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쿠바 위기와 베트남 전쟁

작성일 : 2023-05-05 20:46조회 : 502

쿠바 위기와 베트남 전쟁

우리가 핵 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니 그렇다면 비확산 조약(NPT)에서 탈퇴하자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30년 전에 포기한 핵 재처리를 다시 하자는 주장도 생뚱맞게 들리는 데 핵 무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반핵 정서가 유난히 거세서 핵 폐기물 처분장도 30년 동안 짓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우리가 미국처럼 핵 탄두에서 나온 핵 물질을 원전 연료로 쓰자고 한다면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핵 무장을 하려면 핵 실험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포괄적 핵실험금지(CNTB)조약에서 탈퇴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

인류가 핵 전쟁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경우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전 미군에 데프콘 III를 발동하고 전략공군사령부는 데프콘 II를 발동했다. 2차 대전 후 미군에 데프콘 II가 발동되기는 이때가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이었다. 케네디는 쿠바에 반입된 소련의 핵 미사일을 철거하라는 최후통첩을 소련에 보내고 쿠바를 해상 봉쇄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핵 전쟁을 각오하고 쿠바에 대한 폭격을 하자고 요구했고,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이들을 달래고 무마하느냐고 혼이 났다. 로버트 케네디가 소련과 막후 협상을 해서 쿠바에 들어와 있는 소련 미사일을 철거하고 미국은 터키에 배치된 핵 미사일을 철거하기로 해서 위기를 넘겼다.

케네디는 임기 초부터 핵 실험 억제를 위한 국제협력을 추구해 왔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케네디는 그 많은 핵 무기가 실전에선 쓸모 없음을 깨달았다. 케네디는 소련에 대해 핵실험 금지 협정을 제안했고 흐르시쵸프는 대기와 수중에서의 실험을 금지하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과 소련은 부분 핵실험 금지(PNTB) 조약에 합의했고 미국 상원이 비준함에 따라 1963년 9월 이 협약은 효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케네디는 암살되고 만다.

아이젠하워가 케네디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었을 때 남베트남에는 미군 고문단이 700명 있었다. 케네디 정부가 들어선 후 3000명으로 늘었고 1963년에는 16,000명에 이르렀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은 남베트남이 공산화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남베트남에 미군을 증파해서 한해 만에 23,000명 규모로 늘어났다.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한 존슨 대통령은 1965년 3월 북베트남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 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을 시작했고, 다낭에는 미 해병대 병력이 상륙했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존슨 대통령과 합동참모본부는 우세한 항공전력으로 북베트남을 쉽게 제압할 줄 알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8년 동안 미군은 핵 전력 증강에 몰두해서 재래식 전력(conventional warfare)이 취약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의 주력은 공군의 F-105 선더치프였다. F-105는 핵 폭탄을 장착하고 공격에 나서도록 고안된 초음속 전폭기였다. 기체가 커서 유연한 기동성이 떨어지는 F-105는 북베트남의 날렵한 구형 미그기에 의해 격추돼서 공군 지휘부를 경악케 했다.

해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군 항모에서 발진하는 A-4 스카이호크는 이미 구형이라서 대공포화에 의해 우수수 떨어졌다. 나중에 상원의원이 되는 존 매케인 대위도 A-4를 몰고 나갔다가 격추돼서 포로 생활을 오래 했다. 최신 기종인 F-4 팬텀은 기관포를 달지 않아서 공중전에 취약했다. 이에 미군은 공중전 학교(Top Gun School)를 세웠고 팬텀기에 기관포를 장착했다.

폭격 임무에 나서는 미군 조종사에게 대공포화와 미그기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SAM)이었다. 미군은 SAM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어떤 계기로 미군 조종사들은 SAM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CIA의 첩보원이 제3국가에서 극비 사항이던 SAM의 제원과 운영 매뉴얼을 훔쳐 낸 것이다. 수많은 미군 조종사들의 생명을 구한 CIA 요원은 조지 클라리스(George Klaris 1922~1995)였다. CIA의 방첩단장을 지내고 은퇴한 그가 사망하자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그를 추모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핵 무장을 떠드는 정치인이 아닌 클라리스 같은 유능한 첩보원이 아닐까.

사진 (1) PNTB 조약에 서명하는 케네디 대통령
사진 (2) 북베트남 영공에 진입하기 전에 공중급유를 받는 F-105 편대
사진 (3) F-105 편대, 북베트남에 폭탄 투하.

이전글두 개의 조국에 봉사한 조종사

다음글1년 안에 핵 무장 ?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