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납세자의 돈’

작성일 : 2023-09-02 08:15조회 : 361

‘납세자의 돈’

우리는 흔히 국민세금을 낭비한다고 이야기 한다. ‘국민세금’은 영어 번역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영어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영미에선 ‘납세자의 돈’(Taxpayers' Money)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국민과 납세자는 같은 것 같지만 반드시 같지만은 않다. 막대한 법인세를 납부하지만 투표권은 없는 법인은 물론이고 소득세를 납부하는 외국인도 납세자이다.

세금은 부가가치세도 포함하기 때문에 온 국민이 납세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의미있는 납세자는 소득세와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소득세 면세점이 높아서 근로자의 거의 절반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소득세와 재산세를 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세금 정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에서 세금 인상이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로 생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금은 아무리 소폭으로 인상하려고 해도 여야 합의로 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장(Mayor)은 자체 세수(稅收)로 경찰, 소방, 학교도 운영해야 한다. 경찰과 소방을 중앙정부가 해결해 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시장이 얼마나 힘들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 재정이 나빠도 재산세 또는 우리의 부가세 같은 판매세(Sales tax) 세율을 0.5% 인상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시 의회에서 합의가 있어야 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불가피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정치인들은 의미있는 세금을 납부하는 유권자 계층을 존중한다. 그래서 세금을 올리는 정당은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2007년 대선과 2022년 대선에서도 세금의 영향이 컸다. 의미있는 세금을 내는 유권자층을 적대시하고 폄훼하면서 정권을 달라고 하는 정당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정부 지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돈’(Government Money)이란 것도 사실은 ‘납세자의 돈’이다. ‘정부 재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납세자의 재산’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탑 건>(Top Gun)의 앞 부분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톰 크루즈가 그 비싼 F-14을 몰고 비행하던 중 의식이 몽롱해진 동료 조종사를 항모로 유인하기 위해 위험한 곡예비행을 한 끝에 두 대가 무사히 항모에 도착한다. 그러자 항모 함장은 톰 크루즈를 불러서 혼을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비행기는 네 것이 아니야. 납세자의 것이야 !” 이런 생각을 하는 군인, 공무원이 진정한 공복(公僕)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세금을 올릴 생각은 아예 접고 정부 지출에서의 낭비부터 줄이는 것이다. 지난 주 사석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교수님이 드디어 윤 정부를 좋아할 일이 생겼습니다"고 해서 웃었다. 그날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정부가 새만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했더니 김건희가 개 식용을 금지하겠다고 동물권 단체 회견장에 나타났다는 뉴스가 오늘 나왔다. 윤 정부가 며칠사이에 나한테서 점수를 따는 형상이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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