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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 개의 조국에 봉사한 조종사
작성일 : 2023-05-08 00:12조회 : 491
두 개의 조국에 봉사한 조종사
금년 10월이면 4차 중동전쟁(Yom Kippur War)이 일어난 지 50년이 된다.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은 아랍군을 우습게보고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격 가능성을 무시했다. 하지만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동시에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곤경에 빠졌다. 이스라엘 군이 10배나 많은 아랍 지상군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군력이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집트와 시리아는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SAM)을 갖고 있었다.
개전 4일 만에 이스라엘 공군은 F-4 팬텀 14대 등 전투기 49대를 상실했다. 이스라엘 공군 사령부는 출격을 중단했고 이스라엘 탱크 부대는 5~10배나 많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탱크를 공중 지원이 없이 상대해야 했다. 시나이 반도 전선(戰線)이 무너진데 이어서 골란 고원(高原)에서도 전선이 무너지는 등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스라엘 조종사들은 SAM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다. 이 때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군 출신 조종사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미 공군사관학교를 1964년에 졸업하고 F-4 팬텀 조종사가 된 요엘 아로노프(Yoel Aronoff : 미국명 Joel)는 베트남 전쟁에서 200여 회 출격한 베테랑이었다. 유대인인 그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전역을 하고 이스라엘로 이주해서 이스라엘 공군 장교가 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67년 전쟁에서 활약했던 프랑스제 미라지를 퇴역시키고 최신 전폭기인 팬텀을 주력 기종으로 바꾸고 있었기에 팬텀에 익숙한 아로노프는 큰 도움이 됐다.
4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자 아로노프는 이스라엘 조종사들에게 SAM을 회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이들이 다시 자신감을 갖게 했다. 공군 사령부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의 전쟁 지휘부를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침체한 사기를 회복할 계기가 필요했을 뿐더러 이스라엘이 고전(苦戰)하자 요르단이 참전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군이 건재함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10월 9일, 라피도트 소령과 아로노프가 이끄는 이스라엘 팬텀기 8대가 다마스커스로 향했다. 한 대는 엔진 고장으로 돌아가고 7대가 삼엄한 대공방어망을 뚫고 다마스커스의 군 사령부에 폭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팬텀기 한 대가 격추돼서 조종사는 사망했고 항법사는 낙하해서 적진에 떨어졌다. (팬텀은 2명이 탑승한다.) 또 다른 한 대가 피격되어 엔진에 불이 붙자 동료 조종사들은 피격된 조종사에게 탈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실전 경험이 많은 아로노프는 일단 엔진을 끈 후 불이 적게 난 엔진을 다시 가동하라고 서툰 히브리어(語)로 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팬텀기는 한 개 엔진으로 아로노프의 호위를 받아가면서 무사히 본국 기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마스커스 폭격은 이스라엘의 사기를 높여주었고 시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공군이 건재함을 확인한 요르단은 중립을 지켰다. 18일 동안 지속된 전쟁 기간 중 아로노프는 48회 출격을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200여 회 출격한 그는 총 250여 회 실전 출격을 한 셈이다. 4차 중동 전쟁 중 이스라엘은 팬텀 32대 등 전투기 102대를 상실했다. 6대는 공중전에서, 나머지는 SAM과 대공포에 의해 격추됐다. 이집트 등 아랍 공군은 432대를 상실했고 그 중 277대는 공중전에서 상실했다. 공중전에선 이스라엘이 50대 1로 우위를 보인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미 공군 출신인 아로노프의 존재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아로노프는 공군에서 계속 근무한 후 전역했으며 2000년에 예루살렘 포스트가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게재해서 4차 중동전에서의 그의 역할이 알려졌다. 2021년 6월 80세로 사망한 그는 두 번째 조국 이스라엘에 묻혔다. 그와 함께 하늘을 누볐던 동료 조종사들이 참석한 장례식에서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공군 무관은 “아로노프는 이스라엘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웅”이라면서 두 개의 조국에 봉사한 그의 애국심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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