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네디 암살 60주년

작성일 : 2023-04-24 13:13조회 : 518

케네디 암살 60주년

금년 11월이면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암살된 지 60년이 된다. 지금까지 케네디 암살을 다룬 책이 무려 2000권이 나왔다고 하며, 그 중 의미가 있는 책만 골라도 200~300권이 된다고 하니 자칭 타칭 케네디 암살 연구자가 수백 명은 될 듯하다. 20세기 최고의 미스테리가 케네디 암살인 셈이다.

케네디 암살 50주년이 되던 2013년에는 케네디 암살을 다룬 의미있는 책이 어려 권 나왔지만 60년이 되는 올해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사이에 케네디 암살에 대해 증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암살됐을 당시 사건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 중 젊은 층이 30대였는데, 2013년에 80대이던 그들은 이제는 90살이 넘어서 대부분 사망했다.

지금도 미국인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해보면 케네디 암살에는 음모가 개입되어 있으며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0%나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올리버 스톤이 제작한 영화 <JFK>가 1991년에 나온 후 음모설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었다는 점이다. 영화 <JFK>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미국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로버트 케네디도 자기 형은 반대세력에 의해 죽었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전해진다. 로버트 케네디는 카스트로, 마피아, 그리고 CIA가 형의 죽음에 관련돼 있다고 믿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스 만 작전 실패 후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작전을 지시했다. 몽구스 작전(Operation Mongoose)이라고 지칭한 이 작전은 CIA가 주관했으나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가 직접 책임지고 지휘했다.

피그스 만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물어서 앨런 덜레스 CIA 국장과 리차드 비셀 부국장을 해임한 케네디 대통령이 카스트로를 암살하라고 CIA에 지시하면서 동생인 로버트의 지시를 따르라고 했으니 CIA가 이를 달가워했을 리가 없다. CIA는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해 몇 차례 공작을 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CIA는 카스트로를 제거하는데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마피아에게도 자금을 주어서 카스트로를 제거하도록 했으나 마피아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가 마피아와 팀스터 노조의 불법행위를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케네디를 암살할 동기를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카스트로 배후설이 나온 것은 케네디를 저격한 리 하비 오스월드가 멕시코시티에서 쿠바 대사관과 접촉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CIA는 오스월드의 멕시코시티에서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음에도 케네디 암살 후에 그러한 사실 자체를 은폐했음이 나중에 비밀에서 해제된 문서로 확인됐다. 오스월드의 행적을 제대로 추적했으면 케네디 암살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 문제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은폐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케네디 암살을 두고 이렇게 논란이 많은 것은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워렌 위원회(The Warren Commission)가 성급하고 엉성하게 조사를 매듭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회는 케네디 암살을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대통령이 구성하고 그 결과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존슨 대통령은 당시 대법원장이던 얼 워렌(Earl Warren 1891~1974)에게 위원장을 맡아주기를 부탁했다. 워렌은 대법관이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사양했으나 존슨 대통령을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서 당신이 이 일을 맡아서 의혹을 털지 않으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수천만 명이 죽을 수 있다고 회유하고 협박해서 워렌은 할 수 없이 위원장을 맡았다.

존슨 대통령은 워렌을 위원장으로 하고 상원의원 2명(리차드 러셀, 존 쿠퍼), 하원의원 2명(제럴드 포드, 헤일 보그스), 그리고 CIA 국장을 지내다가 케네디에 의해 해임된 앨런 덜레스, 그리고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존 맥코이를 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 인물들이었다. 조지아 출신인 러셀 상원의원과 루이지애나 출신인 보그스 하원의원은 보수 색채가 강한 막강한 의원이었다. 대통령 암살을 막지 못한 책임이 CIA에 있음에도 피살된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CIA 국장을 위원으로 임명했고, 여기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위원장으로 선임된 얼 워렌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공화당원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이 됐으나 대법원장으로서 그는 흑인 민권과 형사피의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내어 놓아서 공화당 정치인과 남부 정치인들에게는 공적(公敵) 1호가 되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에서 미국의 희망을 보았던 본 워렌은 케네디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워렌은 케네디의 죽음을 철저하게 밝히기 보다는 케네디의 죽음이란 악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워렌은 조사 기한을 6개월로 못 밖아서 조사기한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렇게 해서 1964년 9월 말에 <워렌 보고서>가 나왔다. 결론은 이런 것이었다.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1939~1963)가 우편 판매로 구입한 소총으로 미국 대통령을 죽였고, 댈러스 시내에서 누드 술집을 운영하면서 그 미국 대통령을 좋아했던 재크 루비(Jack Ruby 1911~1967)가 댈러스 경찰국 문 앞에서 오스월드를 죽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독한 또라이(lone nut)’가 대통령을 죽였고, 또 다른 ‘고독한 또라이’가 대통령을 죽인 사람을 죽였으며 더 이상 배후는 없다는 것이었다.

워렌 위원회에서 실제로 조사를 담당하고 보고서를 쓴 스태프 12명은 대부분 30세 전후의 아이비리그 로스쿨을 금방 졸업한 젊은 변호사들이었고, 그 중에는 예일과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되는 존 일리와 로이드 웨인로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CIA와 FBI,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초보 변호사들이었다. 대통령 암살을 조사한다면서 시신 부검 결과와 탄도(彈道) 조사 결과를 검증할 전문가도 없었다. 얼 워렌은 얼른 조사를 끝내고 싶어 했고, 존슨 대통령도 그러했다. 이렇게 해서 워렌 보고서는 숱한 음모론을 자아내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금년 가을까지 케네디 암살을 다룬 책이 또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사진 (1) : 보고서를 존슨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얼 워렌 대법원장(가운데). 존슨 대통령 오른 쪽이 앨런 덜레스. 1964년 9월.
사진 (2) : 케네디 암살 이틀 후 재크 루비에게 사살 당하는 오스월드. 오스월드는 댈러스 경찰국에서 “자기는 희생양(patsy)"이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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