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루스 페인과 오스월드

작성일 : 2023-06-25 19:26조회 : 413

루스 페인과 오스월드

소련 생활에 환멸을 느낀 오스월드가 1962년 6월에 아내 마리나 및 어린 딸과 함께 그의 어머니가 살던 텍사스 포트워스에 도착했을 때부터 오스월드를 도운 사람은 조지 드 모렌쉴트(George de Mohrenschildt 1911~1977)였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1938년에 미국으로 건너온 드 모렌쉴트는 석유사업을 했으며 댈러스-포트워스 지역의 러시아계 미국인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드 모렌쉴트는 오스월드가 정착할 수 있게 아파트를 구해주고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러시아계 모임에 오스월드 부부를 초대해 주었다. 하지만 러시아계 미국인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보수적 성향이어서 오스월드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1963년 2월에 있었던 작은 모임에서 드 모렌쉴트 부부는 오스월드 부부를 러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루스 페인(Ruth Paine 1932~)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오스월드 부부는 루스 페인을 알게 됐다. 3월 들어서 오스월드는 권총과 카케노 소총을 구매하고 총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스월드 부부는 그 사진 한 장에 사인을 해서 드 모렌쉴트에게 주었다. 그 해 5월 드 모렌쉴트는 사업차 아이티로 떠나서 그 후 오스월드를 만나지 못했다. 케네디가 암살되자 드 모렌쉴트는 워렌위원회에 출두해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위원회는 드 모렌쉴트가 암살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나중에 드 모렌쉴트는 동유럽 관련해서 CIA에 정보를 제공했던 CIA 자산(asset)임이 확인됐다. 1977년 3월, 그는 하원 암살조사위원회의 출두를 앞두고 총으로 자살했다.

동북부 출신인 루스 페인은 독실한 퀘이커 신자이며 대학을 나오고 미국민권협회(ACLU)에 가입할 정도로 진보적인 평화주의자였다. 루스는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핵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미국인이 소련인과 펜팔을 해야 한다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1959년에 남편 마이클 페인을 만나 결혼한 후 남편 직장인 벨 헬리콥터 회사가 있는 댈러스로 이사를 와서 댈러스 근교의 어빙에 집을 샀다. 부부는 두 아이를 두었으나 별거를 하게 돼서 루스는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어빙에 있는 집에 혼자 살게 됐다. 바로 이 시점에 루스는 오스월드 부부를 만났고 루스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마리나와 러시아어로 대화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다. 루스는 마리나와 대화하면서 러시아 회화 실력을 늘리고자 했다. 사회생활이 없는 마리나에게 루스는 유일한 대화 상대방이었다. 이 때 마리나는 오스월드의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1963년 4월 24일, 오스월드는 별안간 뉴올리언스로 간다면서 자기가 도착하면 아이를 데리고 뉴올리언스로 오라고 했다. 5월 들어서 마리나는 아이와 짐 가방을 들고 버스로 뉴올리언스로 출발하려고 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마리나가 아파트를 정리하고 출발하는 것을 도와주던 루스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동차(웨곤형 승용차)로 뉴올리언스에 데려다 주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루스는 자기의 두 아이, 그리고 마리나와 딸을 태우고 오스월드의 옷 가방과 더플 백(카케노 소총이 들어 있었다)을 짐칸에 실고 뉴올리언스까지 운전을 해서 오스월드와 합류하게 해주었다. 마리아와 어린 딸은 5월 11일에 뉴올리언스에 도착해서 오스월드가 이틀 전에 구한 월 65달러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뉴올리언스에서의 오스월드의 활동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뉴올리언스에서의 활동과 그 기간 중 생활비와 아파트 임대료 출처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 해 9월 들어서 오스월드는 다시 댈러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오스월드는 마리나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고 자기는 며칠 더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그 때 루스 페인은 아이들과 함께 자동차로 동북부에 있는 친지를 방문하고 있었다. 루스 페인은 마리아로부터 뉴올리언스 생활을 마치고 댈러스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9월 23일에 뉴올리언스에 도착해서 마리나와 딸을 태우고 댈러스로 돌아왔다. 댈러스로 돌아 온 마리나는 당장 묵을 곳이 없었다. 루스는 마리나가 자기 집에 머물도록 했다.

오스월드는 마리나에게 자기는 볼 일을 보고 이틀 후에 버스로 댈러스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스월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스월드는 쿠바로 가고 싶었다. 마리나가 루스 페인의 자동차 편으로 떠난 다음 날 오스월드는 버스 편으로 텍사스 라데도로 향하고 거기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오스월드는 나흘 동안 머물면서 쿠바 대사관과 소련 대사관을 방문해서 비자를 얻으려 했다. 비자를 얻기에 실패한 오스월드는 다시 버스편으로 10월 3일에 댈러스에 도착해서 정류장 근처의 YMCA 호텔에 묵는다. 멕시코시티에서의 오스월드의 행적은 아직까지도 많은 의혹에 쌓여 있다.

