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맨해튼과 홍콩

작성일 : 2023-08-13 23:28조회 : 412

맨해튼과 홍콩

뉴욕 맨해튼 남쪽 끝에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라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은 1970년대에 매립으로 넓어 진 곳이다. 9.11 테러로 이제는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등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 땅을 깊이 파는 과정에서 나온 토석을 인근 바닷가에 퍼부어서 매립지를 만들었고 그 위에 고급 아파트와 빌딩, 그리고 공원이 들어섰다. 맨해튼은 땅 값이 워낙 비싸니까 이런 사업이 사업성을 갖는다. 당시 뉴욕 주지사이던 넬슨 록펠러가 기획해서 이룩한 매우 성공적인 사업이다.

땅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홍콩 아일랜드의 북쪽에 'harbour road'라는 도로가 있다. 문자 그대로 해안도로였는데, 오랜 세월을 두고 바다 쪽으로 매립을 해나가서 바다 쪽에도 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홍콩 컨벤션 센터는 이렇게 매립된 바닷가에 있다. 매립은 돈이 많이 들어가고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은 토목사업이라서 뉴욕시나 홍콩처럼 땅이 매우 귀한 곳에서 해야 타당성을 갖는다.

매립(landfill)은 간척과 구별되어야 한다. 간척(干拓 Reclamation)은 쓸모없는 땅을 쓸 수 있는 땅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이 부족한 미국 서부에 물을 공급해서 농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간척이다. 20세기 초 내무부 산하에 생긴 간척국(Bureau of Reclamation)은 댐과 도수로를 만들어서 관개농업을 일으켰다. 후버댐 등 서부에 있는 초대형 댐은 대부분 간척국이 건설했다. 새만금은 간척이 아니다.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서 ‘쓸모있는 바다와 갯벌’을 ‘쓸모없는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식량이 부족하고 인구는 많았던 네덜란드는 방조제를 쌓고 해수면 아래 땅을 염분을 빼서 농토로 만들었는데, 이 역시 간척이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거센 해일로 방조제가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고 해수면 상승으로 간척 농지는 매우 위태롭다. 해수면 보다 아래에 있는 간척 농지는 방조제를 허물면 원상태로 바다가 된다. 하지만 새만금 같은 매립지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바다를 토석으로 메워서 농지를 만든다는 발상은 1950년대에서 그쳐야 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농지를 만들기 위해 현대건설은 서산에서, 그리고 정부는 새만금에서 매립을 했다. 바다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육지 중심의 어리석은 바보짓이었다. 바다를 매립하기 위해선 많은 토석(土石)이 필요하다. 새만금의 그 넓은 땅을 채운 토석이 어디서 나왔을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야산과 섬을 부셔서 거기서 나온 토석을 갯벌 바다에 퍼부어서 농지를 만든 것이다. 그런 매립농지가 경제성을 평가 받은 적이 있다. 1997년 경제위기 후 국내 증시가 개방되자 외국 투자회사들이 국내 기업들을 평가했는데, 이들이 현대건설이 서산매립지를 황당하게 과대평가해서 갖고 있다고 평가하자 현대건설주가 폭락을 했다.

새만금 사업은 인공호수의 오염 문제 등으로 김영삼 정권 시절에 큰 문제가 됐다. 당시는 쌀 생산이 수요를 초과했고 농산물 무역 자유화를 추구하는 세계무역기구가 생긴 후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 수입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던 대선 공약을 철회해야만 했다. 쌀이 넘쳐 흘러나는 시대가 됐으니 매립지 농지로서 새만금은 용도와 가치를 잃어버렸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새만금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종교계에선 새만금까지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했다. 같은 시기에 동강에 세우려던 댐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 새만금 문제, 그리고 동강댐 문제를 임기 중 해결하지 못했다. 아들 현철씨 사건과 한보 및 기아 사태로 인해 김 대통령은 국정 능력을 상실했고 이 골치 아픈 문제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넘어 갔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넘긴 김대중 정부는 동강댐 계획은 백지화하고 새만금 사업은 규모를 축소하고 수질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 대통령으로선 힘든 결정을 한 셈이다.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는 노무현 정권 들어서 겨우 중·저준위 처분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 후 정권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문제를 들여다보지도 않아서 오늘날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고 허풍을 떨어서 공연히 헛된 기대만 키우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매립을 유용하게 한 곳이 있다. 한강변에 서있는 아파트 단지들이다. 연탄재가 쓰레기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시절에 서울시는 연탄재를 한강변에 매립하고 그 위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그 아파트 단지들은 지금 최고급 주택지가 됐다. 버릴 곳이 없었던 연탄재를 매립해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발상은 관료의 머리에서 나왔다. 쌀이 남아돌아가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1990년대에 새만금을 만든 발상은 정치인들한테서 나왔다. 카지노니 공항이니 하는 이야기도 모두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번에 그 허망한 정치논리가 끝난다면 잼버리 대회는 큰일을 한 셈이다.

사진 (1) 맨해튼 배터리 파크 시티
사진 (2) 홍콩 컨벤션 센터 등 매립지 위에 들어선 빌딩들.

이전글매립지의 ‘저주’

다음글새만금과 루이지애나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