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돈-김호기 대화 (6) 대북정책 (경향)

작성일 : 2011-03-29 19:57조회 : 3,266

2011년 3월 28일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6)
천안함 사건 1년… 대북정책을 돌아본다

(전병역 기자)
ㆍ이수훈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선거용 구호… 정책화하지도 못해”
ㆍ이상돈 “햇볕정책은 북 핵실험으로 실패”… 김호기 “새로운 햇볕정책 필요”

천안함 사건 1주년을 즈음해 이상돈(중앙대 법학),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가 고른 여섯번째 ‘대화’ 주제는 대북정책이다. 오래도록 인적·물적 교류가 끊긴 채 군사적 긴장만 높아져 있는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를 짚은 것이다. 대화는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에서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과 함께 이뤄졌다. ‘온건 보수’ 성향의 이 교수는 “준비도, 철학도 없는 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북핵 개발에 금전적 도움을 줬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건 진보’를 표방한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포용정책을 지지하지만 북핵을 고려한 신햇볕정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았던 이 소장은 “대북 퍼주기 논리는 정치적으로는 먹히지만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정책과 동북아 정세를 놓고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 사안에 따라 팽팽한 설전도 주고받은 ‘3각 대화’는 천안함 얘기로 시작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다. 사건의 진실이 논란인 와중에 연평도 포격도 있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이 정부가 안보강화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흔히 ‘시장적 보수’라는데 ‘안보적 보수’ 측면에서는 소홀히 하는 것 아닌지.

이수훈 경남대 교수 =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 정체성의 하나가 강한 안보다. 현 정부도 튼튼한 안보를 기치로 출범했다. 그런데 너무 강경일변도로 몰고가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천안함 사태 후 여러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안보의식 높이고 연평도 사건은 예방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상당한 아쉬움이 있다. 대비 태세도 미흡하고 천안함 사건 후속 외교도 미숙하고, 그 뒤 연평도 포격에서 보듯 방위역량도 미비하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 =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처음부터 강하게 한 건 아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후 대안을 못찾다가 촛불시위 등으로 정권 기반이 흔들리니까 보수층의 (지지)확보 차원에서 강경책을 내세우지 않았나 싶다. 서해 안보 불안은 이 정권 책임이라고만 볼 수 있나. 전 정권 10년의 안보 해이가 누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호기 = 천안함 사건 이후 안보를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두 과제가 있다. 국민들 눈에는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포용정책이나, 비핵·개방·3000으로 상징되는 상호주의나 모두 한계를 보여 신뢰가 높지 않다.

이수훈 = 포용정책이 현실적으로 적절한 정책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변함없다. 북한을 잘 다뤄나가면서 평화를 유지·증진시키고 경제적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 같은 걸로 나아가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정책 외에 대안이 없다.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선거용 구호일 뿐, 정부 출범 후 정책화하지도 못했다.

이상돈 = 비핵·개방·3000은 선거용이라는 데 100% 동감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10년간 햇볕정책을 해왔고 정상회담도 두번 했지만 북한 핵실험으로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첫번째 정상회담은 이해하지만 노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1년도 안돼 평양에 갈 필요가 있었나. 현실적으로 북핵 포기가 가능하다고 보나, 다른 모색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수훈 = 북핵과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포용정책 탓이라는 건 합리적 비판이 될 수 없다. 김대중 정부 때도 서해교전은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위해 대규모 북한군을 (휴전선에서) 수㎞ 뒤로 물렸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북핵은 그 자체로 진도 나가는 논리가 있다. 북·미 적대관계가 상당히 중요한 배경이라고 본다. 남측이 쌀, 달러를 줘서 핵으로 귀결됐다고 보진 않는다. 가령 2007년 정상회담 합의에도 풍부한 경협 프로젝트가 들어있다. 특히 서해 긴장을 완화하는 프로젝트를 받아서 했으면 남북관계가 다른 성격으로 진전되지 않았나 한다.

