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 유감’

작성일 : 2023-12-12 08:18조회 : 380

‘기자 유감’

윤석열 대통령과 악연이 많은 MBC 이기주 기자가 <기자 유감>이란 책을 냈다. 윤 대통령 쪽에서 볼 때 유감(有感), 즉, 악감정을 갖고 있는 기자라는 의미라면 ‘유감 기자’라는 제목이 오히려 걸맞을지 모르겠다. 1970년대에 ‘순악질 여사’라는 신문 만화가 있었는데, 윤 대통령측에서는 이 기자를 ‘순악질 기자’로 보지 않았겠나 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5%로 고착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계기가 모두 이 기자와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국회에 있으면 기자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내가 이기주 기자를 잘 알게 된 때는 2021년 여름에 내가 <시대를 걷다>라는 책을 내고 나서다. 국회 임기가 끝난 2020년은 코로나 초기인데다가 한 해 동안 나는 허리가 많이 불편해서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고 내가 책을 펴내자 평소에 알던 기자들이 점심 자리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런 모임이 두어 차례 있었다. 내가 낸 책에 2012년 MBC 파업에 관한 부분이 있어서 이 기자는 내 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대선이 있었고 윤석열이 당선됐다. 그리고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사건과 ‘48초 한미 정상회담’ 해프닝이 있었다.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이기주 기자가 처음 밝혀낸 것임을 몰랐다. 나는 윤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해프닝을 보고 ‘수준’에 걸 맞는 사건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48초 정상회담’ 후 “xx들” “바이든(또는 날리면) 쪽팔려" 발언 사건이 크게 터졌다. 이것을 처음 보도한 기자가 ‘이기주’라고 해서 전화를 걸어서 "이게 당신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같이 웃었다.

정치인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진한 농담을 하다가 그것이 스피커로 나가서 파문이 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조지 W. 부시가 체니 부통령에게 “저기 뉴욕타임스 x구멍(ass hole)이 있다”고 한 이야기가 스피커로 나가서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측은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면’인데 MBC가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정면 대응을 하고 이 기자와 MBC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해서 지금까지 계류 중이다. ‘바이든/날리면’ 사건이 있고 얼마 후에는 윤 대통령이 이른바 도어 스테핑을 하는 과정에서 이 기자가 슬러퍼를 신었던 모양인데, 그것을 두고 “예의가 없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윤 대통령은 도어 스테핑을 그만 두었다.

이따금 라디오 시사 프로에 나가던 나는 그 때 “대통령은 준비를 해서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해야지 저런 식으로 ‘도어 스테핑’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도어 스테핑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은 나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쯤부터 윤 대통령 지지율은 35%로 고착돼 버렸다. 사람들이 대통령과 그 주변의 ‘수준’을 알아 버린 것이다. 몇몇 신문은 도어 스테핑이 ‘소통’이라고 추켜 세웠고, 어떤 신문은 ‘도어 스테핑은 계속돼야 한다’는 사설과 칼럼을 내보냈다. 그것이 대통령을 칭찬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을 함정으로 유인해서 작살내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자라면 글 쓴 필자가 아둔한 것이고, 후자라면 아주 악의적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도 기자회견을 하면서 일일이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세한 설명과 답변은 대변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메이저 신문 출신이 대변인을 했는데, 대변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기자들이 복도에서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은 의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의사당 복도에서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는 대상은 평범한 의원들이 아니다. 하원의장, 상하원 원내대표, 주요 상임위원회 위원장 정도는 되어야 언론이 마이크를 들이대는 것이다. 하원의장과 원내대표는 의원 경력이 최소한 15년~20년은 되는 사람들이다.

여하튼 정권 초기에 있었던 이런 해프닝으로 이기주 기자는 ‘유명(famous)’해져서 기자상(償)을 탔다. 대통령 측에서 볼 때는 ‘악명높은(infamous)’ 기자가 상(償)을 탄 것이다. 윤 정권 초기에 겪었던 이런 일련의 사건 외에도 기자라는 직업을 뒤늦게 택한 그가 언론과 정권, 언론과 진영 논리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苦悶)이 책 곳곳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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