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리 메이어 살인 사건 (2)

작성일 : 2023-05-13 18:07조회 : 480

매리 메이어 살인 사건 (2)

워싱턴 DC의 조지타운을 관통해서 흐르는 체사비크-오하이오 운하(C&O Canal)는 운하로서의 용도는 오래 전에 사라졌으나 경치가 좋고 한적해서 주민들이 물길 옆 도로를 산책하고 조깅하는 명소였다. 1964년 10월 12일, 조지타운에 사는 매리 핀초 메이어(Mary Pincho Meyer 1920~1964. 10. 12)는 평소 습관대로 점심 후에 산책을 하고 있었다. 12시 30분,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치기 위해 출동한 자동차 수리공 헨리 위긴스는 멀리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이어서 총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골프 모자를 쓰고 베이지 재킷을 입은 키가 큰 흑인이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보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가 경찰에 신고해서 부근을 순찰 중이던 경관 두 명이 도착해서 함께 현장에 갔더니 우아한 모습의 여성이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경찰관들은 다른 순찰차에 연락해서 주변을 훑었고 지나가던 흑인 남성 레이 크럼프를 체포했다. 크럼프는 몸이 물에 젖어 있었고 재킷을 입지 않고 있었다. 피살된 여성은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아서 경찰은 신원을 몰랐다. 매리는 저항을 한 흔적을 보였고 머리와 심장에 두 방을 맞아서 즉사했다. 강도가 우발적으로 총을 쐈다기보다는 전문적인 킬러의 수법으로 보였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들은 범행에 쓰인 총기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은 잠수부를 동원해서 운하 물속을 수색했으나 총기는 찾지 못하고 크럼프의 재킷을 발견했다. 크럼프는 물길 옆에서 자고 있다가 물에 빠져서 몸이 젖었다고 진술했다. (크럼프는 유부녀인 여자 친구와 숲속에서 섹스를 하고 물길 옆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나던 중 중심을 잃고 물에 빠졌음이 나중에 확인됐다.)

경찰은 크럼프가 강도를 하다가 저항하는 매리를 살해했다고 보고 그를 체포했고 검사는 그를 살인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살인무기인 권총을 찾지 못했고 매리의 소지품은 그대로 있어서 강도로 보기에는 애매했다. 크럼프의 몸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았으나 검사는 목격자의 진술과 정황만 갖고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다행히 크럼프는 흑인 여성 변호사 도비 라운드트리(Dovey J. Roundtree 1914~2018)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라운드트리는 당시 몇 명이 되지 않았던 여성 흑인 변호사였다.

크럼프에 대한 재판이 열릴 때 국방부에서 일한다는 육군 중위 윌리엄 미첼이 자기가 점심을 먹고 그곳을 조깅하면서 크럼프와 비슷한 흑인이 성급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미첼의 증언은 검찰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나 라운드트리 변호사는 현장을 멀리서 목격한 위긴스는 키가 큰 흑인을 보았다고 했으나 크럼프는 키가 작았다는 등 모순된 점을 제기했다. 크럼프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지만 총을 소지해 본 적도 없고 쏴 본 적도 없음이 입증돼서 배심은 결국 그에 대해 무죄를 평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재판 결과를 보도하면서 살인자가 법망을 피해 갔다고 썼다. 당시는 매리가 케네디 대통령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아서 40대의 우아한 백인 여성이 산책 도중에 총에 맞고 죽었는데, 범인으로 체포된 흑인이 증거부족으로 무죄판결을 받아서 미궁(迷宮)에 빠져 버린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1976년 3월, 내셔널 인콰이어지(誌)가 매리와 케네디가 깊은 내연 관계라고 보도함에 따라 케네디가 암살당한 후 1년 만에 그의 연인도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매리 메이어 가족과 잘 알았던 피터 재니(Peter Janney 1947~)는 이 사건에 의문을 갖고 탐구를 하기 시작했다. 매리의 전 남편 코드 메이어(Cord Meyer 1920~2001)의 CIA 동료이자 피터의 아버지인 위스타 재니(Wistar Janney 1919~1979)는 1979년 1월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피터 재니는 재판에서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한 윌리엄 미첼 중위에 주목했다. 그는 정보자유화법 등 온갖 절차를 통해 당시 국방부(펜타곤)에서 일했다는 윌리엄 미첼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당시 육군 장교 명단이나 군사원호처 명단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도 펜타곤에 근무하는 초급 장교가 점심시간에 조지타운에 와서 조깅을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지만 크럼프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사도 그의 신빙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피터 재니는 윌리엄 미첼이 그 시절에 남긴 주소를 한 군데 찾았는데 놀랍게도 알링턴에 있던 CIA의 안가(安家 safe house)였다. 재니는 그 시절에 대학을 나오고 ROTC 임관을 한 사람을 찾아서 결국 미첼이 코넬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재학 중 ROTC를 했으나 그 후 연락이 완전히 끊겼으며, 다만 1982년에 고등학교 졸업 25주년 때 자신이 버지니아에 있던 육군 수송기지에 근무했다고 모교에 자신의 소식을 전한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윌리엄 미첼은 그야말로 ‘유령’이었다.

