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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꼴사나운 개헌정국 (시사인)
작성일 : 2011-02-23 09:48조회 : 3,186
(* 시사인 2011년 2월 26일자 기고문입니다. 저작권 : 시사인)
꼴사나운 ‘개헌 정국’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무지 이명박 정부 같은 정권은 보다보다 처음 보는 것 같다. 물가, 청년실업, 전세난 등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바른 말 하는 언론 틀어막고 멀쩡한 4대강 파헤치는 데만 열심이다. 와중에 구제역이란 복병을 만났는데, 책임을 돌리고 피해를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이 판국에 정권의 ‘실세’라는 이재오 장관은 개헌을 하자고 하루가 멀다고 외치고 다니고 있으니 가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완전한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도 나름대로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어서 결국은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영국에서 비롯된 의원내각제는 국왕이 있는 유럽국가와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미국이 도입한 대통령제는 3부(府)간의 ‘견제와 균형’을 기초로 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중남미와 아시아에 전파됐으나 많은 경우에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신(新)대통령제’로 전락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불어 닥친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이제 모범적인 대통령제를 운영해 오고 있다. 왕정(王政)을 폐지한 아랍국가와 공산체제에서 벗어난 동유럽 국가들도 대체로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다.
제1차 대전 후 분권형 대통령제인 2원적 정부제를 운영하던 독일은 혼란 끝에 나치 독재체제를 겪게 됐고, 제2차 대전 후에는 순수한 내각제 정부를 택했다. 의원내각제 정부를 오랫동안 운영해 온 프랑스는 1958년 알제리아 사태 후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를 택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당 정부의 신대통령제가 10년 이상 유지되어 오다가 4·19 혁명으로 의원내각제를 잠시 운영했고, 5·16 혁명 후 제3공화국 헌법에 의한 대통령제를 운영하다가 ‘유신’으로 인해 다시 ‘신대통령제’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1987년 6월 혁명 이후에 우리는 직선제 단임 대통령제 개헌을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우리의 경험에서 보듯이 정부형태를 바꾸는 것은 큰 정치적 변혁이 있은 후에나 가능하다. 정부형태도 일종의 전통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것을 확 바꾸기 어렵고 또 그렇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 형태를 바꾸는 개헌은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정도의 계기가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반기 들어 느닷없이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가 우습게 되고 말았다.
이재오 장관의 주장은 하도 좌충우돌이라서 종잡을 수 없다. 이 장관은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독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 말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 맞는다. 그렇다면 이 장관부터 독주와 독선에 책임을 지고 국민에 사과하고 정치를 그만 두어야 할 것 아닌가. 그가 대안으로 내놓은 분권형 대통령제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진 데서 보듯이 작동이 불가능한 정부형태다. 굳이 분권제 개헌을 하지 않아도 대통령제에선 사실상의 분권형 정부가 탄생할 수도 있는데 프랑스에선 그것을 ‘동거(同居)정부’라고 부른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서 원내 1당이 되고 대선에선 지금의 여론조사대로 박근혜 전 대표가 승리하면 국회의 다수당과 집권당이 다른 ‘동거(同居)정부’, 또는 ‘분리된 정부’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 국회의 다수당과 대통령은 협력해야 하는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10년 동안 해온 우리로선 그런 통합형 구도가 한동안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오 장관을 위시한 ‘MB 계열’ 정치인들은 그런 구도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실정(失政)과 악정(惡政)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6·25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우리 정부는 부산에 내려와 있었고, 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 장병들은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 선출을 직선으로 하기 위한 개헌을 획책했다. 국회가 직선제 개헌안을 부결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를 아예 해산하고자 했고, 이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구속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루먼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저게 무슨 꼴이냐?”고 흥분하고, 미군 사령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는 방안을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이승만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포위했고,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7월 4일 국회는 개헌안을 처리했으니 이것이 악명 높은 ‘발췌개헌’이다. 이승만 정부가 워낙 속전속결로 개헌안을 처리해서 대통령을 갈아 보라는 트루먼의 지시는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민심은 MB 정권을 뜬지가 오래됐는데, 여당의 ‘실세’라는 장관이 ‘개헌, 개헌’하고 외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60년 전 트루먼 대통령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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