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1월 22일 저녁부터 11월 23일 아침까지

작성일 : 2023-10-14 21:53조회 : 417

11월 22일 저녁부터 11월 23일 아침까지

1963년 11월 22일 오후 2시 47분에 댈러스 공항을 이륙한 공군 1호기는 에어컨이 돌아가서 다시 시원해졌다. 모두들 침통한 분위기였다. 대통령 경호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대통령을 잃어버린 경호실 요원들은 특히 침통한 분위기였다. 존슨은 베드룸에서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존슨은 케네스 오도넬에게 백악관에 남아서 자기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도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켈러만 경호단장은 루퍼스 영블러드 경호원을 중심으로 존슨을 경호하고 클린트 힐은 재클린을 경호하도록 지시했다.

오후 3시, 존슨은 자신의 참모인 빌 모이어스, 잭 발란티, 리즈 카펜터에게 앤드류 공항에 내려서 할 짧은 인사말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악천후를 피해서 공군 1호기는 4만 피트 상공으로 올라갔다. 영블러드 경호원은 존슨이 백악관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저녁에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이 자택에서 그 일당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음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존슨은 그 발상을 거부했다. 존슨은 자기가 저녁에 백악관을 들어가면 마치 궁정 쿠데타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영블러드는 경호원 몇 명과 함께 존슨의 자택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에는 부통령 관저가 없었고 부통령 자택에는 보안 전화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3시 20분, 케네디의 모친인 로즈 여사와 전화가 연결돼서 존슨과 버드 여사가 로즈 여사에게 위안의 말을 전했다. 앤드류 공군기지 도착 후 언론 취재에 대해서 존슨은 통상대로 취재를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재클린도 이에 동의했다. 3시 24분, 존슨은 클리프턴 장군을 통해 워싱턴에 전화를 해서 도착하는 대로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만나겠다고 통보했다.

3시 47분, 케네스 오도넬이 스카치 한 병을 꺼내서 주변에 한잔 씩 돌렸다. 재클린도 한잔을 마셨다. 재클린은 그 전에 스카치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4시 5분, 스윈들 기장은 곧 착륙한다고 알렸다. 기장은 존슨은 앞문으로 내리고 후문에서 리프트로 케네디 관을 내려야 한다고 관제소에 알렸다. 케네디 주치의 버클리 제독은 재클린에게 옷을 갈아입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재클린은 “아니에요, 그들이 보게 할 거에요”("No, let them see …")라고 답했다. 뒤쪽에 자리를 잡은 오도넬 등 케네디 참모들은 스카치 한 병을 비우고 케네디 묘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존슨의 일행이 앉아있는 앞쪽으론 가지 않았다.

오후 4시 58분, 동부시간으로 5시 58분 공군 1호기는 앤드류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공항에는 백악관으로 가는 헬기와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가는 앰뷸란스가 대기 중이었다. 존슨은 재클린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기를 원했지만 비행기 후문은 케네디 사람들로 차있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로버트 케네디는 재클린을 만나려고 걸어갔다. 도중에 존슨을 만났으나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공군 1호기에 올라가서 재클린을 본 로버트는 "Hi, Jackie, I'm here."라고 말하며 옆으로 다가갔다. 재클린은 "Oh, Bobby,"라면서 로버트에 기댔다. 로버트와 재클린은 케네디 관(棺)을 해군 앰뷸란스에 내리고 같이 탄 후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향했다. 존슨 대통령은 참모들이 준비해 준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참모들과 함께 활주로를 빠져 나왔다. 취재진은 재클린과 로버트 케네디에 초점을 맞추었고 존슨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존슨 역시 그것을 알고 빨리 인사말을 마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베데스다 해군 병원의 의사들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케네디 시신을 부검했다. 부검은 자정이 넘어서 끝났다. 댈러스에서 피격된 후 반나절이 지난 시각이었다. 장의사가 도착해서 케네디의 시신을 수습하고 마호가니 관(棺)에 안치했다. 재클린이 마호가니 관에 안치된 케네디 시신과 함께 백악관으로 돌아 온 시간은 23일 새벽이었다. 백악관 레지던스로 돌아온 재클린은 비로서 피 묻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참으로 길고도 길었던 하루였다.

11월 23일 토요일 오전 8시, 케네디의 비서인 이블린 링컨(Evelyn Lincoln 1909~1995)은 백악관 웨스트윙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녀는 텍사스 출장 동안 챙기지 못한 물건을 정리하고자 했다. 8시 30분, 이제는 대통령인 존슨이 웨스트윙에 나타났다. 존슨은 그녀에게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로 오라고 지시했다. 케네디 사망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블린 링컨에게 존슨은 9시 30분에 집무실에서 회의가 있다면서 한 시간 내에 케네디 물건을 치우라고 지시했다. 그 때 로버트 케네디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당황한 로버트 케네디는 양팔을 벌리면서 존슨에게 “여기는 당신이 오는 곳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중에 로버트 케네디는 자기는 단지 형의 개인 물품이 있는 곳에 존슨이 들어오는 것이 아님을 의미했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이 바로 그가 존슨을 보는 시각, 즉 존슨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그의 시각이었다.

이블린 케네디가 울면서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케네디의 물건과 소지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존슨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의 사무실에서 번디와 존 매콘 CIA 국장을 잠시 만났다. 매콘 국장이 안보 브리핑을 했다고는 하나 그 시간은 너무 짧았고 존슨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존슨에게 맥조지 번디와 존 매콘은 케네디의 사람들이었다. 오전 9시 30분, 존슨은 집무실에서 클리프 카터 등 자신의 참모들과 모여서 의논을 했다. 이블린 링컨의 데스크 벽에 걸려있던 케네디의 초상화는 치워지고 그 자리에는 금박 프레임을 한 존슨의 초상화가 걸렸다. 대통령이 재임 중 사망해서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20세기에 들어서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캘빈 쿨린지, 해리 트루먼이 있었지만 존슨처럼 마치 기다렸다는 식으로 대통령직을 능동적으로 접수한 적은 없었다.

- 사진 (1) :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공군 1호기에서 케네디 관(棺)을 내리는 모습.
- 사진 (2) : 앤드류스 기지에서 인사말 하는 존슨 부부.
- 사진 (3) : 이블린 링컨과 케네디 대통령. 그녀는 얼마 후 사임하고 백악관을 떠났으며, 자기가 겪었던 케네디에 대한 책을 회고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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