1995년, 벤 브래들리는 성공적인 언론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 <A Good Life>를 펴냈다. 거기에는 자신의 처형(妻兄)이었던 매리가 죽던 날에 관한 부분이 있었다. 브래들리는 266쪽에 이렇게 썼다. “나의 친구 위스타 제니가 전화를 해서 라디오를 들었냐고 물었다. 그 때는 점심 후였고, 나는 라디오를 듣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매리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몰랐다. 그는 물길 산책로에서 누가 죽었는데, 라디오에 의하면 매리 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브래들리는 위스타 재니의 전화를 받은 시간이 2시 30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위스타 재니가 CIA 고위 간부임을 책에서 밝히지는 않았다. 그는 CIA 같은 거악(巨惡)과 싸워온 언론인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위스타 재니 같은 CIA 간부가 자신의 친구임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을 위스타 재니의 아들 피터가 읽고 전율한 것이다.

매리가 죽던 날 워싱턴 DC 검시관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고 2시 5분에 피해자가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경찰은 아직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2시 30분에 위스타 재니는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매리가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날 매리의 전 남편 코드 메이어는 뉴욕에 출장을 가 있었다. 1980년, CIA를 퇴직한 코드 메이어는 회고록 <Facing Reality>를 펴냈다. 이 책에서 코드 메이어는 매리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나는 뉴욕에 있었는데, 친구 위스타 재니가 그날 오후에 전화를 했다. 매리가 그날 포토막 강과 이어지는 물길 산책로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에 의해 살해됐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래서 급히 워싱턴으로 향했다.” 코드 메이어의 책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벤 브래들리의 책 때문에 함께 이 부분이 함께 주목을 받게 됐다.

피살자가 매리임으로 밝혀진 시점은 그날 6시였다. 경찰관이 수소문 끝에 벤 브래들리를 찾아와서 함께 경찰국 안치소에 도착해서 매리의 시신을 브래들리가 확인한 시각은 오후 6시였다. 피터 재니는 당시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집에 없었다. 피터는 당시 14살이던 동생 크리스토퍼에게 그 날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았다. 크리스토퍼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으나 매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고, 저녁 8시 경 경찰이 매리의 전 남편 코드 메이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직장 동료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매리가 죽었음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아버지가 그 전화를 받은 후 어머니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분명하게 기억을 해냈다. 따라서 코드 메이어와 벤 브래들리에게 2시 30분에 매리가 죽었다고 전화를 했던 위스타 재니는 매리와도 잘 아는 자신의 부인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가 저녁 8시에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매리의 죽음을 부인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날 밤 위스타 재니는 워싱턴 공황에 도착한 코드 메이어를 마중하러 나갔다.

그 날 밤 늦게 벤 브래들리는 부인과 함께 매리의 집을 가보았더니 CIA 방첩단장인 제임스 앵글턴이 부인과 함께 와 있었다. 브래들리는 처형의 집이기 때문에 열쇠를 갖고 있었느나 제임스 양글턴은 CIA 간부답게 자물쇠를 여는 간단한 도구로 문을 열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이 찾은 것은 매리의 일기장이었다. 그 일기장은 앵글턴이 가져가서 태워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앵클턴이 CIA에서 해임된 후에 많은 비밀자료들과 함께 갖고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계속)

사진 (1) 매리 메이어 살인 현장 사진.
사진 (2) 범인으로 몰린 레이 크럼프(오른쪽 위)와 그를 변호해서 무죄를 받아낸 도비 라운드트리 변호사(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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