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튜 리지웨이 · 제임스 개빈

작성일 : 2023-12-06 10:09조회 : 366

매튜 리지웨이 · 제임스 개빈

공산권 확장을 억제(containment)하는 정책을 편 트루먼 대통령과 달리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Roll-back 정책을 선언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베트남 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2차 대전 후 일본이 철수한 베트남에 다시 식민정부로 복귀한 프랑스를 상대로 한 베트남 민족전선은 라오스 접경지대의 디엔비엔푸에 포진한 프랑스 군을 포위했다. 라오스에서 생산한 아편이 베트남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이던 디엔비엔푸가 갑자기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디엔비엔푸가 함락되면 공산체제가 베트남에 들어서는 것이기에 미군을 보내서 프랑스를 도와야 한다는 반공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2차 대전에서 유럽전쟁을 이끌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내에선 존 덜레스 국무장관과 리차드 닉슨 부통령이 파병에 찬성했다. 이에 반대해서 파병론을 잠재운 사람은 육군참모총장 매튜 리지웨이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리지웨이 장군의 의견을 따라서 지상군 파견을 거부하고 프랑스에 전투기, 탱크 등 물자를 제공하고 민간 항공기로 위장한 수송기로 군수품을 공수하는데 그쳤다.

매튜 리지웨이(Matthew Ridgway 1895~1993)는 6.25 한국전쟁 당시 워커 중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서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한 전선(戰線)을 재정비해서 반격을 가하고, 맥아더가 해임된 후에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전쟁 후반기를 이끈 지휘관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리지웨이는 2차 대전 중 82 공수사단(The 82nd Airborne)을 이끌고 시칠리 상륙작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선봉에 선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후 육군참모차장을 지내다가 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하자 맥아더는 “8군은 이제 당신 것이요”라면서 작전권을 리지웨이에 위임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전쟁 후 리지웨이는 아이젠하워의 후임으로 나토군 사령관을 지내다가 1953년 8월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싸우고 또 한국이란 아시아 전장(戰場)을 경험한 리지웨이는 전술 핵폭탄을 디엔비엔푸 주변에 투하하자는 해·공군의 매파(派) 장성들에 대해 그래도 결국에는 보병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서 반박했다. 리지웨이는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는 베트남에 미 지상군을 투입하면 소련에 대처해야 하는 미군의 전력(戰力)이 손상된다고 주장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2차 대전 중 자기의 휘하에서 임무를 훌륭하게 해낸 리지웨이의 견해를 지지해서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분리된 후에도 남베트남에 소규모의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는데 그쳤다.

젊고 경험이 부족한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자 하버드 정치학 교수이던 맥조지 번디를 안보보좌관으로, 포드 자동차 사장이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국방장관으로 기용했고, MIT 경제학교수이던 월트 로스토를 안보부보좌관으로 기용했다.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을 끝으로 퇴역한 맥스웰 테일러(Maxwell Taylor 1901~1987) 장군을 현역으로 복귀시켜서 합참의장으로 임명했다. 케네디의 사람들인 번디, 맥나마라, 로스토, 그리고 테일러는 미국을 베트남 전쟁이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갔으니, 베트남 전쟁은 케네디가 시작하고 존슨이 확대시킨 무모한 전쟁이었다.

번디, 맥나마라, 로스토는 전쟁터의 화약 냄새와 피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2차 대전 중 101 공수사단장을 지낸 맥스웰 테일러가 미국을 무모한 전쟁으로 끌고 들어간데 대해 전사가(戰史家)들은 고개를 저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임을 일깨워 준 것이 베트남 전쟁이었고 또 나중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이었다.

존슨 대통령이 미 지상군을 베트남에 보내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즈음인 1966년 2월,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bright 1905~1995) 상원 외교위원장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청문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은 판에 박힌 희망적 전망을 늘어놓았다. 이 때 퇴역 장성 두 사람이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잘못이라는 증언을 해서 파문이 일었다. 두 사람은 2차 대전을 기억하는 미국인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전쟁 영웅 매튜 리지웨이와 제임스 개빈이었다.

제임스 개빈(James Gavin 1907~1990)은 어릴 때 빈한한 가정에 입양돼 자랐고 가출해서 살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미군 병사로 입대했다. 총명하고 근면한 그는 웨스트포인트 입시에 합격해서 4년 후 장교가 됐다. 전쟁사 읽기를 좋아한 그는 미래의 육군에서 공수작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수부대에 지원했다. 보병사단에서 공수사단으로 전환한 82 공수에 배속된 개빈은 사령관인 매튜 리지웨이 소장의 휘하에서 연대장으로 시칠리 침공 작전에 참여했다. 개빈의 능력을 알아 본 리지웨이는 개빈을 준장으로 승진시켜 부사단장으로 보임했다. 리지웨이와 개빈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부대원을 이끌고 적진에 낙하해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리지웨이가 공수군단 사령관으로 발령을 받자 개빈은 82 공수사단장이 됐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37세의 개빈은 최연소 사단장이며 소장이었다. 개빈은 82 공수사단을 이끌고 마켓가든 작전과 벌지 전투 등에 참여하면서 종전(終戰)을 맞았다.

2차 대전 종전 후 개빈은 육군본부에서 참모부장을 지내면서 기동 전략을 주창했으나 팽배한 관료주의와 핵 전력 중심의 국방정책에 실망해서 대장 진급을 고사하고 전역했다. 그 후 민간 분야애서 일하다가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 주재 대사로 발탁돼서 2년간 파리에 머물렀다.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가 틀어지던 시점에 케네디는 드골 대통령과 함께 유럽에서 싸웠던 개빈을 주불 대사로 발탁한 것이다. 대사 생활을 마친 개빈은 그 후 책을 여러 권 펴냈다.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던 1966년 초에 열린 풀부라이트 청문회에 참석한 제임스 개빈은 “베트남에서 적군의 조건 없는 항복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미군 60~75만 명을 베트남에 파병하는 구상은 비합리적”이라고 증언했다. 매튜 리지웨이는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태국과 남부 아시아 국가가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을 나는 받아드릴 수 없으며, 한국 전쟁에서는 전선(戰線)과 적(敵)이 분명했고 한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지했으나 남베트남은 모든 면에서 한국과 다르다”면서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미 전쟁을 벌여 놓은 존슨과 그의 참모들은 확전(escalation)의 길을 갔고 결국 1968년 초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 내의 여론은 구정 대공세를 계기로 바뀌며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닉슨은 베트남에서의 명예로운 철군을 내 걸고 그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알지 못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미국을 또 다시 수렁에 빠뜨렸다. 베트남 전쟁에 초급 장교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에릭 신세키 육군참모총장, 앤서니 지니 중부군 사령관이 전쟁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매튜 리지웨이와 제임스 개빈 장군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상한 핑계로 병역을 기피해서 총을 한번 만져보지 못한 정치인, 교수, 기자들이 전쟁을 쉽게 알고 떠드는 것을 우리가 경계해야 함은 이런 역사의 교훈 때문이다.

사진 (1) : 리지웨이(오른쪽)와 개빈(왼쪽). 1944년 12월 벌지 전투 기간 중 최전선에서.
사진 (2) : 한국 전쟁 중 리지웨이 장군.
사진 (3) : 82 공수사단장 시절 개빈. M-1 개런드 소총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다. 개빈 사단장은 M-1 소총을 메고 부하들과 함께 적진에 낙하하곤 했다. 장병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M-1 소총을 메고 격의 없이 대화를 하는 개빈 사단장을 좋아했다.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영화 <머나 먼 다리>(A Bridge Too Far)에 라이언 오닐이 개빈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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