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을 좋아한 먼로

작성일 : 2023-12-24 12:21조회 : 324

책을 좋아한 먼로

영화 속의 마릴린 먼로(1926~1962)는 대부분 가슴과 각선미가 부각된 모습이기 때문에 먼로는 ‘섹스 심벌’로 불렸다. 먼로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제인 러셀(Jane Russel 1921~2011)도 그러했다. 하지만 먼로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성장했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고, 먼로를 키울 수 없는 어머니는 먼로를 임시보호 가정과 고아원에 맡겼다. 어머니가 정신병동에 수용된 후에는 먼로는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나가야 했고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 어린 먼로를 맡아서 돌보았던 가정 중 볼란더 가족은 먼로가 안심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는데, 흑인 지역 우체부였던 볼란더는 흑인들과 가까웠다. 먼로가 흑인에 대해 친근한 감정을 갖게 된 계기는 이 때였다고 한다.

먼로는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알고 살았다. 집을 나온 16세 나이의 먼로가 남자 친구와 결혼한 이유도 경제적인 것이 컸다. 첫 남편이 해군에 입대해서 집을 떠나자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중 육군 사진사의 눈에 띠여서 모델이 된 먼로는 약간의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먼로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가 되기 위해 혹독한 연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돈이 떨어진 먼로는 누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나중에 플레이보이지(誌) 창간호에 나와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나 먼로는 잡지사로부터 한 푼도 얻은 것이 없었다.

2차 대전 후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할리우드 전성기였다. 배우가 되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이 할리우드로 모여 들었다. 영화 제작사와 스튜디오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작은 배역이라도 얻고자 하는 여성들은 그들의 몸을 스스럼없이 던졌다. 먼로도 마찬가지였다. 먼로는 배역을 얻는 대가로 70대 나이의 제작사 사장의 정부(情婦)가 되어 스스로 성적 노리개가 됐다. 어린 시절의 빈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이 같은 성적 착취를 경험한 먼로는 급진적인 이념을 주장하는 책에 심취하기도 했다.

일반 대중은 먼로를 섹스어필을 파는 '멍청한 금발(dumb blonde)'로 생각한다. 사실 먼로는 그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영화사들이 먼로를 그런 역할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먼로가 몬터리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 직공으로 나온 1949년 흑백영화 <Clash by Night>은 먼로의 정체성을 보여 준 드문 영화라고 평가된다. 1953년에 <나이아가리>가 크게 히트해서 스타가 됐으나 20세기 폭스사와 맺은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해 먼로는 영화 출연료가 형편없이 빈약했다. 이에 절망한 먼로는 뉴욕으로 건너가서 자기만의 영화제작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등 다른 배우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갔다. 그 후 20세기 폭스사가 보다 좋은 조건을 내걸자 먼로는 LA로 돌아오게 된다. 먼로의 이러한 면모는 먼로가 살아왔던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먼로는 자신의 학력을 부끄러워했으며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 UCLA의 야간 코스를 다닌 적도 있는 먼로는 자기 집에 많은 책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책을 읽은 모습을 찍은 먼로의 사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먼로는 세 번째 남편이 되는 극작가이자 좌파 지식인인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작품을 읽었음은 물론이다. 한번은 먼로와 촬영 약속을 한 사진작가가 먼로의 아파트에 일찍 도착해서 정원에서 책을 읽는 먼로를 보고 스냅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먼로가 읽고 있던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였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아무나 읽을 수 없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먼로의 이러한 성향이 먼로가 존 F. 케네디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먼로는 민주당원이었고 캘리포니아 민주당의 예비 대의원이었다. 먼로는 핵 전쟁을 걱정하는 단체의 할리우드 지부 창설 멤버였다. 먼로는 주변 친구들에게 쿠바에서 일어난 카스트로 혁명을 지지하는 말을 자주했다. 1960년 대선을 앞두고 먼로는 케네디를 지지했고 그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뛸 듯이 좋아 했다. 먼로는 자신의 애인이기도 한 케네디가 평화와 평등을 가져 올 새로운 젊은 리더라고 생각했다. 먼로가 갖고 있던 그런 환상이 깨지자 그녀의 앞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다오고 있었다.

- 사진 (1) : 책 읽는 먼로 사진 작품.
- 사진 (2) : 1955년 스냅 사진이 표지로 나온 먼로.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읽고 있다.
- 사진 (3) : 먼로는 아파트 거실과 침실의 서가에 제법 많은 책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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