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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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깨져 버린 '보수의 도덕성' 신화
작성일 : 2010-07-15 09:22조회 : 7,977
깨져 버린 '보수의 도덕성 신화'
- 2010년 7월 13일자로 '한겨례 훅'에 기고한 글 -
이상돈
언제부터인지 “보수에게는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대 조국 교수가 한겨레 훅에 기고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칼럼' 에도 그런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작년 봄에 보수와 진보를 주제로 한 MBC 백분토론 때에도 손석희 사회자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해서, “도덕성이란 것은 진보나 보수에게 모두 필요한 덕목이 아니냐”고 웃으며 답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도덕성’ 논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에 정권 주변에서 생긴 이런저런 비리, 그리고 몇몇 인사들이 국회 청문회에서 낙마했을 경우에 한나라당과 이른바 보수신문들이 그런 주장을 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데 주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기존 세력이 민주화 주축세력임을 자부하는 ‘진보 정권’에도 그런 어두운 모습이 있으니까 “너희들이라고 다를 것이 있냐?”고 대응했던 것이다.
‘보수에게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신화’가 자리 잡은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을 두고 이런저런 문제가 양파껍질 벗겨지듯 나오니까 박근혜 전 대표측에서 이것을 ‘도덕성’ 문제로 들고 나왔다. 그러자 조갑제씨와 김진홍 목사가 “대통령 선거는 윤리 선생을 뽑는 것이 아니다”, “윤리나 도덕은 쪼다나 지키는 것이다” “도덕성은 좌파가 파놓은 함정이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도덕성 논의’를 진화(鎭火)하고 나섰던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것을 보고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인과 목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 측이 큰 실수를 몇 개 했다고 본다. 첫째, 이명박 전 시장이 경부운하를 들고 나왔을 때 성급하게 열차 페리를 들고 나와서 운하 공약의 허구성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다. 둘째, 이명박 전 시장 측에 대해서 ‘네거티브’를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해서 “반대나 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선거에서 ‘네거티브’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사실인양 퍼뜨리거나, 작은 잘못을 왜곡하고 확대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법이다. 따라서 그런 전략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고 말하고 하는 것이 아닌데, 박 전 대표 측에선 “네거티브를 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우스운 일이었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을 두고 제기됐던 위장전입, 위장취업, 건강보험료, 증인도피 혐의 등은 모두 위법 또는 탈법이었고, 드러난 사실이어서 ‘네거티브’라고 할 것도 아니었는데, 박 전 대표 캠프는 이것을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보수와 도덕성’의 문제는 200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공격할 때 다시 거론되었다. 당시 이회창 후보 측에선 이명박 후보를 ‘부패 보수’라고 공격하면서, “보수에겐 도덕성이 생명”이라는 논리를 펴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런 주장을 진보 매체가 받아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보수에겐 도덕성이 생명”이라는 ‘신화(神話)’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 ‘신화’는 이제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은 자신들을 ‘보수’라고 자처하고 있는 데,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가관(可觀)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짓말’ ‘병역면제/기피’ ‘부동산 투기’ ‘연고주의’ ‘시멘트 삽질’ ‘토건 마피아’ ‘패거리 정치’ ‘가스통 시위’ ‘빨갱이 몰이’ 등 온갖 나쁜 것들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미친놈이 보수에게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냈나?”하는 말까지 나온다.
이명박 정권에 특유한 이 같은 현상은 일단 여기서 접기로 하자. 그렇다면 원론적 의미에서, ‘보수’에게 도덕성이 더 중요한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세상에 ‘항구적인 가치나 원칙(enduring value or principles)’이 있다고 보는가 하는 점이다. ‘보수’는 이 세상에는 ‘항구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 비해 ‘진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는 부단하게 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수주의 철학을 정립한 러셀 커크도 이 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따라서 ‘도덕성(morality)’과 ‘일관성(integrity)’은 ‘보수’에게 더 중요한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보다 종교적이며,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세상을 ‘선(善)’과 ‘악(惡)’으로 나누어 보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은 ‘고루하고 완고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정부패 부도덕 등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동성애, 낙태, 그리고 안락사에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그들은 ‘전통적 선(善) 개념’을 고수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은 이러한 가치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고, 거기서 벗어나면 지지를 잃고 만다. 미국에서 대통령 감으로 꼽히던 공화당의 뉴트 킹리치 전 하원의장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혼외정사와 이혼이 걸림돌이 됐다. 반면 대통령 재직 중에 섹스 스캔들을 일으켜 탄핵심판에 이르기도 했던 빌 클린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멀쩡하다. 보수적인 공화당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불륜을 문제로 삼지만, 진보적인 민주당 유권자들은 그것을 별로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자연보호운동은 ‘conservation movement’라고 부르는데, 19세기에 그런 운동을 일으킨 존 뮤어 등도 구태여 말하자면 ‘보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원시자연이 미국적 전통이고 가치라고 생각해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런 연유로 국립공원이란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보수 정치인인 배리 골드워터와 로널드 레이건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무엇보다 사랑했다. 멀쩡한 강바닥에 시멘트를 바르는 것이 ‘보수’인 우리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보수’ 이미지가 하도 형편없이 되어 버려서 한국 사회에서 다시 ‘보수’를 말할 수 있을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c) 이상돈, 한겨레 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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