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 권한을 국회로 ?

작성일 : 2023-05-20 10:33조회 : 593

대통령 권한을 국회로 ?

오늘자(5월 20일) 중앙일보에 안철수 의원이 “현재의 대통령제는 수명이 다했다.”면서 “나는 줄곧 개헌론자로 살아왔다”고 주장한 기사가 났다. (친윤-비윤 쪼갤 또 하나의 '도끼'…안철수, 이래서 개헌 꺼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3856
그러면서 안철수는 “미국 대통령이 행정 권력만 가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행정권·입법권·예산권·인사권·감사권 등 총 5개의 절대 권력을 가진다”며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으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런 개헌론이 친윤과 비윤을 가를 수 있다고 했다. 안철수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는 정치부 기자나 논설위원은 ‘바보’가 되기 쉬운데, 이 기사도 그러하다.

20대 국회 중인 2016년 가을에서 2017년 초에 개헌논의가 활발했는데, 내가 속한 국민의당도 당론으로 변형된 의원내각제인 분권형 정부 개헌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당 대선 주자였던 안철수 의원이 이것을 틀어 버려서 기껏 만든 국민의당 개헌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탄핵으로 대선이 앞당겨지자 당시 민주당에선 개헌특위 위원을 친문의원으로 교체해서 개헌 논의를 사실상 중단시켜 버렸고, 개헌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서 대통령제를 폐기하는 개헌에 반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와서 안철수가 대통령제가 수명이 다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말하고 얼마 후에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성공시키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안철수가 “미국 대통령이 행정 권력만 가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행정권·입법권·예산권·인사권·감사권 등 총 5개의 절대 권력을 가진다”고 쓴 것은 박명림 교수가 10 여 년 동안 주장해 온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은 인사권, 예산권, 정책결정권, 법률안제출권과 개헌안 제출안까지 대통령이 갖는 유일한 나라"라며 "소극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가 5개 권력 중 2개 권력이라도 갖고 와야 한다"고 했고(머니투데이 2020 5 21),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개헌발의권, 법률안제출권, 예산권, 감사권, 인사권, 집행권 등 6개 권한을 다 갖는 대통령은 없다”고 주장해 왔고(한겨레 2018 3. 27) 여러 회의석상에서도 그런 주장을 해 왔다. 그러면, 이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까 ?

안철수가 “미국 대통령이 행정 권력만 가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행정권·입법권·예산권·인사권·감사권 등 총 5개의 절대 권력을 가진다”고 한데다가 박명림 교수는 개헌안 제출권을 더해서 6개 권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개헌을 해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개헌안 제출권, 법률안제출권, 감사권, 예산권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여러 군데에서 주장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개헌안 제출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1972년 유신헌법에 들어간 조항이다. 1987년 개헌을 할 때 헌법 교수들은 이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조교수이던 나는 당시 그 과정을 잘 안다.) 무슨 이유인지 그 조항은 삭제되지 못했는데, 국회가 2/3로 의결해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황당한 대통령은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그 유신 잔재(殘滓) 조항에 근거해서 뜬금없이 개헌안을 제출해서 국회에 회부했다. 잘 알다시피 야당은 그 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폐기했다. 나도 그런 것을 읽을 필요도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개헌안 제출권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헌법은 3공화국부터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을 인정했다. 당시는 국회가 법률안을 스스로 만들 실력이 부족했다. 3공화국 시절에는 국회의원이 장관을 상대로 “(어떤) 법률을 개정할 의향이 있는가?”하고 질의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 지금 국회에 제출되고 또 국회를 통과하는 법률안은 거의 전부가 의원입법이다. 20대 국회에서 정부 법률안이 통과된 경우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어떤 국제협약에 우리가 가입해서 그것을 시행하기 위한 법률 정도가 정부 제출법안이었다. 그런 법안은 국회의원 실력으론 택도 없기 때문에 정부 부처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해서 제출하는 것이다.

정부 제출법안은 부처간 협의, 공청회,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그리고 국무회의를 거치기 때문에 절차도 어렵고 따라서 완성도가 높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법 등 모든 법률을 의원입법으로 처리한 것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공수처법, 검수완박법 등 그들이 말하는 개혁입법이 모두 의원입법이었다. 그 외에도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률안은 법률이 되어서는 안 되는 황당한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우리나라는 ‘의원입법 망국론’이 나올 판국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을 주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은 입법에 손을 놓고 있는가 ? 미국도 중요한 법률은 백악관 또는 정부 부처가 만들어서 여당 의원 명의로 제출할 뿐이다. 미국에선 순수한 의원입법은 드물다. 의원 입법은 수정안이나 부수법안으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고. 20년 정도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을 지낸 관록이 있는 유명한 의원이라야 자기 이름을 붙일 만한 법률안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초선의원이 국회에 들어오고 한 달도 안 되서 법률안을 만들었다고 언론에 홍보한다. 그런 의원이나 그런 것으로 기사로 쓰는 기자나 똑같다.

대통령이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박명림 교수가 간과한 것이 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집권 여당이 180석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선진화법에 의해 대통령이 여당과 함께 입법권을 휘두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2020년 총선 때 황교안 대표 덕분에 민주당이 180석을 넘기는 대승(大勝)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들이 제멋대로 통과시킨 부동산법, 세법 덕분에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검수완박법 등 법률안을 계속 통과시키고 있다.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이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 입법권 남용이 문제인 것이다.

예산권도 마찬가지다. 미국 헌법은 예산권을 하원에 주고 있다. 하지만 정부 예산은 정부가 짜는 것이고 그것을 여당을 통해 하원으로 보내서 처리하는 것이다. 미국 건국 초에 예산을 주물렀던 유명한 재무장관은 알렉산더 해밀튼과 앨버트 캘러틴이다. 워싱턴의 재무장관이던 해밀튼은 확장예산을 수립했고, 제퍼슨의 재무장관이던 캘러틴은 균형예산을 수립했다. (미국 재무부의 정문과 후문에는 두 사람의 동상이 서있다.) 1921년 의회는 ‘The Budget and Accounting Act'를 제정해서 재무부에 예산국을 두어 대통령이 예산 프로세스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닉슨 대통령은 예산국에 관리 기능을 추가해서 대통령 직속 관리예산실(OMB)로 확대시켰다. 직원이 거의 500명이나 되는 OMB는 예산안을 작성해서 의회와 긴밀하게 의논하고 하원은 그것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킨다. OMB는 매우 중요한 정부 기관으로, 닉슨이 남긴 업적 중의 하나다. 따라서 미국은 하원이 예산안을 작성한다는 주장은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미국도 하원에서 심의를 하는 동안 유력한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은 우리나라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할 것이 없다. 예산편성권을 완전히 국회에 주면 어떤 꼴이 될지는 생각해 보기 바란다. 툭하면 제도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정치인이나 교수, 또는 언론인을 종종 보게 되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현실은 물론이고 제도도 잘 모른다. 즉, 모르면서 말하고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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