오스월드가 댈러스에 도착하자 오스월드에게 일자리가 필요함을 잘 아는 루스 페인은 이웃사람들과 커피 타임을 하면서 댈러스 시내에 있는 교과서 보관소가 사람을 뽑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루스로부터 교과서 보관소에서 일을 하겠냐는 말을 들은 오스월드는 그러겠다고 하고 교과서 보관소를 찾아갔다. 책을 좋아하는 오스월드는 책을 다루는 곳에서 일하게 됐다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오스월드는 10월 14일부터 최저임금인 시간당 1.25 달러 급여로 교과서 보관소에서 일을 하게 됐다.

오스월드는 교과서 보관소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의 방을 빌려서 10월 14일부터 일주일에 8달러를 내고 그곳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오스월드는 그 집에 리(Lee)라는 가명으로 등록을 했다. 그 집에 역시 방을 빌려서 살았던 사람은 오스월드가 집 건너편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많이 했다고 나중에 진술했다. 오스월드는 평일에 마리나에게 거의 전화를 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에 루스 페인의 집 근처에 사는 교과서 보관소 동료직원이 자동차로 오스월드를 루스의 집까지 태워주고 오스월드는 주말을 마리나와 딸과 함께 지냈다. 루스 페인의 집에서 마리나는 둘째 딸을 출산했다. 루스는 무일푼이었던 마리나가 아이를 낳는 과정을 도와주었다.

11월 21일 목요일, 오스월드는 동료 직원의 자동차로 루스 페인의 집에 와서 마리나 및 두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스월드는 금요일 저녁에 왔기 때문에 루스는 왜 목요일 저녁에 왔나 하고 의아해 했다. 다음날 22일 아침 일찍 일어난 오스월드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혼자 커피를 끓여 마시고 가지고 있던 돈 175달러와 결혼 반지를 남겨 놓고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차고에 가서 담요로 말아 두었던 카케노 소총을 누런 포장지로 둘둘 말아서 갖고 나왔다. 부근에 사는 동료직원 자동차가 도착하자 오스월드는 포장지에 들어 있는 총을 뒷좌석에 두었다.

교과서 보관소에 도착한 오스월드는 포장지로 싼 물건이 무엇이냐고 묻는 직원에게 욕실 커튼 대라고 말하고 6층으로 올라가서 총을 숨겨 놓았다. 점심 시간에 다른 직원들은 케네디 모터케이드를 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으나 오스월드는 6층으로 올라갔다. 12시 30분 케네디가 탄 오픈카가 교과서 보관소 건물 앞을 지나가자 오스월드는 방아쇠를 당겼다. 오스월드는 카케노 소총을 박스 뒤편에 놓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서 경찰관을 만났으나 동료 직원이 교과서 보관소 직원이라고 이야기해주어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오스월드는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빌린 방이 있는 집으로 와서 재킷과 권총을 갖고 나왔다. 그 때 집을 지키던 주인 여자가 TV를 보면서 케네디 저격을 이야기했으나 오스월드는 모른 척하고 집을 나왔다. 잠시 후 댈러스 경찰관 티핏이 순찰차를 타고 다가와서 오스월드를 검문하려고 하자 오스월드는 티핏 경관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급하게 도망쳤다. 이 장면은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오스월드가 입장료를 내지 않고 극장으로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들이 도착해서 오스월드를 검거했다.

이처럼 루스 페인이 오스월드를 교과서 보관소에서 일하도록 해 준 것은 케네디 암살을 초래한 직접적 계기였다. 이 때문에 루스 페인은 경찰과 FBI는 물론이고 워렌위원회와 하원 암살조사위원회에서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다. 그녀는 2013년 케네디 암살 50주년에 이르는 동안 수천 차례에 걸쳐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의했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CIA 첩보원으로 암살을 공모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루스는 자기가 단지 선의로서 마리나와 오스월드를 도왔다고 50년 동안 일관성 있게 진술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예수님의 철학을 실천한 독실한 퀘이커 신자가 결국 케네디 암살을 초래한 것인가 ?

사진 (1) : 1963년 11월 23일, 케네디 암살 다음날, 소식을 듣고 루스 페인의 집으로 찾아온 오스월드의 어머니 마그리타가 생후 두 달이 안 된 작은 딸을 안고 있고 마리나는 무엇인가 짐을 싸고 있고 옆에 영문을 모르는 큰 딸이 있다. 루스 페인은 황망한 듯 밖을 보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보도진이 몰려오고 또 마리나의 신변이 불안해 지자 FBI는 그 다음 날 마리나와 두 아이를 모텔로 거처를 옮기고 24시간 경비를 했다.
사진 (2) : 루스 페인과 그녀의 아들. 마리나를 뉴올리언스까지 태워주고 또 데려온 자동차가 옆에 있다. 이 자동차는 어느 콜렉터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 (3) : 루스 페인의 집. 오스월드가 케네디를 암살하기 전날 묵었던 역사적 장소로 어빙시가 구입해서 기념관으로 보존해 오고 있다. 어빙이란 작은 베트타운의 명소(名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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