이애미로 탈출했다. 파자르도는 2506 부대에 가담해서 피그스 만 침공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어 20개월 동안 억류 생활을 했다. 마이애미로 돌아온 그는 미군에 입대해서 부사관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1968년에 귀국한 그는 고엽제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서 오랫동안 앓다가 1980년에 사망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글로리아는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CIA가 주도한 특수작전을 수행했음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일을 해야만 해서 글로리아는 아버지를 돌보아야 했다. 가톨릭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 병간호에 힘들었던 글로리아는 음악을 위안으로 삼았다. 마이애미 대학을 다니던 중 글로리아는 라틴 밴드를 하는 에밀리오 에스테판(Emilio Estefan 1953~)을 성당에서 만났다. 에밀리오도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보트를 타고 쿠바를 탈출해서 마이애미에 정착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결혼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글로리아는 에밀리오의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글로리아가 유명해지자 밴드는 뒤로 빠지고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에스테판 부부는 마이애미에 유명한 레스토랑과 호텔을 갖고 있으며, 글로리아는 모교 마이애미 대학 동문회 이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에는 쿠바계 인구가 250만 명인데, 그 중 70%가 플로리다, 특히 남부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 카스트로 혁명부터 피그스 만 침공 직후에 이르는 5~6년 동안 바티스타 정권 하의 공무원, 군경 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쿠바를 탈출했다. 쿠바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카스트로는 1965~73년간 매주 항공편 10편을 통해 원하는 사람들을 마이애미로 출국시켰고,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정착자금을 지원했다. 이렇게 해서 노인들이 은퇴해서 사는 곳이던 남부 플로리다가 역동적인 성장을 하게 됐다. 오늘날 플로리다는 캘리포니아, 텍사스에 이어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쿠바계는 상원의원 마크 루비오(Mark Rubio 1971~) 등 정치인도 많이 배출했다.

- 사진 (1) Bay of Pigs Air Memorial. 마이애미 근교 켄달 공항. 당시 전사한 미국인 조종사 4명과 쿠바인 조종사 10명 사진, 그리고 B-26 폭격기
- 사진 (2) 로드리게스(왼쪽)와 게바라. 이 사진을 찍고 1시간 후에 게바라는 사살됐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게바라는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사진 (3) 글로리아 에스테판이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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