김호기 = 정책은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 강압정책은 오히려 군사긴장을 고조시켰고, 포용정책은 북핵을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군사긴장 억제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포용과 강압을 넘어선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신포용정책, 신햇볕정책처럼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수훈 = 국민이 아쉬워하는 결과를 낳아 여러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포용 또는 개입)’는 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핵도 결국 테이블에서 대화로 합의할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이 북핵을 다루는 데 유일한 대화 틀이라는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이상돈 = 최근 북한은 리비아가 핵이 없어서 당했다고 밝혔다. 북한에 핵은 그런 의미다. 북한의 핵은 우리만 상대하는 것은 아닐 거다. 전 정권 10년 동안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돈 문제다. 돈없이 핵개발 못하는데 포용정책이 도왔다는 시각이 있다.

이수훈 = 그런 시각은 올바른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이른바 ‘퍼주기’라는 말인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의 달러가 핵 실험으로 간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 총선·대선에서는 먹히는 말인데 그건 정치일 따름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해봐야 한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합의를 다 이행한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 정부는 비핵화가 중요 정책목표인데 그건 고사하고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공개 등 ‘핵 시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상돈 = 6자회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또 당근책을 쓰는 걸 국민 다수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갖게 된 이상 상당한 기간 동안 북한과 선뜻 대화하기 어렵게 돼 있지 않나 싶다.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는 정책은 곤란하다.

이수훈 = 6자회담은 미·중도 참여하는 건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뭘 주고 하는 건 아니고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하면 상응하는 보상을 준다는 게 9·19 공동성명의 정신이다. 그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

이상돈 = 현 정부 대북정책이 어떤 준비나 철학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국내 정치적 입지 불안을 덮기 위한 것 아닌가, 그 점을 제일 걱정하고 있다. 철학을 가지고 강경책이라도 준비한다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김호기 = 대북정책의 경우 가장 중요한 국가적 의제 중 하나인데 이 정부는 정권적 의제로 다룬다. 대북정책의 대상은 밖에 있는데 이 정부의 정책은 대상이 안에 있는 거다. ‘국내적 대외정치’라고 할까. 국내 보수세력을 겨냥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안보를 강화할 것이란 게 국민 다수의 기대였는데 오히려 안보가 무능한 정부처럼 보이는 게 객관적 현주소 같다.

이수훈 = 아이로니컬하게 역사적으로 적대한 두 국가 사이에 관계를 좋게 만든 경우는 보수정부가 많다. 미·중이 화해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룬 것도 보수정부인 닉슨 대통령 때다. 우리도 반드시 진보적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 다뤄야 한다는 것도 없다.

김호기 = 국제관계를 살펴봤으면 한다. 1980년대 후반 탈냉전 이후 대외정책 변화로 한·중관계 중요성이 부각됐다. 한·중, 한·미관계는 길항관계 같다. 균형이 필요한데 너무 한·미관계에 의존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정부 당시는 논란이 됐지만, 중장기적으로 ‘균형자론’이 유효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수훈 = 그 견해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한·미, 한·중관계 중요도가 같은 반열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됐다. 따라서 한곳에 치우치면 다른 곳에 공백이 생기는 관계가 돼 있다. 현 정부는 한·미동맹에 치우친 측면이 없잖다. 한·중관계가 천안함 외교를 하면서 악화됐다고 본다. 현 정부의 외교에는 사려나 균형, 신중함이 없는 것 같다. 이때 몇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꽉 쥐고 있어야 한다. 이걸 놓으면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자산을 유실하는 꼴이 된다. 지금이 그런 형국이다. 그래서 남북관계 복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상돈 = 상하이 총영사관 사태나, 대통령 측근인 주중대사를 보면서 정부가 대중 외교를 너무 우습게 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호기 = 내년은 미국 대선, 중국 시진핑시대 시작, 북한은 강성대국 원년, 일본도 대지진 복구문제로 상당히 중요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도 총선, 대선이 있다. 동북아에서 ‘2012년 체제’의 새판짜기가 진행되는 것 같다. 대외적 2012년 체제 대처와 대내적 남남갈등 해소라는 이중과제에 대해 보수든, 진보든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이수훈 = 남남갈등 해소가 중요한데 상대방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이외 달리 방법이 없다. ‘내 말 맞으니까 잔소리 말고 따라오라’면 갈등이 생긴다.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과의 소통, 설득을 통해 민주적 절차로 해야 한다. 2012년 정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균형감각과 더불어 선제적, 능동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대북 쌀 지원처럼 미·중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가겠다는 식인데,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 기사와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경향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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