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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골다 메이어와 닉슨
작성일 : 2023-05-10 20:36조회 : 515
골다 메이어와 닉슨
1973년 11월 1일,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Golda Meir 1898~1978) 총리는 백악관을 방문해서 닉슨 대통령과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했다. 메이어 총리는 그해 2월 말~3월 초에도 워싱턴을 방문했었다. 휴전을 한 지 일주일 만에 백악관을 찾은 메이어 총리는 군수물자를 공수해 준 닉슨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시나이 반도에선 이집트 제3군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상태라서 이스라엘의 철군 등 복잡한 문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전쟁을 겪은 메이어 총리는 매우 수척해 보였다.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 군 정보국과 CIA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전쟁을 일으킬 징후가 없다고 보았으나 전쟁 며칠 전부터 전방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10월 6일 오전까지도 이스라엘 지휘부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 다비드 엘라자르(David Elazar 1925~1976) 장군은 10월 6일 새벽부터 당장 예비군을 소집하고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세 다얀(Moshe Dayan 1915~1981) 국방장관은 전쟁은 없다면서 반대했다. 오전 10시 회의까지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자 메이어 총리는 다얀 국방장관 편을 들었다. 오후 2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에서 포성이 울렸다.
메이어 총리는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많은 젊은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 해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근소하게 승리했으나 의회는 전쟁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1974년 4월, 이 위원회는 전쟁을 지휘했던 다비드 엘라자르 총사령관과 군 정보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권고했다. 엘라자르 장군은 즉시 사퇴했다. 부담을 느낀 메이어 총리도 총리직과 의원직을 사퇴했다. 실의에 빠진 엘라자르 장군은 1976년 4월 51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메이어는 회고록을 남기고 1978년 12월 사망했다. 세월이 지나서 욤 키푸르 전쟁을 냉정하게 분석한 연구자들은 엘라자르 장군이 전쟁 전반부에 성급하게 반격에 나서지 않아서 이스라엘이 후반부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닉슨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중수송 작전을 지시했던 1973년 10월은 그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해 5월부터 상원 특별조사위원회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청문을 시작했고 이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7월에는 백악관 집무실에 녹음기가 설치돼 있으며 녹음 테이프가 있음이 알려 졌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고, 백악관은 대통령 특권을 내세우며 테이프 제출을 거부했다. 언론은 연일 워터게이트를 보도했고, 워싱턴 정국은 워터게이트가 완전히 집어 삼킨 양상이었다. 낙담한 닉슨은 서재에 혼자 틀어 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을이 되자 닉슨은 알렉산더 헤이그 비서실장과 키신저 국무장관 외에는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고 저녁이면 스카치 위스키를 혼자 마시고 잠 들곤 했다.
개전 3일 만에 이스라엘 군이 심각한 피해를 입자 이스라엘 지휘부에는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0월 8일, 메이어 총리는 최후의 경우에 대비해서 핵 무기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이 미사일에 핵 탄두를 장착하고 그것이 위성에 의해 포착되자 소련은 정예 공수사단에 출동대기 명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키신저 장관이 밤 늦게 백악관으로 들어갔으나 닉슨은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헤이그 비서실장이 닉슨을 깨울까 하고 키신저에 물었더니 키신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두 사람이 전 미군에 대해 데프콘 III를 발동하고 제82 공수사단에게 대해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 미군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자는 사이에 국무장관과 비서실장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닉슨은 날로 커지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인해 국정을 운영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닉슨이 이스라엘에 지원을 명령한 10월 10일에서 12일 사이에도 엄청난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10월 10일, 부패 혐의로 연방검사의 수사를 받아오던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사임했다. 10월 12일, 닉슨은 하원 원내대표인 제럴드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의회에 통보했다. 민주당은 닉슨이 몇 달 내로 물러나고 포드가 대통령직을 이어 갈 것이며,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무색무취한 포드를 상대로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10월 12일은 연방항소법원이 대통령은 테이프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이 없다고 판결한 날이기도 했다. 언론은 닉슨이 이미 끝났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가 닉슨에 대해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자 10월 20일 닉슨은 콕스를 파면하라고 법무장관에게 지시했고 이에 불응하는 법무장관과 차관이 사임하고 콕스가 결국 파면되는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 발생했다. 언론은 1면 기사로 대서특필(大書特筆)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닉슨에 대한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하는 등 백악관은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워터게이트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닉슨이 이스라엘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따라서 닉슨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하는 해석이 있다. 닉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 한나(Hanna Milhouse Nixon 1885~1967) 여사다. 한나 여사는 평생 일밖에 모르는 남편 사이에 아들 다섯을 두었으나 어린 넷째와 큰 아들을 결핵에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게 된다. 그랬기에 한나 여사는 총명하고 근면한 둘째 아들 리차드 닉슨에 큰 기대를 걸었다.
독실한 퀘이커 신자로서 박해 당하는 유대인에 대해 동정심이 많았던 한나 여사는 자라나는 닉슨에게 “언젠가는 네가 유대인을 도울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10월 9일, 골다 메이어 총리의 전화를 받은 닉슨은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이어 총리의 목소리가 마치 어머니의 음성처럼 느껴졌고, 닉슨은 자기가 유대인을 도울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닉슨은 이듬해(1974년) 6월, 열흘 동안 이집트, 사우디, 시리아를 거쳐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포르투갈영(領) 아조레스 군도를 방문하게 된다. 닉슨은 6월 16~17일간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이자크 라빈 총리와 골다 메이어 등을 만난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닉슨을 이스라엘 국민들은 따듯하게 맞았다. 닉슨은 6월 27일부터 7월 3일간 소련을 방문해서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닉슨은 자기가 머지않아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될 것을 예감하고 마지막으로 중동과 소련을 방문한 것이다.
1974년 8월 9일 아침, 닉슨은 백악관 직원들 앞에서 고별연설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헬기에 올랐다. 고별사의 마지막은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었다. “Nobody will ever write a book, probably, about my mother. - - - Yes, she will have no books written about her. But she was a saint." 닉슨에게 어머니는 영원한 ‘성자(saint)’였다. 닉슨은 성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결심했을까 ??
사진 (1) : 골다 메이어 총리와 닉슨 대통령. 백악관 앞. 1973년 11월 1일
사진 (2) : 시나이 반도 전선을 시찰하는 엘라자르 총사령관 (가운데).
사진 (3) : 닉슨과 어머니 한나 여사. 닉슨이 하원의원 선거에 나서던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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