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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종철 지음, <야만의 시간>
작성일 : 2023-08-18 20:34조회 : 400
김종철 지음, <야만의 시간>
김종철 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가 그간 힘들여 준비해온 책, <야만의 시간>이 드디어 나왔다. 도대체 한통련(한민통)이란 단체가 어떻게 이적단체가 됐나를 파헤친 의미있는 저술이다. 이미 여러 신문에 서평이 나와서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그것을 찾아보면 된다. 내가 특히 관심이 있는 이유는 1970년대에 서울대를 다녔던 재일교포 학생들과 관련해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초에 서울대에는 재일교포 학생이 꽤 다녔다. 1970년 입학인 우리 법대 동기에도 한 명이 있었던 것 같으나 우리 클라스는 아니었다. 이들은 당시 특례입학 같은 것으로 서울대를 다녔다고 생각된다.
우리 클라스는 1학년 때 필수과목이던 정치학을 김인순이라는 재일교포 학자한테 배웠다. 도쿄대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가던 분으로 기억된다. 한국어 발음이 약간은 어색했으나 가급적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선생님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 후 일본에서 교수 생활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2학년이 돼서 드디어 동숭동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1971년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교련 시간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고, 4월에는 대선, 5월에는 총선이 있었다. 대법원이 국가배상법 2중배상 금지조항을 위헌으로 판시하는 등 큰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서승-서준식 재일교포 형제 간첩사건’도 그해에 일어났다. 형제가 평양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서준식은 서울법대 68학번으로 나 보다는 2년 위로 당시 4학년이어서 우리는 알지를 못했다. 우리는 놀라기도 했지만 반신반의(半信半疑)하기도 했다.
그런데, 1977년에 서울법대생이던 김정사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결국 기소돼서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은 사건이 있었음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가 확정됐지만 부친이 민단과 가까운 시업가라서 김정사는 구속 2년 4개월 만에 석방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김정사를 기소하면서 작성한 공소장에 김정사가 북괴의 지령에 의해 조직된 반국가단체인 한통련의 간부 겸 대남공작원인 임계성의 강연을 듣고 교류 했다는 구절이 들어갔고, 그것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여서 한통련이 이적단체가 됐다는 것이다. (김정서가 간첩이 된 경위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 부분은 책을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저자는 문제의 이 구절은 당시 검찰의 공안검사가 만들어 낸 것이라기보다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서 검찰에 내려 보낸 것으로 본다.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김기춘이기 때문에 한통련을 이적단체로 만든 장본인이 김기춘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책은 12.12 후 DJ가 내란음모 사건으로 기소되는 배경에도 이적단체 한통련과의 관련이 비중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DJ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한 사정을 풀어 쓰고 있다.
1970년대에 이런 일이 일어난 배경은 지금도 궁금하다. 왜 박정희 정부는 재일교포 학생을 특례입학이란 혜택을 주어가면서 고국으로 불러왔을까 ? 당시는 회색지대와 같았던 재일교포를 우리 쪽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한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보기 위해 어렵게 단수여권을 얻어 출국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앙정보부는 한복, 특히 검은색/흰색 한복 입은 여자와는 절대로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안보교육을 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재일교포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에피소드라고 하겠다.
그 시절 자기 자식을 우리나라 대학에 보내는 재일교포 부모는 물론이고 학생 본인들도 이 같은 한국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너무 순진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자기들은 재일교포이기 때문에 남북한 대치상황에 대해서 중립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해였다. 책에는 김정사 사건 등 그 시대 공안사건을 다룬 검사와 판사들의 실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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